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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부터 그리스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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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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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부터 그리스도까지

로마서 319~31


구원이란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이 온전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그 신분이 바뀌어지는 것을 말한다.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자신의 노력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따라서 모든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들에게 손길을 내밀어 주시지 아니하면, 그 누구도 하나님 곁으로 갈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사람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고자 하신 뜻을 성경 말씀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 이방 기독교인의 온전한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벨 자손들을 혈통적으로 관리를 하셨는데, 그들 마음이 악하지 않았기에 구원해 주셨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모든 인간이 죄악으로 빠져들어 가자, 노아의 가족들 이외는 모두 물로 심판하셨다. 이렇게 물에서 건짐을 받은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비난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영혼의 구원은 받지 못했다. 함이 비록 노아의 아들이지만 온전한 구원에 떨어진 것과 같이, 혈통을 통한 구원도 자식들 중에서 합당한 자만 선택받았다. 

 

이렇게 인간의 구원에 대한 역사가 내려오다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다. 그 후 아브라함은 여러 사건을 통해 실수도 많이 하였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키워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아브라함의 믿음을 긴 세월을 통해 키우신 다음 마지막 연단으로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브라함이 이를 잘 순종하였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보시고 그를 붙잡아 주셨기에 가능했다. 이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의롭다고 칭찬하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의의 기준으로 세우시고 권세를 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의인의 구원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좋아하는 자도 구원해 주셨다. 그 예로 이삭을 얻기 전까지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어 조카 롯을 아들처럼 생각하였고, 롯도 아브라함을 마음으로 좋아 하고 따랐다. 그 증거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나올 때 롯이 아브라함을 좇아 나왔다는 것이다. 그 뒤 아브라함과 롯의 종들이 서로 싸워서 어쩔 수 없이 롯은 소돔으로 갔다.

 

처음에는 소돔이 좋아 보였지만 그 성안에는 음란이 가득 차 있었기에 롯은 마음 둘 곳이 없어 날마다 아브라함을 그리워하며 성 밖에 나와 있었다. 그 뒤 롯은 구원받았지만, 롯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죽자 이러한 구원은 계승되지 않았다. 이러한 구원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면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10:41)

 

그 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이 바닷모래처럼 많아지리라라고 약속의 말씀을 하셨는데, 열두 아들을 포함한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으로 내려가 430년을 살면서 이 약속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형성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고, 또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선지자들은 율법을 마음으로 지키지 못하고 형식으로 행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책망의 말씀을 대신 전했던 사람이다.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강권 적으로 사용하신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죄를 먼저 사해 주셨기 때문에 성령이 밖에서 그들 마음을 붙잡고 강하게 역사하실 수가 있었다.

 

대부분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외쳐 자기 동족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제명대로 살 수가 없었다. 선지자들이 이렇게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고난을 받았기에 하나님은 결국 구원시켜 주셨다. 아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사야 선지자의 죄를 사해 주셨는가를 알 수 있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6:6~7)

 

놀랍게도 자신들의 죄를 책망하는 선지자들을 마음으로 좋아하거나 그들을 대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좋게 보시고 그들도 구원시켜 주셨다. 좋은 예로 사렙다 과부는 36개월 동안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마지막 남은 곡식을 아들과 자신이 먹고 죽으려 하였다. 그때 엘리야가 와서 달리고 하자, 목숨 같은 그 음식을 선지자에게 주었다. 이 과부가 엘리야를 선대하여서 구원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10:41) 하신 말씀이 이를 두고 하신 것이다.

 

이렇게 구원받는 자는 극소수로 너무 적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어 당신의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가 없는 것을 잘 아신 하나님께서는 선의 기준이 되는 아들을 보내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오셨지만, 그 속에 죄가 없으신 분이다. 예수께서 유대인의 구세주(메시아)가 되시기 위해서는 먼저 마귀의 시험을 받아야 했는데, 이를 잘 통과하셨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께서는 율법을 어긴 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고, 자신을 믿는 유대인을 구원하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바라새인과 같이 자신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또한 율법을 잘 지켰다면서 스스로 의로워져 예수를 거부한 자들은 어떻게 하실 수가 없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끝내 거부하고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이고 말았다.

 

반면에 율법을 어긴 죄인이라며 자신을 낮추고 예수 앞에 나왔던 병든 자, 세리와 창녀들은 먼저 마음의 죄악을 해결 받았다. 그 뒤 예수를 끝까지 믿었던 자들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후에 원죄도 해결 받고 그 증거로 성령까지 받았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온전한 구원과정이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마귀의 시험도 이기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기에, 하나님은 그를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메시아)가 되게 하시어 죄 사함의 모든 권세를 그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유대인들만 구원해 주는 분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시고자 하시는 공평하신 분이다. 유대인에게 먼저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에게 전해주기 위해 쓰임 받은 자가 바로 사도 바울이다. 바울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로 예수를 부인하고 그를 따르던 자를 잡아 죽이고자 했던 자이다. 이러한 바울에게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예수께서 빛으로 들어오셔서 먼저 그의 죄를 사해 주시고 그 뒤 성령까지 임하셨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다른 유대인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영과 성령을 모두 갖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세밀하게 전파 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리스도 영과 성령을 함께 주신 이유는, 앞으로 이방인의 구원도 이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또 한가지 알아야 할 내용은, 바울은 유대인이라 이방인들의 마음과 다르므로 그리스도께서 통째로 들어가실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고도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며 사역을 할 수가 있었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사도 바울을 선대하고 좋아하는 자는 결국 바울 속에 계시는 예수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죄 또한 사함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사도 바울을 믿고 따라 살아야 구원이 완성된다. 그리고 바울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은 그들에게 전수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이 죽고 난 이후 이방인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은 받지만, 그리스도를 받지 못해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 바울이 죽고 난 후의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반쪽 구원을 받은 상태로 기독교가 이천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영으로 이 땅에 보내주셨다. 다시 말해, 이방인의 중에 한 사람을 택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분의 입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 이렇게 사람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듣는 자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겨자씨 같이 들어가신다. 말씀이 영이고 영이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이 그 사람 마음속에 작은 씨앗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방 기독교인 앞에서 오신 그리스도의 영은 겨자씨같이 너무 작아서 다른 사람들은 잘 알 수가 없다. 한편 기독교인은 성령을 받아 영은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통째로 그 마음을 장악하실 수가 없다. 이방인의 마음속에 작은 겨자씨처럼 들어오신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서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기 위해서는 자신과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는 것이다. 자신과 싸움에서 이긴 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상대방의 마음속에 겨자씨를 뿌릴 수가 있다.

 

씨뿌리는 비유와 같이 좋은 마음 밭에 뿌려진 씨앗(그리스도)은 잘 자라서 나중에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게 된다. 이런 자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육신의 생각으로 무시하면 그 마음속에 자라나지 않거나 때로는 유산될 수도 있다. 가시떨기나 길가에 떨어진 씨앗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방인에게 오신 그리스도의 영(겨자씨)이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내 생각을 버리고 자신과 싸움에서 이기면 그 마음속에 겨자씨가 자라나 더 큰 믿음을 소유할 수가 있다. 그러나 자신과 싸움에서 진 자들은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이방인들의 구원과정이기에 우리는 자신과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자신을 이긴 자가 결국 다른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 예수께서 이방인의 구원에 대하여 아래 같이 말씀하셨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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