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 보기

HOME > 거듭난자들 > 라오디게아 > > 보기

제목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

작성자

작성일2019-08-30

조회수38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

마태복음1:18~25

 

오늘날 기독교인은 예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으로 부활하여 지금은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하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셨기에 그의 이름으로 기도만 하면 구원도 받고 어떤 문제도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천 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 인간의 몸을 갖고 인격적으로 먼저 오셔서 자신을 믿는 유대인을 구원해주셨듯이, 우리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반드시 인격적으로 이 땅에 다시 오셔야 한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위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왜 유대인들에게 인격적으로 오셔야 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며 그들은 어떻게 하여 구원받았는지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야 기독인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인격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 그리고 이방인의 구원은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지를 알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흠도 없고 점도 없으신 완전한 선이시기에 죄악이 가득한 이 땅에 직접 오실 수가 없다. 하나님은 죄를 조금도 허용하실 수가 없는 속성을 가지셨기에 그 앞에 어떤 인간도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선지자를 세워 성령으로 감동케 하사 말씀을 전하게는 하셨지만, 인간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먼저 이스라엘 땅에 중보자로 보내사 그를 믿고 나오는 자를 구원하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눈으로 예수를 본 것은 아니지만, 성경 말씀에서 그렇게 기록되어 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예수가 오신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은 것은 너무너무 어려웠다.

 

왜냐하면 유대인에게는 이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오고 있었는데, 그 율법이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안식일도 어기고 율법을 어긴 죄인들을 함께 하시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유대인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를 믿고 나오라는 것을 원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주셔서 그들을 죄 아래 가둔 후에, 아들이신 예수를 직접 보내어 율법을 범한 죄를 해결해 주시고자 했지만, 그들은 그 예수를 이단의 괴수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였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5).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를 유대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직접 보내신 것일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오직 법으로만 그들을 심판하신다면 그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었기에 아들을 통해 은혜를 베풀기 위함이었다. 당신의 아들을 육신을 입고 땅에 보내사 한 사람모습으로 유대인 속에서 평범한 삶을 살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율법 아래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경험하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체험하여,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최고 사랑이 바로 그 아들을 죄인인 인간들 앞에 인격적으로 보내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30년 동안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면서 모든 율법을 다 지키셨다. 그 예로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고, 또한 12살 때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30년 동안 살면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실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음속에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악 속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실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인격적 오셔서 이 땅에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오시자마자 바로 사역을 하여 하늘나라 기준으로 심판하신다면 유대인 중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인간의 구원이란 바로 마귀의 발아래에서 그들을 꺼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구원 사역을 하시기 전에 먼저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신 후에 합법적으로 말씀을 전하실 수가 있었다. 첫 사람 아담은 실패했지만, 둘째 아담 예수께서 마귀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말씀으로 잉태하여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성령이 온전히 그 마음을 붙잡아 사용하실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자신 앞에 나오는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구원하여 주었다. 하지만 율법으로 자신의 의로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끝까지 예수를 배척하고 핍박하여 끝내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고 말았다. 예수께서 인격적으로 오신 이유는, 이렇게 하나님의 육적인 백성을 구원하고자 오신 것이다.

 

육체로 오신 예수의 사역은 유대인에게만 적용된다. 그렇다면 우리 이방 기독교인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영적인 백성이다. 유대인은 육적인 백성이라서 육으로 오신 예수를 믿어야 하고, 기독교인은 영적인 백성이라서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영은 육체를 통하지 않고는 말씀을 하실 수가 없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 중에 한 사람을 택하사 그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시어 그 속의 죄악을 이겨내신 후에 말씀하고 계신다. 이제 이방인은 이렇게 사람을 통해 인격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나와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가 있다.

 

유대인 앞에 오신 모습과 다르게 또다시 인격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이방인의 형편 사정을 다 경험하시고 그들의 희로애락을 이해하시기 위함이다. 만약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영으로만 오셨다면, 그는 결코 이방인의 심정을 이해하실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영적 상태는 너무나 다른데, 유대인으로 삶을 경험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의 심정을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성령을 받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성경 말씀을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구약은 유대인의 율법을 신약은 유대인의 복음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동의하기는 힘들겠지만, 신약 말씀은 이방 기독교인의 율법이며 그리스도께서 인격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방인의 복음이 된다.

 

우리 이방인은 그동안 법도 없이 개,돼지처럼 살다가 예수 이름 불러 성령 받은 것으로 구원이 될 수가 없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다. 따라서 성령은 영적인 율법이라서 지키지 못하면 비록 백성이라도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이 역사한다.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5:45).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에 대하여 그 모든 것은 당신의 아들에게 다 맡기셨다. 그리하여 유대인에게는 육체로 오신 예수를 그리고 이방인에게는 영으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이렇게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를 비판하고 무시하거나 대적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 속의 죽은 영이 있어 방해할 것이며 또한 말씀이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 하며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마음에 병이 들고 곤고한 자들은그 말씀을 듣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마치 유대인들에게 무시를 당한 세리와 창녀 그리고 율법을 어겨 병든 자들이 예수께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서 인격적인 말씀을 그 사람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다. 이방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백성이라서  자기의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악한 영적인 존재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자신을 이길 수가 없다. 이방 기독교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거친 반석같이 말씀하실 때, 그들은 폐부를 찌르는 것같이 아프지만 그 말씀을 시인하고 나오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2)


자신을 낮추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자신보다 못난 모습을 한 사람의 말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인격적인 그리스도께서 해야 할일들이고 또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첨부파일 다운로드: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미투데이 공유
  • 요즘 공유
  • 인쇄하기
 
이름 : 비밀번호 : 스팸방지코드 :
하단로고

새한중앙교회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삼성리 584-1 

Tel : 031-774-6301 / Fax : 031-774-6305 

선교비후원계좌 : 농협 351-0930-6631-83(새한중앙교회)

Email: ksk6307@naver.com / h0sea@naver.com

Copyright ⓒ 2013 새한중앙교회 /  정보관리책임자:김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