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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격을 입고 오신 이유

작성자마르다

작성일2019-08-26

조회수44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격을 입고 오신 이유

마태복음1:18-25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자 심판자로서 법으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법대로 인간을 심판 하신다면 이 세상에 한사람도 살아남을 자가 없다. 기독교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하고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법은 미워만 해도 살인이고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 된다. 인간들이 세운 법은 십원을 도둑질 하면 죄가 안 되고 백만 원을 도둑질 하면 죄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십원을 도둑질하는 사람이나 백만 원을 도둑질 하는 사람을 똑같이 도둑으로 간주하고 반드시 법대로 심판 하시는 분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어떻게 하나님이 그럴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하나님의 법은 자비가 없다. 좌우로 치우침도 없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하나님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특성을 따라 무슬림들이 자기와 맞지 않는 자는 무조건 쳐내기 때문에 그 지역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의 복잡한 제사 제도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법으로만 따진다면 한 사람도 살아날 자가 없다. 하나님을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신 것이다. 아들을 보내서 법으로만 심판할 것이 아니라 법을 뛰어 넘으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신성과 사람의 몸을 입은 인성을 가지셨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는 있지만 유대인들과 똑같은 삶을 살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의 삶의 애환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율법도 똑같이 지키고 천한 직업인 목수 일을 하면서 유대인들의 희로애락과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지키지 못한 자들의 고통 받는 모습도 보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었다.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세상 임금인 마귀의 시험을 모두 이겨내고 하나님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받아 공생애를 시작하게 되자, 유대인으로서 살았던 삶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 장면은,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일이다.

 

성경에는 나인 성 과부가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하나도 없다. 예수 앞에 죄인이라고 나오는 자를 살리는 일 인 자기 임무를 완수하려면 나인 성 과부가 죄인이라고 나와야 한다. 나인 성 과부가 죄인이라고 하지도 않는데도 살려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예수에게 이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가 살려주지 않는다 해도 이 청년은 자기 죄로 인해 죽었기 때문에 항변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신 이유는 유대인으로서 인간의 속속들이를 섭렵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인 고아와 과부는 당장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에 돌보아 주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들 하나를 바라보고 살아온 과부의 슬픔과 고통스런 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신 예수께서 청년을 살리는 데에 아버지께서 주신 권세를 사용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5:21)는 말씀은 하나님 아들이 와서 유대인들은 육적으로 살리시고 이방인들은 눈에 보이는 시대가 아니고 영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영으로 살리는 것이다. 이방인에게는 그리스도가 눈에 보이지 않게 오기 때문에 도적같이 오신다고 하는 것이다.(16:15)

 

성경에는 예수가 와서 이렇게 살리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말씀을 하는가하면 앞으로 우리 이방인의 사역도 이렇게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법대로 따지면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도 살 수 없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받은 성령은 이제 하나님 백성으로서 시작하는 영적인 율법으로 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영적인 율법인 성령의 법은 마음으로 생각만 해도 죄가 되기 때문에 누구도 지킬 수 없는 죄인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구원받았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격적이라는 말은 너와 나와 얘기를 해보자 네 사정을 들어보자는 것이며 내가 네 사정을 모르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말이다. 법으로 따진다면 살아남을 자가 없지만 이미 법을 뛰어넘어서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주는데 아무나 구원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겨 당신의 아들한테 네가 저 사람들과 같이 부대끼며 희로애락과 그 속을 알아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 속을 잘 알지 못하면 나인 성 과부의 아들처럼 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 버리게 된다. 그래서 네가 먼저 사람들의 고통도 알고, 슬픔도 아픔도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사람이 말을 다 못하더라도 헤아려 줄 수 있고 너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도 법을 어기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율법이 오기 전에도 죄가 왕노릇 했지만 율법을 더한 것은 죄를 깨닫게 하려함이다(5:20). 유대인들은 율법의 보호를 받고 살다가 율법을 어겨서 그 죄로 청년이 죽었으므로 예수께서 일방적으로 살려주셨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의 보호도 없이 제멋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악이 자라 있어서 그 악을 이실직고 해야만 한다.

 

이방인들에게 핵심은 여러분들의 고통과 아픔을 그리스도 앞에 모두 얘기해주면 내가 도와주겠다하는 것이다. 아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자를 살리신 다는 뜻은 업신여김 당하는 자를 살리고 남의 아픔, 슬픔, 고통을 알아야 그들을 헤아려서 불쌍히 여겨준다는 말이다. 현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이유도 밑바닥을 걷게 하여 민초의 삶을 알게 해주기 위함이다. 곧 유대인에게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얘기며 현재는 영적인 시대이기 때문에 마음이 고아, 마음이 과부 인 자를 불쌍히 여기라는 말이다.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있으니까, 그리스도가 불쌍히 여겨 줌으로 짓밟히는 자를 아들이 살려주는 것이다. 나사로와 예수가 친구라 한 것도 나사로가 예수와 마음이 합해져 있고 그 마음이 선하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죄를 들고 오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스도가 불쌍히 여겨 줄 부분을 가지고 있는 자를 살려주시는 것이다. 내 아들을 너희들 앞에 보내는 것은 너희의 형편, 사정을 알아봐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겨라, 법으로 걸면 다 죽는데 법을 뛰어 넘어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인 것이다. 결국 우리의 마음이 불쌍히 여김 받을 수 있는지를 확인해서 빨리 자신의 자아 즉 죽은 영을 버려야 긍휼함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빈부와 유, 무식을 따지지 않고 아들에게 입 맞추는 자를 중보 하고 살려주신다. 어차피 법은 못 지키므로 아들을 보내서 살려주시는 것처럼 앞으로의 사역은 이렇게 이루어 질 것이다. 아들이 말하게 만들어서 그 마음 판을 보고 구원해 주는 것이다.

 

왕궁에서 천문학을 배우고 호화스럽게 자란 모세도 자기가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 동족이 애굽인에게 당하는 것을 보자 참지 못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쫓겨나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은 후 능력을 입혀서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도 하나님 아들이기 이전에 죄가 없다 뿐이지 요셉의 아들로서 30년 동안 우여곡절을 다 겪었기 때문에 과부와 고아의 어려움을 보았고 율법이 어떻다 하는 유대인 문화를 다 알고 있었다. 만약 예수가 왕궁에서 자랐다면 유대인들의 어려움을 하나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법만 따지면 안 되고 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어떤 법에 의해서, 성경만 따져서 할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처해 있는 현실을 보게 되면 이단까지도 다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각 사람에게 왔듯이 예수도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부활하여 각 사람에게 오셨다.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오셔야 하는 이유는 인간들과 사귐을 갖고 대화를 해서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며 최대한 나를 줘서 나를 밟고서라도 살 수만 있다면 살아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 시대는 사람들이 모두 상처를 받아 서로 피하고 있고 사람을 대리해서 동물을 기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남편, 그들의 부모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한데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어야만 희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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