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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義)를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사역

작성자벧엘

작성일2019-07-27

조회수61

제목 : 하나님 의(義)를 이루시는 그리스도 사역
본문 : 마태복음 10:40~42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볼 때,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겉으로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사람의 속은 무엇으로도 볼 수 없다.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너무나 인간의 속성을 잘 아신다. 하나님이 의를 세우셨다. 그 의를 세우셨다는 것은 기준을 세우셨다는 말씀이다. 그 기준의 근본이 마음에 있는데 그 마음의 근본을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자신을 볼 수도 있고, 자신을 볼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즉, 마음의 근본이 선에 있는가? 아니면 악에 있는가? 에 따라 달라진다. 그 근본이 되는 것이 마음인데 아담 이후로 인간은 누구도 그 마음이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살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선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 10)’라고 하셨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하여 보듯이 인간은,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거울을 통하여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거울을 볼 수 없다는 것인데, 이 거울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거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거울을 통하여 자신을 보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거울이 되는 것을 처음부터 가르쳐 주고 ‘이것이 거울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미미(微微)하게 들려오는 것이나, 또한,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하여,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좋은 예로 가인과 아벨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부모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 보려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양을 드렸는데, 가인은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마음을 다하지도 않고, 힘을 다하지도 않고, 뜻을 다하지도 않았다.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그것으로 인하여 가인은 아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분노를 내고, 결국 가인은 아벨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고 아벨이 받은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을 내고 말았다.


인간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다. 자신에게 여건과 조건을 주셔서, 그 일을 하게 하시고,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가를 세밀히 곱씹어 생각해 보고, 그 의미를 알아보고자 하여,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 여건, 조건, 사람, 일의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여건과 사건과 조건을 주시고 사람을 붙여 주시지만, 자신이 낮추지 않으면 그 뜻을 알 수 없다. 즉,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미련하고 허접한 존재임을 알지 못하면, 제아무리 귀한 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지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만다. 이처럼 영적인 세계는 인간의 육신으로 생각하는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높아져 있다는 증거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누구도 모르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은 이미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그 증거로 성령을 받아서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유대인을 중심으로 쓰인 성경을, 자신들의 것인 양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십자가에서 흘려 주신 피로 인하여,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누구든지 성령을 받게 된다. 성령을 받게 된 것은 마귀 지배하에 있던 자가, 죄 없는 예수 피의 대가로 인하여 드디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것이고, 그 증거로 성령을 받은 것인데, 이제부터는 성령의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어서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 것과 같이, 이제 성령을 받은 것은 이제부터 성령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부여한 것을 말한다. 즉 영적이 율법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성령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자는 누구도 없다. 마치 율법을 누구도 지킬 수 없음을 아시고, 이제 아들에게로 나오라고 하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제 기독교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자랑하고 충만하기를 원하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증거(모형)이지 그것이 실체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이들이 증거(모형)만 보고 믿고, 실체가 이미 오셨고 사역을 진행하고 계시는데 전혀 믿지 않는다. 보이는 것만 바라보고 있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한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라는 말씀과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시기 위함이라’ 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이미 앞서 언급하였듯이 성령의 증거를 눈에 보이도록 해서 믿음으로 가는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믿지 못하니까 보이는 것으로라도 믿고, 이제는 실체인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는 뜻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이미 성경에 언급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체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고, 그 자체를 오용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특히, 지도자들이 이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한다. 성경은 아니지만,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경구가 있다. ‘약 좋다고 남용(濫用)하지 말고 약 모르고 오용(誤用)하지 말자’라는 이 말이 기독교인의 상황을 아주 잘 말해 주고 있다. 경쟁하듯 교회의 첨탑은 높아져 가고, 우후죽순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명예를 얻는 일은 다투어 달려가고, 어렵고 낮고 천한 곳과 어려운 이웃은 외면하고, 관심도 없고, 정치와 세상의 것에 더욱 철저히 야합하고, 죄악은 전혀 건들지도 못하고 도리어 죄악과 결탁하여 덮어 버리고 있다. 무늬만 기독교가 있는가 하면, 주님을 찾고 하나님을 찾고 있지만, 실제는 자신의 이익과 유익을 위하고, 이 땅에 육신의 것을 위하여 찾았고, 기도를 했고, 봉사도 하며, 선교를 한다고 하였지만,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고, 더 나아가서 이름을 남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다시 유대인들에게로 돌아가서 살펴 보면, 선지자들과 예언자들도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하는 예언을 했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메시아를 정하고 그 당시 자신들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실 메시아로 정해 놓고 메시아를 보내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이미 예언자나 선지자들도 예언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고 그 자체를 무시해버렸다. 그러나 이사야가 말한 대로 전혀 의외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죄인들과 함께하였고, 율법을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율법에 있는 것조차 지키지 않고, 오히려 범하고 있는 예수를 믿을 수 없었고, 자신들의 관점에서 볼 때 도전적인 말을 하는 예수를 오히려 이단으로 몰아갔고, 배척하고, 악과 결탁하고, 역모해서, 결국 십자가에 처형시켜 버렸다. 아직도 이들은 이미 오시어 사역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즉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자신의 의로 삼고 그것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른 줄로 착각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미 우리에게 오셔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이를 도적같이 오셨다고 하는데 그 말은 누구도 알지 못하게 오신다는 것을 말한다. 소문을 내고 오시는 분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게 아주 작게, 잘 보이지도 않게 이미 오셨다. 그러나 미미(微微)하게 오신 것을 이미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증거가 바로 ‘겨자씨 비유’를 통하여 잘 설명을 해주고 있다.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다. 그래서 그 씨앗의 싹을 틔우기가 힘들다. 심혈을 기울여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싹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싹이 나면 그 싹이 잘 자라도록 해주어야 한다. 영양제와 적당한 거름도 비료도 주어야 하고, 김도 매주어 잡초도 제거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병 때문에 방제도 해야 하고, 유해동물이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잘 자라도록 했으나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기도 하지만, 강력한 외부(악)의 공격에 못 이겨서 죽어가는 예도 있고, 세상 것과 연결되어 자라지 못하는 예도 있고 밭의 근본(마음판)이 안 좋아서 싹이 나지 않는 예도 있다.


문제는 싹이 자라야 하는데 자라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된다. 즉 어린 싹은 마치 엄마 배 속에서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만나 수정된 태아와 같아서, 계속해서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태아는 자랄 수 없다. 심각한 경우는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모태로부터 적절한 영양을 공급받아서 자라가야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결국, 성경은 이미 우리에게 이와 같은 것을 가르치고 주셨는데 누구도 이것을 깨달을 수도 없고, 스스로 깨달아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사실을 알려 주시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사실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을 수 있으나, 정확하게 근거를 가지고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 일들을 알도록 마음의 눈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천하의 누구라도 알 수 없다.


성령은 인간의 눈으로 보이도록 임재하지 않는다. 다만 성령의 형태를 말씀하신다. 예컨대, 불, 비둘기, 기름, 뜨거움 등등이다. 이것은 성령의 형태인 증거를 보여주심으로 믿게 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성령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여하시는데 그 결정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게 된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기독교 지도자들 가운데, 성령의 은혜로 교회를 키우고, 선교도 하고, 봉사도 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세계평화를 외치고 있으나 그것은, 완전착각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나라와 국가와 세계역사를 좌우지 하는 것은 절대로 하시지 않고, 오직, 한가지 죄와 죄인에게만 관심을 가지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역사처럼 오시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오셔서 인간의 혼과 관절을 쪼개기까지 하여 죄악을 예리하게 드러내신다. 그래서 성령의 은혜로 살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 속에서 죄악(자범죄)을 쫓아내고 주인으로 주장하셔서 드디어,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이루신다. 이것은 영적인 위계질서를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성령과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리스도께서 승리의 나팔을 불고 개선장군처럼 오셔야 하는데 전혀 알지도 못하게 오셨다. 그리스도는 너무나 작게 오시기 때문에 보이기는커녕 본인도 모른다. 마치 임신한 여인이 임신한 것을 당장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높고 위대하게 오신 것이 아니라 누구도 눈치 못 채게,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오셨다는 사실이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 라는 말씀이 곧 이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아주 작게 오셔서 자라가서 결국,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해 간다. 그때 많은 새가 큰 나무에 깃들이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이처럼 된다. 이와 같은 일은 이미 앞서 언급하였듯이,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절대로 그리스도를 모실 수 없다. 예수께서 낮은 데로 오셨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낮추고 또, 낮추는 자에게 누구도 모르게 임재하여 좌정하신다. 그리고 그를 주장하셔서 자기 뜻대로 살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오직 자신의 죄인 됨과 나약함과 부족함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명령으로만 살아간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시는 그리스도 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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