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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모형과 실체!

작성자리브가

작성일2019-08-03

조회수106

그리스도의 모형과 실체!

히브리서 8:7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첫 것으로 시작하여 둘째 것으로 끝난다. 첫 것으로, 주신 것은 모형이요 둘째 것으로, 주신 것은, 실체이다. 아담에게 가인과 아벨이 있었으나, 장자인 가인이 버림을 당하고, 동생 아벨이 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으며, 또한, 아브라함에게 아들들이 있었으나 장자인 이스마엘이 버림을 당하고, 동생 이삭이 약속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다. 그리고 이삭의 아내 리브 가의 뱃속에 쌍둥이가 잉태하였으나 그들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장자인 에서가 버림을 당하고, 동생 야곱이 선택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당신의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 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이 첫 것이라면, 복음은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둘째 것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 바다를 건너고 바란 광야를 지나서 시내 산에 도착하여 율법을 받은 것이 첫 것에 해당, 된다면, 여호수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둘째 것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행위가 첫 것에 해당, 된다면, 예수가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사건이 둘째 것에 해당하고, 예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첫 것에 해당, 된다면, 예수의 몸이 둘째 것에 해당, 되므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말씀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렇게 진행 시키는 것은,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께서 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아담이 불순종한 죄로 원죄를 지었고, 그 결과로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할 목적으로 항상 첫 번째 것은, 모형으로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배척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율법에 가두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다 보니, 모두가 첫 것으로, 주신 것을 실체로 믿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악한 영이 인간을 속이고 모형으로 주신 것을 실체로 믿도록 속이는 것이다. 첫 언약이 무흠 하였다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8:7)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논리에 빠져있으므로 그들의 잘못된 사상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이다.

 

현재 신앙생활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게 되었다. 유대인들처럼 육체에다 율법을 받은 적이 없는 기독교인들은 개, 돼지처럼 살 수밖에 없는데, 예수 이름 불러서 성령을 값없이 받았다.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의 공로로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았는데, 성령을 받음으로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됨과 동시에 영적인 율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영적인 율법은 하나님의 법이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율법을 마음으로 지켜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누구도 마음속에 주신 율법을 따라 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모두 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죄가 되고 죄 아래 갇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런 의도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마음속에서 따라 살아 보라고 주신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 아래 가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율법을 어긴 죄를 복음 (예수 그리스도) 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얻는 것과 같은 논리로, 이방 기독교인들도 성령의 법 (영적인 율법)을 어긴 죄를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나와서 죄 사함을 얻고, 구원함을 얻으라는 것이다.

 

현재 목회자들은 입만 열면,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들은 율법으로는 구원 얻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진즉 기독교 지도자들은 성령으로 구원 얻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나타나 주심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유익을 주기 위해서라고 사도바울은 말하고 있다. 바울이 말한 유익이란?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속을 살펴보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거역한 죄를 토설하여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이 된다.

 

성령과 그리스도는 엄연히 다른 분이시다.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요(10:20) 그리스도는 아들인 것이다. (8:9) 그 하시는 일에, 있어서도 각각 다르시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을 똑같은 분으로 보게 되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인간들 앞에 보내주신 의미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물론 하나님, 나라 안에 있을 때는 성령과 그리스도는 모두 하나이다. 하지만 하시는 일이 각각, 다르므로 성령과 그리스도를 똑같은 분으로 보게 되면, 인간들에게 절대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신약성경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를 알게 되었다. 언제나 첫 것으로 주신 것은 모형이요 둘째 것이 실체라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성경에는 모두 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짝이란, 모형과 실체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좋은 예로 구약과 신약이 짝이 되고, 율법과 복음이 짝이 되며, 이삭과 예수가 짝이 되며, 야곱과 그리스도가 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은 첫 언약이요 신약은 새 언약이다. 또한, 율법이 첫 것이라면, 복음은 둘째 것에 해당, 되고 이삭이 첫 번째 주신 모형이라면, 예수가 온전한 둘째 것에, 해당, 된다. 그러므로 야곱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실 첫 것에 해당, 되며, 사람을 통해서 영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그 두 번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사람을 통해서 두 번째로 오시는 영적인 그리스도를 믿어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다.

 

히브리 저자는 또다시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10:9) 그가 첫 것을, 왜 폐해야 하며, 둘째 것이, 왜 필요한가를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 저자가 얼마나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의 마음이다. 또한, 사도바울도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바리새인으로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에는 완전히 변하여,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구구절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도바울이 기록한 말씀 중에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13:9~10) 말했듯이 성령의 은사로 주신 것들이, 첫 것에, 해당, 되는 것이라면, 사도바울이 말씀한 온전한 것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말씀한 것이다.

 

지금도 죄에서, 해방되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둘째 것으로, 보내주시는 영적인 아들을 믿어야 죄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죄에서 자유롭게 된 자가 아들로부터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자꾸만 사도바울을 따라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아직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자격이 없다. 이방 기독교인들이 바울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려면, 사도바울처럼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날 이방 기독교인들은 성령만 받은 상태라,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방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겨우 성령으로 영적인 율법을 받았는데, 그것을 가지고 사도바울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착각하고 있다.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죄가 남아 있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방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여전히 죄악이 가득하다. 신앙생활하고 있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하다는 것은 마음속에 ''로 비유되는 그리스도가 없다는 증거가 된다. 이것을 보더라도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이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 해주고 있다.

 

이것을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거듭 난데, 반해 이방 기독교인들은 알맹이가 빠진 그리스도가 없고 성령만 받아서, 있는 상태라, 첫 것으로, 주신 모형 아래서, 살고 있으며, 두 번째로 오시는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현재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첫 것이라면 이방인의 한 사람을 통하여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으로, 현재 기독교인들과 같이 인격적으로 같이 와 계신다. 예수께서 인격적으로 오셨다는 것은,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방인들 앞에 직접 오셨다는 것이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오셨다는 것은, 인간과 그리스도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며,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도 그리스도를 본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다. 성경으로만 알고 있는 신념과 관념적으로 알고 사상적으로 믿고 있으매, 현실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일방적으로 예수 이름 부르며 기도를, 하지만, 예수께서 우리를 좋아하시는지 또는 싫어하시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따른다. 즉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또는 불신자라면, 양심에 가책을 느낄 정도로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사람 몸을 입고 오시기에, 우리가 그와 말도 할 수 있고, 우리가 서로 마음을 주고, 받을 수도 있다.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우리와 성정이 똑같으므로, 우리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면, 얼마든지 받아 주신다. 또한,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얼마든지 우리 죄를 사해 주신다. 죄를 탕감받은 자는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되고 그것이 쌓이다 보면, 돈독한 믿음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밝은 빛으로 오시기 때문에, 우리의 앞날을 바르게 인도해 주기도 하고 또한, 잘못된 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적도 하신다. 이것이 바로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만 부르며, 신앙생활 해온 이방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그리스도의 모습이 상상이 안 갈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께서 그 시대에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소통하고 율법을 어기고 다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으로, 이방 기독교인들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변화된 자들이라면, 그리스도의 씨가 겨자씨처럼 작게 우리 마음속에 떨어지는 것이다. 성령은 단회적 사건으로 오시지만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자라게 된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에 옥토에 떨어진 씨앗이 어떻게 자라나느냐에 따라서 믿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마음속에는 늘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판이 되어 3060100배의 결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완전한 구원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가려면 100배의 결실을, 맺어야 한다. 이방 기독교인들이 그렇지 못한 것은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없고 알지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드려서, 성령을 거역한 죄' (자 범죄, 자기 스스로 지은 죄)을 해결 받고 하나님의 자녀라 칭함을 받고, 구원과 동시에 죄에서 자유 함을 얻는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모신 자는 자신을 죄인으로 한없이 낮추고 절대로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으며, 남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여 그리스도의 본성을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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