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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인격적으로 오셨다.

작성자벧엘

작성일2019-09-01

조회수19

제목 : 그리스도는 인격적으로 오셨다.
본문 : 요한복음 1:1~18

 

인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다는 말을 오늘날 많은 사람 들은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인간과 소통을 원하셨으나 그 소통을 단절되어 버렸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과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결국, 그 죄(마귀의 죄)를 드러내기 위하여 인간을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도구로 쓰임 받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이 땅에 내려보내서 구원 사역을 하시게 되었다.

 

문제는 인간이 지은 죄로 인하여 인간을 사로잡았고 마음을 지배하여 죄악의 근원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자신은 그 죄악의 본질임을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도 유대인들은 율법을 육체에 받아 보호를 받고 살았기 때문에 죄악의 무게가 이방인들보다는 덜하지만, 이방인들은 율법을 받은 적도 없고, 율법 아래서 살아본 적이 없고 도리어 악의 본질이 꽃을 피우도록 살아왔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유대인은 율법의 보호를 입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생을 마감할 정도로 그들의 삶의 모든 면에 율법이 기본이 되어 있다. 이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도리어 그 율법을 지키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오늘날 현실은 그 율법의 의미와 정신은 없고 형식만 남아 있어서 외식 주의와 형식주의만 남아 있다. 그 증거가 바리새인들이 그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자랑하고 그 율법으로 자신의 의()를 삼았다. 실상은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알고 아들이 올 때 그 아들에게 나오라는 의미인데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을 전하실 때 그 말씀을 믿고 나오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율법을 지킬 수 없어서 율법의 저주로 인하여 육신의 병이 들고 고통을 당하는 자들만 예수 앞으로 나와서 그들의 질병을 치유 받고 더불어 구원을 받게 되었다.

 

말씀에 언급하였듯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사건이 바로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오셔서 인간의 갖는 모든 것을 다 섭렵(涉獵)하셨다. 인간이 갖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전부 경험하셨다. 그리고 인간이 갖는 최고의 비극도, 최고의 고통도, 죽음도 다 섭렵하였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이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그토록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고귀한 뜻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누구도 그 고귀한 뜻을 알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은 그 아들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앞에서 유대인이 율법의 보호를 받았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방인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자. 이방인은 이미 앞서 언급하였지만, 율법과 상관이 없이 살았다. 사람을 통하든 교회를 통하든 교회를 나오게 되는데 이들에게 역사하는 것은 바로 성령이시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든지 주를 시인할 자가 없고 또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그 이유를 상고해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인간이 지은 죄악이 바로 원죄(原罪)인데 이것은 나 자신이 지은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 아담이 지은 죄이다. 이 원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시고 그 죄를 속량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해결해 주셨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이, 바로 부활하신 것이 완벽한 증거가 되었다.

 

그리고 마귀는 자신의 죄가 철저하게 드러나게 되고 인간의 영을 지배하였던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 즉시 성령이 그 영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증거로 성령을 보내 주셨다. 이이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의 대가로 인하여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성령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성령을 받은 것을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성령을 주신 것은 이제부터는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책무가 있게 된다. ,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야 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육체에 율법을 받은 것과 같이 이방인인 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바로 영적인 율법이 된다. , 생각으로가 아닌 마음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말씀하신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방인들도 예수 이름을 부르면 성령을 받은 것을, 구원받았다고 잘못 알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미 인간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셔야 하는데 그 마음의 속에는 죽은 영(자아, 본질, 자신)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죽은 영이 있는 한 누구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 수 없다. 그곳의 주인은 원래는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는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영은 마귀가 자리를 잡고 혼의 그 자리를 죽은 영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성령의 뜻대로 살 수 없는 증거는 내 마음속에 주인이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령을 받아서 영의 문제는 해결 받았어도, (마음)에 주인이 죽은 영이 있으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수 없다. 결국, 인간의 원죄(原罪)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해결 받았으나, 인간의 자범죄(自犯罪)는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결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오늘날 그리스도는 인격적으로 오셨다는 사실이다. 인격적으로 오셨다는 의미는 인간의 모든 것을 섭렵하셔서 인간이 갖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신적인 존재로 높이고 있고 감히 인간이 다가설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만 생각하고 바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죽으신 예수만을 생각하고 있다. 바울이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고 살았다는 것을 하나의 전설로만 말하고 있다. 누구도 바울이 만난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도적 같이 오셔서 낮은 곳에서 일하신다. , 인간의 마음의 병을 어루만지시며 인도하신다.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높은 보좌 위에 계시는 것이 아니고 아프고 고통당하고 숨어서 눈물만 흘리는 낮고 천한 곳에 있는 자들처럼, 오셔서 그들의 애환을 감찰하시고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생각하는 뜻과는 전혀 반대로 오셨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내지 않으면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 생각에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해야 한다. 즉흥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이며 세밀하고 치밀하고 마음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리스도를 뵐 수 있다. 신적인 존재가 아닌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지만, 생각과 삶과 말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삶을 좋아해서 살아가게 되면 그의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주장하시게 된다.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세상의 지식으로 이해되는 것아 아니고, 인간의 생각으로도 이해되지도 않고 세상의 배움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학문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관습으로도 되는 것도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서 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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