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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활과 그리스도의 역활

작성자리브가

작성일2019-07-06

조회수91

성령의 역활과 그리스도의 역활
사도행전 16:6~10, 로마서 8:9


현재 이방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 부르고 성령 받으면 구원함을 얻는 줄 잘못 알고 있는데, 이것은 대단한 착각 있고 너무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왜냐하면, 성령만 받아서는 절대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방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처럼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하지만 이방 기독교인들은 먼저 예수 이름 부르면 값없이 성령을 받게 되고 성령 받으면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관문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이 육체에다 율법을 받은 것처럼, 이방 기독교인들도 성령을 받으면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됨과 동시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적인 율법을 받은 영적인 백성은 영적인 율법을 지킬 의무가 주어지며, 지키지 못하면 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죄가 되므로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성령을 거역한 죄는 자범 죄라 하며 또한, 마음속에서 자기 스스로 지은 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방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아직도 죄가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에 지은 죄(자범죄)를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왜 유대인처럼 물과 성령이 아닌,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일까?, 그것은 유대인처럼 율법을 받아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아본 적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던 이방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 부르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흠 없는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받고, 그 증거로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주셨다. 그러므로 이방 기독교인들이 받은 성령은 하나님의 법도 없이 살던 이방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적인 율법이란 마음속에 주신 법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육체에다 받았다면, 이방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다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육체에다 받느냐?, 혹은 마음속에다 받느냐? 에 따라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범 죄를 사함받는 방법도 달라진다. 율법을 육체에다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그들이 육체로 지은 죄를 예수 육체()로 씻어 주면 되지만,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을 마음속에 받은 이방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 죄를 물로 씻어 사함받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야 해결 된다. 이런 뜻에서 영적인 백성들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으로 거듭나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의 역할이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역사하느냐? 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유일무이하게 사도바울을 택하신 것은, 사도바울과 같은 자를 통해서 이방인들 앞에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오시겠다는 모형을 성경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방 기독교인들의 구원이 사도바울과 같이 성령과 그리스도 영이 들어가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다.


사도바울이 예수의 제자들과 예수를 믿겠다고 따르는 사람들을 붙잡으려고 다메섹 도상으로 가다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것을 볼 수 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니라(9:3~4)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그 순간 사도바울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빛으로 들어가신 순간이다. 눈이 멀 은 사울을 예수의 제자인 아나니아에게 환상으로 나타나 바울에게 안수하도록 말씀하심으로 바울이 아나니아에게 가서 안수받고 다시 보게 되는데, 그때 바울이 성령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빛 되신 주님을 먼저 만나 마음속에 모시고, 아나니아에게 가서 안수받고 성령이 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부활하여 영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흔적을 모형으로 보여 주셨다.


하지만 예수의 열두제자들은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 마음의 죄를 사함받은 것을, 말씀을 통해 암시하듯이,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13:10) 하시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흠 없는 피를 통해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고 사역했지만, 사도바울은 마음속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난 후 성령을 받고 이방 기독교인들의 사역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열두제자들에 사역과 사도바울에 사역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문 사도행전 16:6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했을 때 성령’(하나님의 영)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고, 7절에서는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되 예수의 영’(그리스도의 영)이 허락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도바울 마음속에서 성령(하나님의 영)’예수의(그리스도의 영) 이 함께 역사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내용 말씀 통해서 알 수이다. 또한, 로마서 8:9절에도 하나님의 영(성령)’그리스도의(예수) 을 동시에 표현했으며, 사도바울이 자기 뜻을 따라 움직이려 하면 먼저 성령께서 일차적으로 막으시고, 그러다가 바울이 자기 생각을 꺾지 않고 끝까지 가려고 행동으로 움직이려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바울의 자유의지를 제한해서 행동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바울은 성령과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행동으로 제한받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셨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이방 기독교인들의 사역이 유대인의 사역보다, 많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도 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도바울을 좋아하고 따르고 순종하며 나오는 자들은 구원을 받았다. 사도바울에게 속하여 순종하며 따르는 자들은 다 구원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사도바울 마음속에 계신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그 앞에 나오는 자들의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이다. 이방인이라도 사도바울을 좋아하며 따라다닌 자들은 구원을 받았다. 사도바울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영이 있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방인들은 바울을 통해 성령 먼저 받고 바울로부터 마음의 죄(성령 거역한 죄, 자범죄)를 사함 받아 구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도바울을 통해 성령만 받고 바울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않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은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좋아하지 아니하고 따르지 않고 순종하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바울이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3)하신 말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 라고 책망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원죄만 사함 받고 그 증거로 성령만 받았지 사도바울로부터 자 범죄(성령 거역한 죄)를 사함 받지 못해 육신의 욕망과 욕심이 그대로 있었기에, 결국 육신의 욕망과 욕심을 따라감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1:15)


사도바울을 통해 성령을 받고 끝까지 바울을 좋아하고 순종하며 따르는 자들은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마음속이 바울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에 따라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고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그 마음속에 있어서 죄를 사하는 능력을 바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령을 받고 자기도 바울처럼 되었다고 교만하여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던 자들은 떨어져 나가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사도바울이 죽은 후, 성령만 받았던 자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때는 이미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빠진 복음으로서 생명을 주지 못하고 성령만 받게 된다. 이는 오직 성령으로 영적인 하나님 백성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만 불러도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이든 이방 기독교인이든 예수의 흠 없는 피의 은혜로 원죄를 사함 받고 성령이 오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울이 죽은 후에는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빠진 복음이 2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받고 영적인 하나님 백성만 만드는 역할의 복음만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들의 구원 과정은 율법 아래서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방 기독교인들과 다르다.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 마음의 죄, 즉 율법을 범한 자 범죄를 사함 받았고, 예수께서 흠 없는 피를 흘리게 되자, 흠 없는 피의 공로로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원죄를 사함받아, 그 증거로 성령을 받아 완전 구원을 얻고 성령의 역사로 쓰임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은 이처럼 성령을 받으면 구원이 완성되고 이미 마음의 죄를 사함 받은 상태에서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들 마음을 강력하게 지배하게 된다. 영과 혼 사이에 있는 휘장이 찢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이 성령의 지배를 강하게 받을 수 있었으므로 성령만 받고도 사역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성령으로 기적과 표적을 나타내면서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심을 증거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서 살았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먼저 율법을 범한 마음의 죄를 사함 받게 되고, 그 후에 예수께서 흘리신 흠 없는 피로 말미암아, 원죄를 사함받게 됨으로 성령을 받게 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이처럼 유대인은 (예수의 몸, )과 성령(흠 없는 피)”으로 거듭나야 구원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래서 제자들의 사역은 이처럼 성령으로 기적과 표적을 나타내면서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심을 증거 하는 단순한 사역이었다. 성령의 표적과 기사는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심을 확증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들이심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율법을 어긴 죄를 사함 받고, 원죄까지 사함 받아,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며,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은 성령의 지배를 강력하게 받게 되어 성령의 뜻대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다 함은, 그들이 성령의 지배를 강력하게 받음으로 율법이 지시하는바 율법의 참 정신인 의, , 을 온전히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오늘날 이방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처음으로 받았을 때는 뜨겁게 역사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외치며, 눈도 빼주고, 간도 빼준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림에 따라 성령의 역사는 차가워지고 희석되어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방 기독교인들은 성령만 받은 상태로 마음속에 있는 악한 영(죽은 영)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기에 잘못된 길로 가고 있어도 성령은 자유의지를 제한하지 않고 선택의 자유의지를 주시기에 육신의 욕망과 욕심에 이끌리어 결국, 자기 뜻대로 세상으로 향하여 가버리기 때문에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1:15)


하지만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방 기독교인들의 자유의지를 꺾고 제한하며, 생각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전적으로 막으신다.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성령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영적인 율법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라, 하지 말라하는 영적인 율법의 역할만 하시는 것이다. 영적인 율법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 생각대로 가는 모든 것이 성령 거역한(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죄로서 자범 죄(자기 스스로 지은 죄)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방 기독교인들은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원죄를 사함 받고 성령을 먼저 받게 된다. 원죄는 사함 받았지만 자기 스스로 지은 자 범죄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다.


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관임으로 예수의 피로 해결되었지만, 아직 혼 적인 죄, 즉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의 죄는 성령을 받고도 성령을 마음속으로 따라 살지 못했으므로 성령을 거역한 죄를 말한다.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성령은 영적인 율법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모든 것이, 자 범죄 (성령을 거역한 죄)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성령의 법을 따라 살 수도 없다. 성령의 법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으로서 인간이 지킬 수 없는 법이다. 하나님의 법은 정죄의 법으로서 용서가 없고 성령을 거역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인간이 지키지도 못할 법을 주셨을까?, 그 이유는 율법으로 자기 백성을 죄 아래 가두신 후 아들로 말미암아, 구원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인 것이다, 이방 기독교인들은 율법과 하나님의 보호가 없는 상태에서 태어나 처음부터 죄악의 씨가 있으므로 자라나 죄 성이 강하기 때문에 죄의 본질인 죽은 영을 뽑아 버리고,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들어가셔야 구원이다. 이처럼 유대인과 이방 기독교인들의 마음 판이 애초부터 다르기에 구원의 방식도 그만큼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사도인 사도바울에게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심으로  이방 기독교인들의 구원이 이렇게 이루어질 것을 예표 해주신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에게는 성령 받으면 구원이 완성이지만,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을 받는 순간부터 영적인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살아야 하는 시작점에 불과하다. 성령을 받는 순간으로 시작하여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가 부여하게 된다. 하지만 성령을 처음 받았을 때는 마음에 뜨거움이 충만해서 죽은 영이 수면 아래로 내려가 힘을 못 쓰고 있다가 뜨거움과 충만함이 점점 사라지게 되면서 다시 기독교인들 마음을 죽은 영이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 동작함으로 점점 타락에 늪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은 뜨거움과 충만 한데서 시작한 것이므로, 마음속에 들어오신 것이 아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기독교인들의 영을 주관하고 계시는 것이지 육체를 입으신 적이 없기에 인간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 없다. 하나님 인간에게 오시면 바로 죽음이다. 왜 하나님은 선이시고 인간은 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분은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밖에 없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체를 입으셨던 적이 있었기에 부활하여 다시 영이 되어 인간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는 것이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므로 사람의 행동과 모든 것 주관하시며 이끌고 가시게 된다. 세상과 더불어 살고 있어도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세상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게 자유의지를 제한하여 철저하게 막아주신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들어오시면 가장 좋은 점은 마귀가 절대 청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천국의 자녀라 할지라도 육체를 입었기 때문에 습관에 따라 육체로 죄를 짓는다고 해도 이미 그리스도께서 피(성령)와 살(예수의 몸, 물))을 주어 담당하셨기 때문에 절대 마귀가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는 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
 

하지만 성령 아래서는 죄의 본질이 그대로 있기에 모든 것이 죄가 되므로 마귀가 청구하여 물질의 손해를 입거나 몸에 병이 들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살므로 결국은 하나님 자녀가 아니기에 마지막 날 마귀가 자기 것이라 하여 자기 거처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에서 하나님의 영적인 자녀가 되려면 성령을 거역한 마음의 죄를 사함 받고, 그 마음속에 양자의 영을 모셔야 진짜 하나님의 아들 자격이 되어 하나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 기독교인들이 필연적으로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모셔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방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변화된 자들이라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을 듣고 따르며 순종하고 마음속에는 늘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방 기독교인들이 그렇지 못한 것은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없다는 뜻이다. 이방 기독교인들이 아버지의 성령(하나님의 영)’과 아들인 그리스도 영을 똑같이 여기게 되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게 되므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죽은 영을 해결 받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에 큰 착오가 생기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는 죄인에게만 관심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이방 기독교인들은 구원에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숙지하여 자신을 죄인으로 한없이 낮추고 낮추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에게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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