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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삼위일체란?

작성자마르다

작성일2019-12-01

조회수95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삼위일체란?

마태복음28;16-20

 

기독교인들은 성부, 성자, 성령을 삼위일체로 믿고 있다.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니까 곧 하나님을 믿으면 예수를 믿는 것이고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성령을 받으면 예수를 믿는 것과 똑 같음으로 다 하나이라며 자기들이 유리한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본문 19절을 보고 성령을 받으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냐, 성령을 받았으니까 우리 속에도 예수가 있다고 말하는데,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해당 되는 말이다. 율법을 육체에 주신 유대인들은 율법을 거역해서 육체에 생긴 병을 들고 예수 앞에 나가 고침 받으면 병과 함께 마음속의 죄까지 다 해결된다. 그리고 나중에 예수가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마귀발아래서 나오고 그 증거로 성령이 오시게 되면 영과 혼(마음)이 죄를 벗어 버리고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맞는 말이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말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어긴 죄를 들고 예수 앞에 나가 해결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방 기독교인들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사도 바울을 통해서 성령과 그리스도영을 다 받아야 구원에 이르는 것을 예표로 보여 주셨다.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만 불러도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성령은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의 영이 아니라 성령의 법을 마음으로 따라 살아야만 구원이 되는 영적인 율법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 해도 죄가 되는 성령의 법을 지킬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기독교인들은 우리조상 아담이 지었던 원죄는 예수피의 효력으로 마귀가 떠나고 성령이 오심으로 우리의 은 해결이 되었지만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죄를 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 나가 마음’()속의 죄까지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를 내안에 모심으로 구원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율법 없이 살아온 기독교인들은 법이 먼저 주어짐으로 유대인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을 받았으니까 우리 속에도 예수가 있다고 하게 되면 자기 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죽은 영(자아)이 쾌재를 부를 것이다.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하나로 봐야만 죽은 영이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가 이렇게 온다는 것을 알 수도 없고 받은 적도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 영을 받아봐야만 하시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가 하시는 일을 성경을 통해서 봤음에도 성령과 성부와 성자가 다 하나라고 생각하고 각각 하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부는 여호와, 성자는 예수,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라고 보고 있다. 여호와는 천사이기에 틀리지는 않지만 엄격하게 따져서 하시는 일들이 다르기 때문에 나눠야 하는 것이다. 여호와가 율법을 준 것은 맞다. 천사를 통해서 준 것이다. 구약은 천사를 통해서 일을 했다. 그래서 아들이 와서 율법을 완성시키고 마지막에 성령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일들이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성자인 그리스도영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설명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설사 설명을 한다 해도 성부와 성령은 얘기하지만 당신 속에 죄가 있지 않느냐고 하면 보편타당하게 그런 죄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면서 예수가 다 사해주지 않았느냐고 하는 것이다. 예수만 믿으면 죄를 사해주지 않느냐고 할 때,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이 주님 음성으로 착각하여, 주님이 내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꼼짝없이 속아버리는 것이다.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사역을 할 수는 있지만 24시간 내내 역사할 수는 없다. 성령의 감화 감동은 목회자가 양떼를 먹이기 위해 강단에 설 때나 꼭 필요한 하나님 뜻을 전해줄 때 잠깐씩 역사해 주신다. 그러나 하나의 심부름이나 나팔수 역할 뿐이고 이루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자기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고 성도들도 그 삶을 따라 사는 것도 아닌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외치기만 하지 정작 자신들이 이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령으로 쓰임 받는 것은 하나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것일 뿐 이루는 것이 아니므로 쓰임 받는 종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쓰임 받는 자는 끝까지 잘 쓰임 받아야 한다. 끝까지 믿지 못하고 중도에 넘어지면 구원에서도 떨어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고 말했던 이유가 그것이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따라 살려면 세상을 다 버리고 날마다 기도하고 한 눈을 팔지 말아야만 겨우 되는 것이다. 세상은 죄악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으로 크게 쓰임을 받다 보면 자기 주제도 모르고 자기 선을 넘어서게 될 수가 있다. 이것이 교만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3;15)는 말씀대로 교만은 멸망의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성령으로 크게 쓰임 받는다 할지라도 말씀을 대언하는 것일 뿐 이루어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을 보는 성도들도 당연히 따라 살 수도 없는 것이고 그저 외치기만 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삶을 그렇게 살 수가 없고 하나의 종교적 행위만 할 뿐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식상해지면 이단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성부는 온 세상과 온 우주를 다스리시며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에게도 다 하나님이 되고, 성령은 영이 구원 받는 자에게만 각 사람의 하나님이 되고 마귀가 다시 내 영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준다. 성령은 우리 영을 지배한다. 성자 인 예수가 와서 귀신을 쫓아내고 우리 마음()을 지배해야만 비로소 우리의 영과 혼이 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도 세상임금 인 마귀에게 시험을 받은 것이고 성령을 받고 이긴 것이다. 만약 졌으면 사역을 할 수가 없다.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고 마귀가 세상임금 자리에서 떠남으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성령이 각 사람에게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죄가 없는 선의 기준으로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일체이듯이 사단, 마귀, 귀신도 악의 존재로 삼위일체이다. 사단은 피조된 세계에만 있는 존재이고 하나님의 대적자로서 마귀, 귀신을 통틀어 사단이라고 한다. 마귀는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몸 밖에서 사람들을 죄로 미혹하는 일을 한다. 귀신은 자기 처소가 우리의 혼(마음)이다.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어 늘 죄를 짓도록 역사하고 있다.

 

성부는 불신자들도 간절히 찾고 찾으면 하나님은 세상 어느 곳에나 계시기 때문에 응답하신다. 성령은 아버지 영이기 때문에 불신자들은 성령을 모른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도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성령은 아버지의 본질의 영이기 때문에 아버지라 해도 하나님이 알아들으시지만 그러나 진짜 아버지는 아니다. 진짜 아버지가 되려면 우리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와야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아바 아버지'(8;15)라 부른 것이다. 양자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성전의 휘장이 찢어져서 진짜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인간의 영혼에 초점을 맞춰서 지어진 것으로 지성소는 우리의 영을, 성소는 우리의 혼(마음), 마당은 우리의 육체를 뜻한다.

 

하나님은 법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신다. 육체를 입은 적이 없고 영이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 마귀도 천사였었기 때문에 육체를 입은 적이 없고 영이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모른다. 귀신은 사람의 육체를 입었었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알고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올 수 있는 것이다. 예수도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를 속량해주기 위해서 30년 동안 유대인들 속에서 살게 한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들의 아픔, 슬픔, 고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준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아픈 감정을 느껴야 살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혈류증 여인도 하나님 법으로는 율법을 거역했기 때문에 봐줄 수가 없다. 하나님은 영이고 법이기 때문에 인간 곁에 올 수가 없어서 아들을 인격으로 보내서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알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예수가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5;30) 하실 때 저 사람의 마음이 내게 다가왔기 때문에 느낀 것이다. 우리도 상대를 보고 누가 나를 미워하는지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인격이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사람의 사정을 다 알지만 하나님은 법이기 때문에 사정을 다 봐줄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 버리면 하나님이 하나님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예수를 보낸 것이다. 하나님 법으로 따지면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아들을 육체를 입혀 보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모신 자들이 남에게 짓밟히는 자들을 건져내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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