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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만 된다.

작성자벧엘

작성일2019-12-01

조회수49

믿음과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만 된다.
로마서 10:17


많은 사람은 자기 생각과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대하여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그것을 알게 되면 허탈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왜 인간을 창조되었는가를 고민하면서 깊이 생각해 보면 답을 얻을 수 있고, 그 답과 함께 해결책도 나올 수 있다. 인간의 창조 하신 이유를 알게 되면 나를 알게 되고 나를 알게 되면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역사하며 작동하는 근본과 원인을 알게 되면, 해결책도 알 수 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를 원하셨는데 그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늘에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다가 이 땅으로 영적인 세계에서 쫓겨 난 루시퍼(마귀)의 죄악을 합법적으로 드러나도록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에게는 다를 피조물과는 다르게 영적인 존재로 만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흙으로 육체를 만드신 다음, 하나님의 영을 넣어주셔서 생령(生靈)이 되었는데 하늘의 비밀을 알고 있는 루시퍼(마귀)는 인간을 가만두지 않고 즉각, 그에게 접근하는데 하와를 먼저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고, 그 남편에게도 결국 넘어지게 한 사건이 바로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원죄)이다. 선악과 사건을 통하여 백일하에 마귀의 정체는 드러났고 인간은 그 죄악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육신의 고통을 감당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마귀의 죄악을 드러내기 위하여 인간을 사용하신 것 때문에, 인간이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라! 라고 하고 있으나 인간은 그 잘못 조차를 모르고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죄악의 늪에서 전혀 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다. 아담 이후로 노아시대 까지 보면 노아를 의로 세웠지만 죄악이 관영하여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 후로 아브라함을 의로 세우셨지만, 역시 인간들을 하나님의 의도와는 별개로 살았다. 결국, 애굽으로 이주하게 만들고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어서 그 율법의 뜻을 따라 살아가라고 하셨지만, 이를 지키려고만 했지 율법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을 주신 의도와는 반대로 살아가고 도리어, 그 율법을 자신의 의로 여기며 목숨 걸고 지키며 살아갔다. 율법은 인간으로서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를 원하셨지만 도리어, 율법을 더욱 의지하고 기준으로 삼았고 결국 의로 여겼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고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였지만, 그 약속마저도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들의 관점으로 편리하게 해석해 버렸다.


이렇게 창세 이후로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해 내기 위한 그 위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주었지만, 그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알고 이제는 아들에게로 나오라고 하고 있는데 자신의 관점에서 율법을 해석했고, 메시아를 보내 주신다는 것 자체를 자신의 이익과 유익을 위하여 해석하고 말았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를 만들었고 그 기준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보려고 했다. 예수를 볼 때 자신들의 관점과 전혀 맞지 않음을 알고, 율법을 어기며 죄인과 더불어 친구가 되어 다니는 예수를 믿을 수 없음은 유대인의 처지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이들은 예수를 부인하고 이단으로 몰아서 예수 죽이는 극악무도한 짓을 행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기회를 주셨듯이, 이방인들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시고 계시다. 인간을 지배하는 마귀를 쫓아내려면 죄 없는 인간의 피를 마귀가 요구하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도 죄 없는 피의 대가를 지급할 수 있는 자가 없다. 결국,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마귀에게 죄 없는 인간의 피를 내어주면서 마귀는 세상의 임금 자리에서 쫓겨가고 드디어, 성령이 인간의 영을 지배하시게 되었다.


문제는 성령의 지배를 받은 것은 단지,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은 증거로 주신 것인데 성령을 받은 것을, 모든 죄에서 구원받았다고 알고 있으므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을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영(靈)은 하늘에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배 아래에 있고, 인간의 혼(魂)은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로 인간은 영과 혼이 마귀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예수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영은 성령의 지배로 해결 받았고, 혼은 그리스도가 주인인데 그 주인의 행세를 하는 죽은 영(자아, 본질)이 아직도 버티고 있다.


이 죽은 영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므로 자신이 곧 죽은 영인데,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해야 하는데 도리어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오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다. 그 빛(말씀)을 받아서 자신(죽은 영)의 모습을 보고 싫어하고 미워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자신을 옹호하고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예컨대, 마음의 그릇에 무엇인가 담겨 있는데, 더 좋은 것을 더 담기를 원한다면, 현재 담겨 있는 것을 버린 후에 담을 수 있다. 이미 담겨 있는 그곳에 다른 것을 절대로 담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포도주가 있다고 해도, 새 포도주를 채우려면 이미 있는 것은 완전히 쏟아내고 소제(掃除)한 다음에 새로운 포도주를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둘 다 버리게 된다. 좋은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때는 좋은 것은 무조건 버려야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버릴 때는 싫어해야 하고 미워해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쓸 수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쓸 수 없으므로 버린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여러 매체를 통하여 수많은 말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서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여러 가지 많은 일에 동참도 한다. 그러나 왜 일련의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믿는 행동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알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그 알고 있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몸으로 체험한 것을 직접 몸으로 행하여야 하는데,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행하는 것은 분명하게 아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믿음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조금만 신경 쓰면 누구든지 알 수 있다.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즉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이란 신뢰를 말한다. 신뢰는 변함이 없는 것이고 변질도 없는 것이며 변동도 없다. 결국, 아는 것이 생각에서 이루어진다면 믿음은 마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뢰를 요구하시는데, 이 세상에 누구도 남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아들을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다. 앞서 언급대로 누구든지 남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주시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아들이 부활하셔서, 이제는 그리스도 영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마음) 들어오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면 그 귀한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받아들인 그리스도가 처음부터 큰 모습으로 위대한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씨앗으로 오셔서 자라 가야 하는데, 엄마 뱃속에서 탯줄을 통하여 오직 엄마의 영양분을 공급받아서 커가는 것과 같이, 오직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속해서 받아먹어야 작은 씨앗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장성해 갈 수 있다.


문제는 그 빛(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이미 오셨는데 성경에 이르는 것과 같이 도적같이 오셨다. 도적같이 오셨다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하게 전혀 의외의 모습으로 오셨다. 인간의 생각과 기준과 관점을 넘어서 오셨기 때문에,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우리와 같은 인간의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계신 분께 오셔서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그대로 행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 육신을 보면 우리와 같은 인간의 품성을 그대로 가지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통하여 이전에 들었던 어떤 말씀보다도 전혀 다르고, 세심하게 말씀하시고 자세하게 말씀하신다. 그 말씀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시고, 또한, 죄에 관한 말씀이며, 인간의 마음속에 작동하는 죽은 영의 정체를 낱낱이 드러내신다. 즉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렇게 하시면서 바울이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 것과 같이 오직 그리스도 외에는 어느 것도 드러내지 않으신다.


결국,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다”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누구도 믿음이 있을 수 없고 믿음이 없으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모든 초점이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믿음은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나의 몸에 새기며 이루며 간다.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어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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