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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작성자벧엘

작성일2019-05-11

조회수91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마가복음 10:13~16

인간과 세상은 불안하기 때문에 불안을 없애기 위해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이 인간들의 삶을 잡아 주고 있다. 그래서 법(기준)이 있고 그 법(기준)을 다스리는 기관도 있다. 그러나, 세상의 기준은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으나,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 기준이 들쑥날쑥한 것을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의 기준을 세우시고, 그 기준에 맞아야 한다고 하신다. 그 기준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그 예수님이 오셨을 때 당시의 많은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진심으로 환영했어야 맞는데 역으로 극심하게 반대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죽였다. 그 이유는 율법을 주신 분이 율법의 완성을 위하여 아들을 보내셨다고 하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율법을 완성을 위하여 아들을 보내셨고 그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신비한 계획을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결국,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셔서 만난 사람들을 보면, 하나 같이 당시의 사회에서 천대받고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제외되었던 이들을 만날 뿐만 아니라, 그들과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러니 당신의 율법 학자들과 유대인들은 당신이 선지자만 되었어도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만큼 율법에 세뇌가 되어 있고 그 율법을 주신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유대인들과 율법사들은 율법을 지키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있었다. 이것이 자기 의가 되었다.

 

결국, 인간의 가치 기준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자신이 정해 놓은 기준과 한계를 넘지 못하고, 또한, 그 한계를 넘을 수도 없다. 그것은 자신들이 쌓아 놓은 기준이 되고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을 헐라라고 하신 말씀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제 천국의 기준이 당장 눈앞에 현실적으로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이 정해 놓은 그 기준이 맞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기준인 것도 모르고, 또한 유대인들이 말하는 것이 기준이 아니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도 없다.

 

예수님이 오셔서 계속해서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속셈(죄악)을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인간의 육신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므로, 도무지 이해도 안 되고 그 말씀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만날 수 없고, 기차의 레일이 만날 수 없는 것과 같이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

 

예수님은 인간의 생각 가운데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성소)속에 있는 것을 지적하신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악(원죄)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그 원죄를 해결해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셨는데, 성령을 주신 것을 구원받았다고 하는 증거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마음속에는 누구든지 자범죄(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인간 스스로 알 수도 없고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결국, 이제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죄악(자범죄, 죽은 영, 본질)을 지적하고 그 죄악을 해결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것을 지금이 아니라 죽은 후에 일어날 것으로 알고만 있는 이들이 태반이다. 이미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직접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죄악을 지적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이 쌓아 놓은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구원을 절대로 버리지 못하고 있다. , 버려야 얻어지는 지극히 작고 상식적인 원리인데, 그것을 버리지 않고 얻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한 결코, 구원을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알고 있다면 인간은 결국 스스로 무엇을 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과 따르지 않았던 자들을 비교해보면 분명히 차이가 난다. 따르던 자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문제가 실제로 삶에 밀접한 연관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풍 병자, 혈루증 환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 세리, 등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한 자들을 볼 수 있다. 누구든지 일부러 질병을 앓고 싶은 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인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실제적으로 겪는 많은 것을 보면, 자신이 원치 않는 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은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총동원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노력했으리라 볼 수 있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 이들이 최후의 선택은 바로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이것도 하나님 은혜이다.

 

그러나 자신의 방법대로 삶을 살아온 자들은 예수님과 전혀 상관이 없이 살아온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굳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아도 순탄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도움이 없이 살아왔고 절실히 필요성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든지 구원에 대한 문제만큼은 어렵게 살았든 순탄하게 살았든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어진 것은 바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는데 중요한 것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시작과 끝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전도서 3:11)

 

결국,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모를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오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해 주시고 있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인간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시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인생도 바르게 살지 못하는데 당당하게 남(우리)의 삶을 책임 진다고 하신다면 과연 그에게 세상을 이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 아니겠는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나를 믿으라. 믿지 못하겠거든 나의 하는 일을 보고 믿으라라고 하셨다.

 

실제로 상대를 믿으려면 의심이 없어야 한다. 또한, 상대에 관하여 알고, 상호 신뢰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은 겉으로는 믿는 것같이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가복음 10:15) 고 하셨다.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과 못나고 어리석음을 알고 있는데 무엇을 바라고 있겠는가? 오직 감사와 은혜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의 믿은 만큼 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과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능력인가? 아닌가? 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능력의 출처가 어디 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인간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한없는 미약한 존재이고, 쓸모없는 존재인데, 하나님이 미약하고 버림받고 천대받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결국, 인간은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고 지혜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의 우둔함을 드러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낮추고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 있는 자의 삶이다.

 

그리스도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실제로 몸소 이루어가고 있다. 상상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 삶의 현장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작고 미미한 것을 하나씩 이루어가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경험해 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오늘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기 생각의 틀 안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은 미련한 것이고, 또한 육신적으로 생각해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메시아를 생각한다면 그것도 잘못이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생각과 의도를 뛰어넘어서 본질적인 인간의 영혼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감춰진 인간의 죄악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수술하는 메스로 잘못된 부분을 잘라내듯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죄악을 드러내신다. 그 이유는 내 자신을 살리기 위한 것임을 절실히 깨닫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6:4) 그것이 내 자신이 살길이다. 자신을 드러내면 죽는 일이요, 자신을 낮추면 사는 길임을 인식하고 은혜로 감사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