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로마서3장 19-31
제목: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이 있기 전의 구원은 혈통을 통한 구원이었다.
하나님의 혈통이 아벨로부터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당대의 의인이었던 아브라함이 살아생전에 그를 마음으로 믿었던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175년을 살고 죽음을 맞은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아브라함의 이름을 불러도 소용이 없다. 반드시 아브라함이 살아생전에 그를 마음으로 믿은 자들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 이는 혈통으로 이루어진 구원은 계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끝으로 혈통을 통한 구원은 끝이 나고, 유대인들에게는 모세를 통해 율법이 주어지게 된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죄 아래 가두기 위해 주신 법으로, 율법을 통해 자신이 율법을 어긴 죄인,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율법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을 구원해주실 메시아 곧, 예수 앞으로 인도해주시기 위한 징검다리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 때의 혈통을 자꾸 생각하며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그저 자신의 의를 쌓기 위해 하는 일종의 종교적인 행위일 뿐이었고,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이며, 율법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으며 계속해서 의를 쌓아갔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죽고 난 이후 구원받은 자는 단 한명도 없었던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선지자들처럼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따라 살며 평생을 몸 바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자들이나, 어떻게 해서든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찾으며 따라 살고자 했던 아주 소수의 자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의 구원은 한 평생을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쫓던 몇 안 되는 자들에게만 허락 된 구원이었다. 그 외에는 율법을 잘 지킨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의를 높인 자들, 율법을 지키지 못해 병 들거나 저주 받은 자들이었고 이들은 당연히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구원하실 아들 예수를 보내주신다. 예수께서 30세가 되던 해, 공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시면서 이 때 부터는 오직 예수를 통한 구원이 시작되었다. 예수이름을 부르고 예수를 믿는 자들은 보통 율법을 어겨 몸에 병이든 죄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율법을 잘 지켰다며 의만 쌓았던 자들은 예수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며 무시하고, 죄인들과 함께 상종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몸에 병이든 것으로 고통을 받고, 이를 고침 받기 위해서 예수를 찾고, 예수를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줄 메시아로 믿었기 때문에 율법을 어긴 자범 죄를 사함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율법을 잘 지킨다 하는 자들 중에서도 예수를 믿었던 소수의 사람들은 구원에 이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이렇게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았던 자들은 주로 병자들과 천민, 창기들이나 세리처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던 못나고 별 볼일 없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되는데 바로 여기서 아브라함의 구원과는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말 했듯이 아브라함을 통한 혈통의 구원은 아브라함의 수명 175년이 다하자 같이 끝을 맺었다. 계승이 되는 구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돌아가신 후에도 예수이름을 부르고, 그 존재에 대해 믿고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이방인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 예수가 육체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시면서 인류의 죄를 같이 떠안고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값없는 구원의 피로 인해 예수이름을 부르면 인간의 영을 지배하던 마귀가 떠나고 원죄를 사함 받아 그 증거로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돌아가신 예수가 3일 만에 부활하시어 영으로 다시 오셨는데, 그리스도 영을 최초로 받은 자가 사도바울이다. 이때부터는 사도바울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도바울 안에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통한 이방인들의 구원이 시작된 것이다.
사도바울을 통한 구원은 아브라함의 구원과 닮은 점이 있다. 사도바울 또한 그가 살아생전에 그를 믿는 자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 사도바울이 죽고 나면 구원도 그것으로 끝이 났다. 사도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아브라함 구원과정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또한 구원이 계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살아있을 때 그를 마음으로 만나고 따른 자들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어서 한정적인 구원이었다.
사도바울이 죽은 후 남은 이방인들은 또 다시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고, 예수 이름을 부르고 받은 성령으로 자신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믿으며 겉만 치중한 종교생활을 하게 되어갔다. 그것은 오늘 날 기독교인들에게 까지 이어져 현재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하고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 열심히 하는 것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 시대 2천년이 지났고, 그 후 기독교 2천년의 시대도 끝이 났다. 지금부터는 영적인 시대이다.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셨던 예수는 지금 부활하여 영으로 오셨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 영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구원은 앞전의 모든 구원과정들과는 달리 계승이 된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나의 죄를 들고 입을 열어 시인할 때 그리스도의 씨앗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이전의 죄를 사하던 구원에서, 죄를 사하는 것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씨앗이 내 마음속에서 자리 잡고 자라기 때문에, 얼마든지 나로 인해 그 씨앗이 다른 사람에게로 번지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씨앗으로 말미암아 자범 죄는 사함 받게 되어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다. 예수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원죄를 사함 받아 성령이 영혼을 보살피시게 되고,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겨진 씨앗으로 자범 죄를 사함 받으면 완벽한 구원과정으로써 알곡으로 거듭나 곧 추수 때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