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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감받은 자!!

작성자벧엘

작성일2019-01-31

조회수24

탕감 받은 자!!
마태복음 18장 21절~35절

본문은 우리에게 진정한 탕감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구약 신명기에 보면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 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신15:1~3) 고 기록 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또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2:13~15) 고 하셨다.


구약과 신약의 탕감의 개념은 이렇다. 구약은 실제로 채무관계를 통하여 7년이 되는 안식년에는 ‘빚을 면제하여 주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죄를 빚으로 상징화하여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탕감 하셨다고 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신명기에서는 채권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면 신약에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사탄에게 채무자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빚을 탕감 받은 자유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탕감은 무엇인지를 분명하고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대화를 하는 중에 용서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베드로가 말하기를 “예수님 범죄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몇 번이나 용서를 해줘야 하나요? 일곱 번 정도 하면 되나요?” 말하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일곱 번만 뿐만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하라”고 하셨다.(마18:21~22) 그러면 총 몇 번을 용서해야 하는가? 사백구십 번만 용서해야 하는가? 그런 숫자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탕감(용서)’ 하라는 것인데 이 말씀을 오해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각색 하여 자신들의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는데 그것을 불식시키기 위해 주님은 말씀하신다.


본문을 보면 “주인과 결산을 할 때 일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 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새 번역 성경: 멱살을 잡고로 번역. 헬라어 목을 조른다. 번역)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 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마13:24~34)


본문은 지금까지의 탕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직설적으로 주시는 말씀인데 탕감이라고 하는 것이 그냥 말로만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자신의 죄를 탕감을 받은 자 라면 자신도 누구든지 그들의 죄를 탕감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굳이 성경을 말하지 않아도 진정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탕감을 받지 못하였는데 누구를 탕감을 해준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즉, 주님으로 부터 자신의 죄를 많이 탕감 받은 자는 남의 죄도 많이 탕감 해줄 수 있다. 주님으로부터 많이 탕감 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어디에 기준을 두는 가를 생각해 보면 내 죄악의 근본을 얼마나 깨닫고,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즉 자신의 죄악과 자신의 무능함과 한계를 깨달은 것을 심도 있게 알고 있는가? 에 따라서 자신의 죄악과 자신의 무능함과 한계를 많이 알면 알수록, 깨달으면 깨달은 만큼 주님으로부터 자신의 죄를 탕감을 받은 것이 많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그만큼 다른 사람의 죄도 자신이 탕감 받은 만큼만 탕감해 줄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어리석은 자처럼 일 만 달란트나 되는 천문학적인 빚을 탕감 받은 자는 절대로 이런 우매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이 어리석은 자가 행한 일을 보면 자신은 1만 달란트를 탕감을 받았는데 겨우 일백 데나리온 (1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값에 해당하는 금액) 빚진 자를 옥에 가두는 우매한 일을 자행했다. 1만 달란트(1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는  수조(兆)원이나 되는 보통사람이 볼 때 천문학적인 금액인 것에 비해 자기가 받을 것은, 겨우 일백 데나리온 인데,  자신이 주인으로부터 탕감 받은 것을 비교해 보면 이 사람은 상대방의 목을 조르는(목을 잡고)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육신적으로도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망각하고 어리석은 일을 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의 본질 속에는 ‘죽은 영’ 있는데 이 ‘죽은 영’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신과 같이 있어서 지금까지 주인으로 있다. 원래 죽은 영은 인간의 마음에 주인이 아니라 그 마음에 주인은 바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죽은 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이 ‘죽은 영’의 정체는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빛”(영)을 비춰 주셔야 비로소 그 정체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인간은 이 ‘죽은 영’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금껏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춰 주시지 않으면 도무지 ‘죽은 영‘이 있는지도 모르고 알 수도 없다.


이 ‘죽은 영’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동을 하고 있는데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7:21~23, 참고, 롬1:28~32)라고 하신 말씀처럼 인간 내면에는 ‘죽은 영’이 숨어 있다. 결국 이 어리석은 자는 ‘욕심’이라는 탈을 쓴 ‘죽은 영’이 어리석은 짓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약1:15)


이와 같이 ‘죽은 영’이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한 인간의 온전해 질수 없다. 제 아무리 인간의 힘으로, 능력으로, 세상 어떤 것으로도, 인간은 온전히 될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의 원래 주인이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그 자리에 ‘좌정’하셔야 진정으로 온전해 진다. 마음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들어오시면 즉각 아주 적은 씨앗이 심겨지는 것과 같이 뿌려지고 이 씨앗이 자라는 것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듯이 점점 자라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싹이 돋아나고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이는 것과 같이 큰 나무가 되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게 된다.(마13:31~32,막4:8,4:26~27)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들을 때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긴밀한 관계 속에서 있어야 하고(요15:4~5)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으면서 믿음이 성장해 간다.(롬10:17)  또한 과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데 자신이 세상에 있었던 그 어떤 것도 전부 버리지 않으면 온전하게 성장해 갈수 없다(마19:29,막2:22).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혈연, 지연, 학연, 권력, 지식, 경험, 물질, 명예, 자기의 의(義)등등)이 되었든, 그것이 0.0001%도 있어서는 안 되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벽하게 인간의 마음의 주인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되셔야 드디어 자신의 죄를 제대로 주님으로 부터 탕감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죄를 탕감을 받아야 그때서 남의 죄도 탕감 해줄 수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예수님을 통하여 탕감을 받은 자라면 절대로 남을 비판하거나, 멸시하거나, 무시하거나, 옥죄이거나, 업신여기거나, 하대하지 않고, 짓밟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여전히 남을 비판하거나, 멸시하거나, 무시하거나, 옥죄이거나, 업신여기거나, 하대하거나, 짓밟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제대로 “탕감” 받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예수를 믿고 있는 자들의 속에는 ‘죽은 영’이 마음속 깊이 숨어서 겉으로는 모든 것을 다해줄 것 같고 하늘의 달이라도 별이라도 따줄 것 같지만, 실상은 짓누르고, 참고, 숨기면서, 겉으로 거룩한 척, 잘 믿는 척, 잘하는 척, 착한 척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따름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죽은 영”은 처음부터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교묘하게 눈으로 볼 수 없게, 본인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여  결국 인간을 넘어지게 하고 쓰러지게 한다.


“선”이고 “진리”이며 “기준”“표준”이 되시는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인간을 인도해 주시지 않으면 누구든지 ‘죽은 영’의 간교한 계략에 넘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은 자는 절대로 ‘죽은 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죽은 영’이 아니라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표준”(標準)이시고 “기준”(基準)이시기 때문이다. ‘기준’은 ‘변동’도 없고 ‘변질’도 없고 ‘변화’도 없고, ‘완벽’하다.


그러나 ‘변동’하고 ‘변질’ 되고 ‘변화’되는 것은 “죽은 영”의 역사이고 아직도 자신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탕감’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탕감 받아야 드디어 자신도 남의 죄를 탕감해 줄 수 있다.


본문 말씀에 보면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 고 하신다. 여기서 “마음”이라고 하는 말씀을 쓰고 있다. 그 마음을 주장하시는 분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마음을 강조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겉으로 탕감해 주는 것 같아도 같아도 마음으로 ‘탕감’해 주지 않으면 결국 그것은 아직도 자신이 ‘탕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것은 이성(생각)으로만 탕감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앞서 언급한 어리석은 자의 행동과 같은 일이 일어나 않는다. 는 보장을 할 수 없다.


그 ‘이성’의 탈을 쓰고 있는 ‘죽은 영’(죄악, 자 범죄, 본질, 이성, 자존심)이 탕감해 준 척하는 것이다. 이 ‘죽은 영’이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한, 인간은 누구도 죄악을 ‘탕감’을 받을 수 없고, 남의 죄악을 ‘탕감’ 해줄 수도 없다. 인간의 마음의 주인은 바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魂)의 주인이신데 그 주인이신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분명히 ‘죽은 영’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죄’(본질, 죽은 영)를 제대로 된 ‘탕감’도 받을 수 없고 남의 ‘죄’(죽은 영)를 탕감을 해 줄 수 없다.


영적인 법(성령)아래 있는 모든 인간은 아직도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한 죄’를 해결 받아야 하는데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자기 자신이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미 부패 할대로 부패하여 져서 죄악을 탕감해 주기는커녕 받아들이지도 않고, 대적하고, 비판하고, 거역하고, 이단으로 매도하고, 자기들끼리 당을 만들고, 심지어 죽이는 일도 멈추지 않는다.(롬1:18~32)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자만 자신의 죄악을 “탕감” 받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죄악을 “탕감”해 주되, 자신이 “탕감” 받은 만큼 “탕감”해 줄 수 있다. 이것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탕감’받은 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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