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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감 받은 자들!

작성자리브가

작성일2019-01-31

조회수169

탕감 받은 자들
마18:21-35


본문 말씀을 보면 가장 사랑하고 신임 받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 하여 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일곱 번 를 용서를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나이다. 라고 의문을 제시 했을 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 이라도 할 찌니라.”(22절)그러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 이라면 490번인데 매일매일 수도 없이 용서하고 용서하라는 말씀이다. 하시면서 천국에 비유를 말씀 하셨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그종의 주인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18:23-35) 말씀 하셨다.


예수께서 하늘나라를 비유로 말씀 하셨는데 여기에 나오는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은 죄의 무게 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달란트와 데나리온의 값어치를 생각해보자. 한 달란트는;6000 데나리온이며, 한 데나리온은 하루품삯에 속한다. 즉 다시 말해서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15년 품삯을 뜻한다.


이것을 보건대 평생 갚아도 못 갚을 것을 갚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일만 달란트를 탕감을 받았다면, 백 데나리온 빚 진자를 탕감해 주어야 했다. 위 말씀을 생각 한다면 그 주인의 종이 그 엄청난 큰 액수의 빚(일만 달란트)을 탕감 받았는데도 자기보다 육십 만분 의일 적은 액수(백 데나리온)를 탕감 해주지 못한 것은 그 종의 욕심 있어서 탕감해 주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5)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고 말씀 하셨다.


그러면 위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임금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달란트와 데나리온은 죄의 무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빚진 자를 나 자신에게 대비해 보면, 내가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일만 달란트 아니 어마어마한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다. 그러면 남의 빚도 모두 탕감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탕감 받은 것이 너무나 크고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독교인들 역시 탕감 받은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 이방인들은 율법을 육체에다 받은 유대인과 달리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고 살아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결코 마음속의 죄를 탕감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에게 도적같이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 이방인들에게 한 사람을 통하여 도적같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지금 우리와 같이 계시면서 너희도 나처럼 탕감 받고 살지 않겠니? 하시면서 우리에게 호소하신다. 아직 때가 안 되어 움직이지 않고 계시지만 때가 되면, 우리는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믿고 성령 거역한 죄를 고백 하고 받아 드려서 우리의 죄를 탕감 받고, 그때부터 우리도 남을 탕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 데나리온의 빚을 당연히 탕감 해주어야 한다. 이처럼 평생을 갚아도 다 갚지 못 할 죄를 사함 받았건만 형제자매들의 조그마한 허물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주인을 노하게 했던 그 종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마18:35) 우리는 우리가 성령 거역한 죄를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앞에 나와서 고백하여 탕감 받은 자의 길을 가야 한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 한다고 말로는 어떤 말이든 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 잘못하고 원수 짓을 했던 자들을 진정사랑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자신을 돌아 보며 하나님한데 나 자신은 그 무엇보다 더 큰 죄를 사함 받았고 용서 받았는데, 하물며 남이 나에게 서운하게 하거나 나에게 불이익을 초래한 사람에게는 절대 용서 못한다고 하면서 따지고 들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본문 말씀처럼 살아가는 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은 자들이라면, 자신들보다 못한 자(죄인)들을 불쌍히, 그리고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데 불쌍히 여김은 고사하고 자기와 교단이 다르면 무조건 이단이요, 불교신자들을 사단이라 말하고, 자기보다 못한 자들을 무조건 업신여기며 깔보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힘없고 돈 없는 약자들을 짓누르고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서 짓밟아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죄를 탕감 받았다는 사람들이 왜 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고 도리어 업신여겨 깔보는 것일까? 왜냐하면 그 마음속에 죽은영(자아, 본질, 터줏대감. 귀신)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직 자신의 죄를 제대로 탕감 받지 못했다는 증거다. 자신의 죄를 제대로 탕감 받은 자라면 절대 이런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오늘 본문 말씀을 기록하신 것도 사실은 예수를 통해서 죄를 탕감 받은 자는 절대 남을 업신여기거나 깔보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이다.


그러면 또한 예를 들어 보자면, 바리새인의 비유가 나오는데,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곳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눅7:38-39)


위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과 한 여인의 상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태도의 차이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예수와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 불청객이 나타났는데, 동네에서 죄인으로 알려진 그 여인이 울면서 예수 발에 존경의 입맞춤을 하고 헌신의 마음을 담아 향유를 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초대한 집주인 시므온은 더러운 죄인이 접촉하는 것을 물리치지 않으신 예수님을 속으로 판단하며 경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예수님과 같은 공간에 있었던 이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상반된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이처럼 상반된 모습은 무엇 때문일까? 다시 생각해 보면 바리새인 시몬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한 율법을 어긴 사람들을 멀리 하며 경계하는 사람인 반면에,그 여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죄인이며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생각하기를 예수께서 선지자 정도면 죄인을 멀리 하여야 하는데 멀리 하지도 않고 가까이 하며 그런 사람을 받아주고 있으니, 예수를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그 여인은 예수님이 나의 죄  사함을 해주시는 메시아로 믿었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에게 엎드려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악한 생각을 아시고 빚 탕감 받은 자의 비유를 들어 그 여인의 행동을 해석해 주셨다.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은전의 명칭)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은전의 명칭)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 하겠느냐”?(눅7:41-42) 


예수께서 질문 하시니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했을 때“네 판단이 옳다” 하시면서 바리새인의 악한 마음과 행동을 지적하시고 “이 여자를 보느냐?” “너는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나에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43-46절)”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저 여자의 많은 죄가 사하여 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적게 받은 자에게는 적게 사랑 하느니라” 예수께서 그 여자를 향해 “여자여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48-50절)


주님께서 비유의 말씀을 보면 지금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얼마만큼 죄를 탕감 받았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많은 죄를 탕감 받았으면 많이 사랑할 것이고, 적은 죄를 탕감 받았으면 적게 사랑할 것이니라. 그러나 우리는 입으로만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의 흘린 피의 효력으로 원죄에 사함 받고 성령 받았던 자신들이지만 정말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대로 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살아왔기에 가식과 위선 속에서 속은 썩어 냄새나고 겉은 깨끗한 척하고 살았으며, 또한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고 했으며, 또한 누구에게든 지지 않으려고 더욱 열심히 노력했기에, 성도들 중에서 조금 잘못하며 지적하고 판단하고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말씀을 절절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처럼 의례적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 하려면 먼저 자신이 어떤 죄를 졌으며,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신의 죄를 마음속에서부터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주님을 사랑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위에서 말씀하신 빚쟁이의 탕감 비유를 보면,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자가 예수를 많이 사랑 할 수 있듯이, 우리도 주님을 사랑 하려면 내가 주님에게 얼마만한 빚을 졌는가를 먼저 알아야 하고, 그리고 그 많은 빚을 주님으로부터 모두 탕감 받았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아담이 불순종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의 통로가 단절되고, 그로 말미암아 마귀의 권한으로 넘어가 마귀의 종이 되었던 인간을 구하기 위하여,  당신이 가장 사랑하셨던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어 마귀에게 제물로 주시고 흠 없는 피로 말미암아 마귀를 합법적으로 깨부수고 흠 없는 피의 댓가로 인간을 마귀 발아래에서 건지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다시 지배하게 되셔서 우리로 하여금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탕감 해주셔서, 더욱 우리는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강단을 사랑하는 자는 강단 말씀에도 절대 순종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은 세상을 의식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강단만 의식하고 강단을 의지해서 살게 된다. 그러니까 내 삶의 모든 방식이,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건대 나야말로 예수님으로부터 말로는 표현 할 수도 없고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 금 일만 달란트는  돈으로 따져도 약 수조원에 가까운 돈이다. 주님은 그 많은 빚을 모두 탕감 해주시었다. 본문에 나오는 주인의 종이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았는데 백 데라니온을 빚진 자를 탕감해 주지 못한 결과로, 그 종이 주인한테 그 많은 것을 탕감 받은 것을 다시 원위치 된 것은 사람의 본질인 욕심으로 말미암아 옥졸에게 붙임을 당하고 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더 큰 것을 탕감 받았으므로 탕감해 주어야 하며, 또한 죄인 된 여인이 자신의 죄를 용서 받았고 사함 받으므로 자기가 가장 아끼던 향유를, 자신의 전 재산 목숨과도 같은 것을 다 받칠 수 있는 마음 이었고,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받침으로 그 많던 죄를 탕감 받게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육체에다 받은 유대인과 달리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결코 마음속의 죄를 탕감 받을 수 없다. 그러니 말로는 예수이름을 부르지만 여전히 마음속에서는 죽은 영(자아, 본질, 터줏대감, 귀신)이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도록 충동질하기 때문에 자기보다 못한 자들을 업신여기고 깔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만해져서 자신 앞에는 어느 누구도 있으면 안 되고 자기가 최고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도리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당시 바리새인들이 바로 이런 행동을 하다가 예수로부터 독사의 자식들이란 말까지 들었으나, (시58:4, 눅3:7, 마12:34)그들은 의롭게 여긴 나머지 세리와 창기들을 비난하고 자신의 구원을 부정하는 것이라 하여 자기 스스로 감정을 통제 하지 못하고, 그러나 감정을 들어내지도 말고, 끝까지 말씀을 들어봐야 할 것이며,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죄악을 탕감 받은 사람들이라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당장이라도 내 집안에서 이루어 져야 했기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은 자기 아내의 죄악을 탕감해주어야 할 것이고, 아내는 남편의 죄악을 탕감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탕감은커녕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기 바쁘다, 왜냐하면 그 속에 죽은 영(귀신 , 자아. 본질. 터줏대감)이 있으므로 미움, 시기, 질투, 욕심이 있으므로 탕감 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주님으로부터 죄악을 탕감 받은 자들이 하는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행동들을 보이고 있지 않는가? 이는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죄악을 탕감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가득하다는 증거다.


한 예를 들면,큰 교회 목사가 노회 법으로 무엇을 잘못 했다고 해서 장로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목사의 멱살을 잡고 강단에서 끌려 내리는 추태를 볼 때, 정말 성령 받은 상태에서 자신들이 탕감 받은 적이 없기에 이러한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성령 받고 나의 죄를 탕감 받은 적이 없으므로, 모든 사람들을 정죄 하려 들고 지적 질을 하고 깔아뭉개고 망신을 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의 죄를 탕감하여 주어야 한다고 하니까 기독교인들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을 가지고 남의 죄를 탕감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그러면 이모든 문제들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탕감 받을 수도 있고 탕감도 해줄 수 있는 것이다.(막10:45)


기독교인들이 분명히 알 것은 우리 이방인들은 성령 받아서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대로 살 자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 부패할 대로 부패해서 내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죽은 영(자아, 본질, 귀신, 터줏대감)이 있는 한 절대로 살 수도 없고, 하나님의 크신 뜻을 모르고 있기에, 사도바울에게 도적같이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에게도 이방인의 한 사람을 통하여 도적같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 드려서 그 앞에 나가 고백 할 때  죄악을 탕감 받을 수 있다(마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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