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거듭난자들의 이야기

가상이 아닌 실제입니다.

가상이 아닌 실제입니다.
먼저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하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 감사드립니다. 어찌 비럭지 같고 천박한 저에게 기회를 주시니 감지덕지입니다.


성경의 히브리서의 말씀을 보면 히브리서 11장 1절-3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도 하고 또한 말씀처럼 그렇게 믿고 살아 왔다고 자부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로 잘못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말로만 믿음을 말했지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말이 필요 없고 오직 실제만 있을 따름입니다.


저는 전형적인 농촌의 농민의 3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숫기도 없는 놈이고 사람들 앞에 가기만하면 울기만 하는 그런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로 살아 왔습니다. 공부도 못해서 초등학교를 가까스로 졸업하고 겨우 중학교를 갈 정도로 머리가 나쁜 놈이었고 (그 당시에 초등학교에서 아이큐 검사를 했는데 저의 아이큐가 80이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 후에는 정말 천만 다행으로 청주공업고등학교 전기과에 입학하고 제가 사는 곳에서 청주까지 당시에는 시내버스가 청주시내만 운행하였기에 매일같이 8km을 걸어서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9월 중순에 어머니의 정신이상증세로 동네에서 미친년 자식으로 취급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무집이나 들어가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심지어 옷을 홀딱 벗고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돌아 다녔습니다.


그 당시에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하여 창피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고 살았고 어머니의 일에 전혀 관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주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굿을 여러번 하는데 굿을 할 때 며칠만 조용하고 며칠이 지나면 여전하였습니다. 하루도 온전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어머니를 옆에서 계속 쫓아다니면서 어머니를 끌어안고 집으로 오는 일을 수없이 했습니다. 당시에 동생들은 중학교1, 초등학교4학년 막내는 여자인데 초등학교1학년 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관심이 없었고, 동생들은 당시 상황을 이해 못하여 놀기 바빴고, 저는 밥을 지어 먹고 학교를 가서 공부 후에는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와서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제 연령 또래는 화투도 하고 기타도 치고 당구도 치고 하였지만, 저는 지금껏 소위 잡기를 하나도 하는 게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 집안일 때문에 다른 일을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10월 중순에 같은 동네에  친구 어머니가 교회를 다녔는데 그분이 교회를 가면 좋겠다고 하면서 전도를 해서 수요예배 때 처음 교회를 나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에서 관심을 갖고 찾아와 도와 주었고 매일같이 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면서 다른 생각할 틈을 주지를 않았습니다. 자연히 어머니의 정신이상은 서서히 차도가 있게 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을 했어도 졸업만을 위해서 다녔습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취직을 못하고 있다가 졸업 후 1년 6개월 만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한국전력을 입사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3개월 만에 신원부적격자란 이름으로  파면이 되었는데, 그 원인을 보니 집안의 7촌 할아버지께서 6.25때 인민군에게 부역을 하였다고 합니다. 즉 연좌제로 인하여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연좌제에 걸려서 공직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이미 모든 것이 끝나버린 상황이라 손쓸 시간도 없었습니다.


결국 낙망이 되고 실의에 빠져서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무엇인가를 의지하지 않으면 살수 없을 만큼 힘들 때 의지한 것이 술이었습니다. 그렇게 술에 취해서 살다보니 망가지게 되고, 돈도 없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낙망 중에 두문불출하고 있던 중 결국 척추디스크 라는 질병을 얻게 되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드러눕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것은 큰 시련이었는데 당시 치료는 엄두도 못 내고 있던 중에 지금은 고인이 된 외숙모의 강요로 움직이지 못하던 저를 데리고 순복음 오산리 금식기도원을 무조건 데리고 가서 밥도 주지 않고 달랑 물 한 병 주고 기도굴속에 집어넣고는 살고 싶으면 기도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기도하라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고 문을 밖에서 닫아버렸습니다. 그때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서 최후의 발악을 하면서 별별 욕을 하며 원망을 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무슨 상황 인가! 내 인생이 여기서 종을 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상황이기에 별다른 방법이 없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요일 저녁에 저 혼자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시면 증거를 보여 주시는데 그 증거로 저를 좀 고쳐주세요. 그러면 제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결국 금요일 새벽에 갑자기 일어나서 자리에 똑바로 앉았습니다. 6개월 동안을 누워살던 제가 스스로 일어나서 앉았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외숙모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하나님 감사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저는 “아~ 이제 죽을 때가 되면 맘이 변한다더니 나를 속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데리고 대성전으로 데리고 가더니 그곳의 목사님들께 안수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부축을 해서 대성전 앞으로 가서 앉았는데 갑자기 누가 머리를 짓누르는 느낌을 받아서 뒤를 봐도 없어서 다시 고개를 숙이는 순간 온몸이 뜨거워서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운 것을 체험하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시간이 한참 지났습니다. 그렇게 한 후에 기도원을 내려와서 어머니도 저도 교회를 떠나서는 살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출석하던 내수교회 목사님께 저의 상황을 아시기에 면담을 했더니, 주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살려주면 어떤 일도 하겠다고 했던 기도가 생각나서 신학교를 가기로 작정하고 신학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이 저는 지금까지 믿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가던 길을 안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믿음의 길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이란 현재의 나의 삶속에서 열매를 나타내 보이지 못하였다면 그것이 믿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제가 알 수도 없었고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014년 2월 초에 농사를 지으라고 하시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고 저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민은 잠시이고 저 자신도 모르는 마음의 확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형제도, 이웃도, 친구도, 성도들도 심지어 내가 낳은 자식들도 나의 손을 잡아 주지 않았으나 생면부지의 김석곤 목사님께서 저에게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 주시므로 알게 되었고 내 영을 살리기 위하여 어떤 것도 아끼지 않는 분인데 제가 무엇이 관대, 무엇인들 못하랴! 하는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나를 죽이기 위하여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알려주셨습니다.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너게 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제가 주님을 만나기전에는 이 부분을 홍해를 건너는 것이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만드신 분이시고 위대하고 전능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일을 행하였다고만 했지 직접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하나의 전설로 설교를 하고 그렇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믿음으로 하면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난다고 말을 하였지만, 실상은 내 자신이 홍해와 같은 장애물을 해결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아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면서 말로만 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 앞에 펼쳐진 홍해바다를 건너는데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하도록 하시는 이유는 저 자신을 세상에서 싸가지 없는 놈이기 때문에, 없애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정말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마음에 작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이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셨다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된다는 것이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주님께 원망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감사하였습니다.


논을 밭으로 만드는 일이 말처럼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논농사를 지었던 그 논을  밭으로 만들기에는 너무나 악조건이 많았습니다. 논 주변은 전부 논으로 경작을 하고 있었고 또한 경작지 옆으로는 소하천이 흐르고 있고 비가 내리면 물이 범람하여 논으로 유입되어 침수되기도 합니다. 이런 곳을 밭으로 만든다고 하니 동네 이장과, 이웃의 친척도,  자문을 받았던 농업기술센타 농업 기술사들도 모두 반대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안 된다고 반대를 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더 불타오르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그 논은 밭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제가 고집스럽게 했는지 제가 한 게 아닌 것을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선 이 일을 하도록 허락하신 주님을 의지하고 전심전력하여 일을 하는데 워낙 일을 하지 못하니 작은 것부터 배우기 시작하기로 하고 일단 논으로 나가서 지형을 면밀히 검토하여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토질 조사를 농업기술센타에 의뢰하여 결과를 송부 받아서 작물을 선정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기에 지혜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매 순간 순간 의지하면서 일을 하였습니다.


첫해에 감히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일반 도라지를 심는 것이 아니라 슈퍼 도라지를 심어 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청주시 농업기술센타를 찾아가서 자문을 받고 기술을 지도 받았고 도라지를 경작 하는 한 사람을 찾아가서 영농의 기술을 배우게 되었는데 저를 가르쳐 주었던 사람도 주변의 어느 누구도 논에 도라지를 심는 것을 반대를 했지 찬성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습기에 약한 도라지를 논에 심는 다는 것은 농사를 망치려고 작정한 것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안 되는데 주님은 하라고 하시는데 주님을 믿고 가자! 하는 마음의 결단을 하고, 경운기 운전도 못하는 제가 직접 경운기를 배워가면서 논을 갈아엎고 로타리를 치고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는데 어려운 고비를 많이 겪었습니다. 때로는 경운기에 깔리기도 하고 운전을 잘못해서 논바닥에 깊이 빠지기도 하고 경운기가 운전하는 중간에 멈추어 서기도하고 그러나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보리라! 하는 마음으로 낮에는 논에서 밤에는 자료를 검색하고 알아보고 이곳저곳 전화로 알아보면서 슈퍼도라지를 심었습니다. 묘상을 만드는 방법, 비닐 멀칭을 하는 법, 씨앗 뿌리는 방법, 풀을 제거하는 법, 새싹을 솎아 내는 방법 등등을 차근차근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도라지 씨앗을 심고 관리한 땅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그 자리에서 두 손 들고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문에 저 자신이 얼마나 미련하고 지혜도 없고 어리석은 인간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신성을 두셨다고 하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저 자신을 후회막급 합니다.


탄식할 사이도 시간도 절대로 주님은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이고 환상이 아니라 실상이다. 라고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만 의지하고 나가니 거기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시고 세미하게 인도해 주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앞에 저는 감히 이렇게 한마디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 만만 감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미련합니다. 미천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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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벧엘

등록일
2023-11-05 21:03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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