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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로 오신 그리스도!

작성자리브가

작성일2019-07-13

조회수91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20:26~29

 

의심 많은 도마는 예수의 제자들이 말하기를, 예수가 살아나셨다. 그리고 우리가, 보았노라 했으나 믿지 못하고 내가 그의 손에 못 자국과 옆구리에 내 손으로 넣어보고 내가 만져 봐야 살아계신 것을 믿겠노라 했으며, 8일이 지나 제자들이 집에 문을 닫고 있을 때 예수가 다시 나타나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옆구리에 넣고 보라 하시며,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하셨을 때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다. 라고 고백하므로 예수께서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하셨다. (20:28~29). 예수께서 도마에게 이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 말씀하신 것이지만, 현재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인 것이다. 보고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기에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온전한 신앙과 믿음은 형체로 보이지 않는 것 믿는 것을, 믿음이라 말한다. 이방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보며,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게 여기고 믿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형식과 절차에 따라 예배드리고 어떤 규칙을 정해놓고 정해진 틀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예배를 형식에 잘 짜인 그 순서에 따라 늘 똑같은 방식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은 마치 제사 드리는 형식과 같다. 그것은 모두 육신의 눈에 보이도록 하는 것들이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형식과 절차와 의식으로 많은 예배를 드려도 변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 또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도 없다. 중요한 것은 마음 중심에 보이지 아니하는 진정한 마음과 믿음이 빠져 있고, 형식과 의례적인 종교적 행위로, 전락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의 삶은 각종 형식에 예배가 넘치고 있고, 그것이 신앙으로 굳어져 있으며, 주일성수를 철저히 하고,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고, 십일조 아니 십의 이조를 드리며, 충성 봉사를 많이 하는 것이, 신앙이며 믿음이라고 여기고 있다. 결국, 마음 중심이 빠진, 자신의 신념과 이상과 사상의 개념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 백성으로 지켜야 할 법과 의무와 책임이지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믿음은 마음 중심에서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내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신앙생활 하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구약의 제사의식과 다를 바 없는데, 구약의 모든 제사의식은 장차 오실 예수의 모형으로 말씀하고 예시하셨다. 그것으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히브리 기자를 통해 말해 주고 있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못 함이라”(10:4)


오로지 믿음은 예수가 오시므로 그때부터 시작되며, 오직 믿음은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말한다. 율법에 따라 소나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모형으로써 몸으로 그 의식을 행하면 되지만, 예수는 그 모형을 이루려고 오셨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던 엄청난 영적 비밀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제 밝혀지고 있다. 크게 보면 유대인을 육체에다 율법을 주신 것이, 첫 것이라면,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둘째 것이 된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이름 불러서 성령 받은 것이 첫 것이라면, 즉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을 )을 해결자로 오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둘째 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에게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첫 것이라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둘째 것이 된다. 따라서 마치 사도 바울 속에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신 것과 같은 사건이 이 땅에 은밀하게 이미 이루어졌다.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고자 하는 이유는, 이방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어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있는 것을 해결하시기 위함이다.

 

이방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육체로 오신 예수 이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를 마음 중심 속에 믿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만 예수 이름만 부르고 있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수 이름을 입으로만 불러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 주신 흠 없는 피의 은혜이다.


예수께서 흘려 주신 흠 없는 피의 효력은, 마귀를 멸할 수 있는 능력과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는 동시에,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 그 증거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주어진 인간의 영이 마귀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됨으로, 인간의 영을 마귀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을 각 사람에게 오셔서 인간의 영을 지배해 주시며 보호해 주신다. 인간의 영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코에다 생기을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으므로,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서,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게 되면,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지배권 안에 살게 된다.

      

이방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에 씨를 가지고 있기에, 누구라도 성령의 법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죄 성 때문에, 이방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 속으로 믿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방 기독교인들은 입술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할 뿐, 마음 중심으로 전혀 믿지 않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마음 중심 속에서 믿지 못하다 보니 거짓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선한 척 거룩한 척하며 살아가고 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이방 기독교인들의 말은 고상하고 거룩한데 정작 마음 주심 속에는 예수를 전혀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역사와 현재도 주관하시며, 인간의 마음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라서, 평소에 하나님을 찾지 아니해도 마음속에서 애달프게, 있는 힘을 다해 애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은 모든 자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고 믿는 자라도 마음 중심 속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들어 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하나님,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의 하나님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의 영을 보호해 주신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의 영은 보살펴 주시지 않는다. 이렇게 하나님과 성령은 한 분이시지만, 성령이 하시는 일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각각 다르시다. 그리고 성령과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이지만,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과 성령이 하시는 일도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이방 기독교인들이 기도 응답 한번을 받기 위해서는 금식하며 철야 하고 간절히 애달프게 애끓은 심정으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응답받기가 쉽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기도한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애끓은 심정으로 애달프게 기도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누가 이러한 기도 하겠는가? 어려운 문제가 달려 있거나, 큰일이 발생하거나, 가족이나 자식의 생명이 위험하고 시각을 다툴 때, 죽기 아니면 살기로, 기도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어느 누가 그렇게 간절히 애끓은 심정으로 기도하겠는가? 결국, 간절히 애달프게 애끓은 심정으로 기도하지 않는 자는 응답받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기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이방인들 앞에 그리스도께서 도적같이 다시 오셨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성령과 달리 사람의 마음 중심에 오시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 중심에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모신 자는 자신이 어떠한 위험에 처했을 때, 기도하면 즉시 들어 주신다.


그것뿐만 아니라,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영들의 세계에 대해서도 모두 다 선포하여 주신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 또한, 상세하게 육으로는 해석하지 못하는 것들과 모든 것을, 세세하게 알려 주신다. 그러므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 모신 자는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영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교회가 인간 마음 중심에 세워지게 되었으니 더, 이상 사람의 손으로 지은 보이는 교회는 필요가 없게 된다. 예루살렘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는 믿는 자들에게 중심적 역할을 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고 난 뒤로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처럼, 현재 기독교인들이 예배드리는 보이는 예배당 건물 자체 또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까지 믿는 자들에게 중심적 역할을 하였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영으로 오시게 되면, , 이상 필요가 없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영으로 오셔서 내 마음 중심에 계신다는 말은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내가 죽고,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나의 마음속에 주인으로 계신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죄악을 쌓고 살던 내가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품격을 따라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더 사랑하게 되며, 이웃을 긍휼함과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살 때는 내 옛 자아가 살아있기에, 아무리 성령 충만함을 받아도 그때 잠시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착하게 보이려고 겉으로 선한 척, 했을 뿐 속으로는 은근히 남을 미워하고 악을 일삼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 모신 자는, 이제 자기 마음 중심 속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부활하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잠에서 깨워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 이방 기독교인들 앞에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의 사람을 통해 인격적으로 오셨기 때문에,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라고 하는 말은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즉시 행동을 실제 상황에 옮겨야 한다.


행동을 옮길 때 믿음이 완성된다. 하지만 사람의 속에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말씀하시는데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실천하지 않게 되면, 겨자씨로 오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 중심 속에서 자라나지 않는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자라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없다.

 

그러나 성령은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함으로 절대 요구하시지 않는다. 성령은 오직 마귀 지배에서 벗어난 기독교인들의 영을 보호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 주신 법) 역할만 하시는 것에 비해,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처럼 이레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성령의 법에 따라 사는 기독교인들은 아직은 자기 마음 중심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자기 생각대로 음성을 들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기 생각대로 하다가 괜히 예수로 위장한 귀신의 음성을 듣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예로 예언하는 자들이 처음에는 성령의 충만한 때는 뜨겁게 성령의 역사로 천사를 통해 올바른 예언을 하다가 점점 더 시간에 흐름을 따라 육신의 소욕이 올라와, 성령의 역사가 차가워지고 그때부터, 인간의 정욕과 욕심에 이끌리어 사람의 소리로 하게 된다. 결국, 마귀에게 쓰임 받게 된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2~3)

 

오늘날 이단에 속한 자들 대부분이 바로 예수로 위장한 귀신의 음성을 듣고 행하고 있다. 예수로 위장한 귀신은 예수와 비슷한 말씀 하며 그리스도의 모양만 나타내기 때문에, 일반인으로서는 그들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의 위장술에 한 번 빠져들게 되면, 좀처럼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예수로 위장한 귀신이 계속해서 달콤한 말로 속삭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보면, 이단들도 불쌍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예수로 위장한 귀신에게 속아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보내주시어 우리가 성령에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신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영으로 말씀만 하실 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신 자의 모습인데, 이들 역시 초라한 사람일 뿐 그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겉모습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으므로 믿음의 눈으로 분별해야 한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모신 자를 구별하는 방법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성령을 어긴 죄를 지적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이 다르다는 영적인 비밀을 말한다면,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기 위해선 자신이 갖고, 있는 성경적 지식과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 자신의 것을 버릴 때 비로소 말씀이 들리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감화 감동으로 말씀하시나, 기독교인들 마음이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 보니 성령의 감화 감동을 섬세하고 예리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 생활의 전반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해당하는 성령을 거역한 죄이다.


하지만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영은 믿는 자의 마음 중심에 직접 오셔서 인격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마치 어머니가 자식에게 말씀하듯이, 조곤조곤 말씀하여 주시기 때문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 니라(딤전1:15)


 말씀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은 사도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고백하며 사는 자들이라서 사람들 앞에서 절대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신의 모순됨과 허접함과 찌질함과 부족함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은혜만 자랑하게 된다.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난 자들은 이단이나 적 그리스도, 그리고 거짓 목사와 삯꾼 목사들과 다른 점 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나 예수로 위장한 귀신의 지배를 받는 자들은 자신을 성경에 좋은 이름을 다 쓰고 있고 교묘하게 자신을 또는 예수로 위장하면서, 동등 됨을 취하려 하고 있는데, 좋은 예로 천사장 루시엘은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라고 창조되었는데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자기 자리를 이탈하여 교만해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다가 마귀(루시퍼)가 되었다.


이는 곧 마귀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다가 영계에서 쫓겨났던 것처럼 그들도 마귀의 한편임을 증명하고 있다. 귀신들도 영적인 존재라 성경 말씀을 교묘히 풀어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모두 거짓이다. 일반인으로서는 그들이 하는 말을 구분하기 힘들지만,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그들의 정체를 속속들이 다 드러내게 된다.


거짓 선지자와 삯꾼 목사들이 유혹하는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영으로 오시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더 자기편을 만들어 죄짓게 하여 지옥으로 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방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하시는 말씀과 귀신이 하는 소리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귀신에게 속지 않고 넘어가지 않는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3) 말씀처럼 임마누엘은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중심 속에 오신 사건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 아들이신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내 마음 중심 속에 모시게 되면, 하나님과 동행 할 수 있게 된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5:21~24)


말씀과 같이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말을 듣고 무척 놀라고 충격을 받았는데,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모시지 않고는 참으로 놀라운 일을 맛보지도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다.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현재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며 점점 더 악해져 가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참 희망의 메시지이며 복의 근원이요 축복의 통로인 것을, 직접 체험하여 그리스도인답게 사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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