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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통해야 살수 있다.

작성자벧엘

작성일2019-09-07

조회수11

제목 : 그리스도를 통해야 살 수 있다.
본문 : 고린도전서 15:45~49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뜻을 나타내신다. 악이라 할지라도 그 악을 합법적으로 정확한 근거에 의하여 그 죄를 드러내신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다고 하는 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이 잘못 해석하고 있다. ? 인간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인간을 만든 것은 악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하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찬양하는 것이 주 임무를 부여받은 루시엘이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면서 죄가 들어왔고 그 결과 때문에 루시엘은 루시퍼(마귀)가 되어 영계에서는 지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땅에 내려오게 된다. 결국, 그 악을 드러내기 위하여 인간을 만들었고 그 영적인 존재인 인간을 가만두지 않고 루시퍼가 접근하여 결국 그 죄의 습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렇게 루시엘이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게 되면서 루시퍼가 되고 하나님은 예수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을 떠나면 악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법이시고 그 법은 누구든지 어기면 그 즉시 악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하여 악이 들어 왔고 그 악은 인간의 영과 혼을 통째로 삼켜 버렸고 하나님은 인간을 떠나셨다. 하나님이 떠나셨다.라고 하는 것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있을 수 없듯이 하나님은 악과 함께 있을 수 없다. 빛이 없으면 어두움이 되는 원리를 그대로 가르쳐 주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빛이 될 수 없고 오직 빛의 근원을 통하여 살아야 하는데 빛이 없어졌다. 빛이 없으면 자연히 어두움이 된다.

 

이제 첫 사람 아담은 죄로 인하여 실패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은 실패가 아니라 선()을 세우셨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을 세우셨다.라고 하는 것을 이렇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인간의 문제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죄악이 문제인데 그 죄악을 처음 사람은 실패하였으나, 두 번째 아담은 그 자신이 십자가 죽으심으로 인간이 지은 해결해 주셨다. 선이 되시고 기준이 되셨다(요한복음 14:6). 문제는 넓은 의미에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본질(죽은 영, 자아)은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 받을 수 없다.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길을 열어 주셨다.

 

그것은 인간의 영()은 하나님이 주장하셔야 하는데 이미 죄로 인하여 마귀에게 사로잡혔다. 이제 예수께서 피 흘려 죽으셔서 속량(贖良)하심으로 원죄(原罪)를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다시 원래 주인의 자리를 찾으셨다. 그 증거가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을 말한다. 즉 원죄를 해결 받은 증거(證據)가 성령을 받은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율법을 주신 이유를 자신들의 판단으로 해석하기 때문이고 믿지 않았고 도리어 대적을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질병으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있던 이들은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들의 문제와 영적인 문제도 해결 받았다.

 

여기서 잠깐,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 여정이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자. 먼저 유대인을 보면 유대인은 시작을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시작하였고, 그 택하심으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율법의 보호를 받았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유대인들은 율법의 보호 속에 살았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생활 전반이 율법의 범주 안에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만큼 율법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복지, 등 생활의 모든 분야에 율법이 생활화되어 있어서 율법을 떠나서는 어느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율법으로 시작하여 율법으로 마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율법에 나와 있는 것을, 더 잘 지키기 위하여 613가지의 율법을 더해서 시행세칙을 만들어서 그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지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좋은 예로 선한 사마리아 비유(누가복음 10:25~37. 참조)’를 들 수 있다. 이 비유에서 제사장의 처지에서는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울 수 없다. 그래서 제사장은 강도 만난 자를 보고도 외면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율법과 전혀 상관이 없으므로 강도 만난 자를 도울 수 있었다. 유대인들이 율법에 따라 살게 되면서, 그 율법이 결국, 자기 의()가 되어서 율법이 추구하고 있는 본질은 외면한 채 율법을 하나의 요식 행위로만 행하는 외식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어느 누가 되었든지 아담의 후손은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서 도사리고 있는 악 때문에 선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제 그 아들을 보내 줄 것이니 그 아들에게 나오라고 하시는 뜻인데, 그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혈안(血眼)이 되어 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율법을 몽학 선생이라고 하였다(갈라디아서 3:24). , 율법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길라잡이(안내자)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만난 후로는 길라잡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 이것이 율법을 주신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다.

 

문제는 여기서 이방인을 보면, 이들은 한 번도 율법을 받은 적도 없고, 율법 아래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하여 성령을 받은 것이 원죄(原罪)를 해결해 주신 증거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누구도 그것을 가르쳐 준 적도 없고,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적이 없었기에 이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성경에 있는 것은 유대인을 상대로 쓰인 것인데 이것이 마치 이방인들을 위하여 쓰였다고 믿고 성령을 받은 것을 구원을 받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또한,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하나로 보고 있다. 이미 성경에도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사도행전 2:21)”.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고 있다. 거듭 언급하지만, 성경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든지 주를 시인할 수 없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린도전서 12:3). 이렇게 성령을 통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는데 이미 앞서 언급하였듯이 유대인들은 율법의 보호로 인하여 살았기 때문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를 시인하면 구원에 이를 수 있지만,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유대인과 같은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은 후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를 시인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도리어 걸림돌이 되었듯이, 이방인은 자신들이 예수를 불러서 성령을 받은 것을 구원에 이른 줄 알고 착각하고 있다.

 

성령을 주신 것은 마귀의 자녀에서, 이제 겨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을 마치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령을 받은 것은 영적 율법이 되어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켰듯이 이방인은, 이제 마음으로 이 영적 율법인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할 책무(責務)가 부여된다. 이제 겨우 하나님 백성 되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 수 없다. 그 이유는 마음의 주인(죽은 영, 자아, 본질)이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에, 그 주인(죽은 영)이 성령을 따라 살 수 없게 만들고, 자기 방식대로 살게 한다.

 

문제는 인격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다고 하는 사실을 누구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도적 같이 오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이루고 계신다(데살로니가 전서 5:2). 오늘날 이방인들이 육으로 오신 그리스도만을 믿고 자기의 상상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는 상상 속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금 여기에 오신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은 이미 여기에 있다고 하시는 말씀을 오해하고 있다. 천국은 어떤 형태로 눈에 보이도록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계신 곳을 말한다(누가복음 17:21). 인격을 가지신 분이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그대로 나타내시면서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인간을 주장하신다.

 

성경을 읽어보면 처음과 둘째를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모세와 여호수아’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등등 이와 같은 것은, 오직 이제 그리스도께서 이미 본을 보여 주셨다. 육신의 몸을 입고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것을 체험하셔서 인간의 인격을 그대로 드러내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육신으로 오신 예수의 임무를 완수하셨고 하늘로 가셔서 그리스도의 영이 되시어서 그 모형을 바울에게 보여 주셨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표 한 것이라면, 인격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세우시기 위함이다. 바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낸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정문을 통과하시며 합법적이시고 가장 낮은 자의 위치에서 진정한 사랑(희생)을 베푸시며, 세상 것과는 상관이 없고,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으며, 공익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도 그와 같은 일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포도나무 비유(요한복음 15:1~27)”에서 말씀하신 대로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택한 것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택하여 주셨기 때문(요한복음 15:16)에 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한다는 그 자체가 악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그저 그리스도께서 인도해주심에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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