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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자들의 이야기

가진 자의 어려움

마태복음 19:16-23

가진 자의 어려움

 

위 말씀은 부자청년이 예수께 나와 자신이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묻자 모든 소유를 버리고 자신을 쫒으라는 말에 부자청년이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에 대하여, 끝부분에 나오는 구절인 부자가 천국 들어가는게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는 말만 인용해서, “가진 것이 많은 자는 천국가기가 어렵구나라며 주님은 가난한자의 편인 것 처럼 단순하게 생각한다.

 

더구나 요즘처럼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의 기득권층이나 정치권에 잘사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교양적 차원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오늘날 기독교에서 이 말씀을 목사 입에서 듣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세상 부를 가진 부자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지식적으로나, 신앙생활 면에서 자신이 잘났다고 하는 자들이 예수를 믿고자 할 때 그것이 어렵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처음 받았을 때는 예수께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만 쫒으리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내 소유를 챙기게 되고 버리기엔 아까운 것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의 상태를 점검 해보자 다시 주님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쫒으라고 했을 때 그것이 가능한지 말이다.

 

이는 기독교인들로써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죽을 만큼 자신을 쳐서 소욕을 복종 시킨다고 해도 다시 시간이 흐르면 원상복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는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신 것이 아닌 나의 자아(죽은 영)가 나의 주인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 달리 율법의 제제나 보호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를 달리 제제하거나 세상 유혹에서 우릴 지켜줄 수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자신 스스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의 경험과 나의 판단이 곧 주인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성령을 받았다고 한들 위기에 처하면 결국 우리의 자아를 따라 선택하고 편한 길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율법을 어긴 죄(자범 죄)를 사해주시고 보혈의 은혜로 인류의 원죄까지 해결해주셨기 때문에 성령의 지배를 받을때 성령을 따라 살 수 있었지만, 어긴다면 즉결 죽임을 면치 못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성령이 오셨을 때 구원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다르다. 우리는 율법이 없었고 죄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모호하다.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무엇이 죄인지 누가 정한 죄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이름을 부르고 피 흘림의 은혜로 성령을 받았다. 그런데 이 성령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알게 하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기준을 세워주는 율법, 즉 영적인 율법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을 받은 것은 아직, 구원의 완성이 아닌 백성으로써 법을 받은 시작단계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이방인들은 성령을 따라 살지 못했음에도 완성이 아니기에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을 어겨 저주를 받아 침략을 당하거나 몸에 병이 들었다. 이 처럼 우리 이방인들도 성령의 법을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 바로 마음이 병들어서 죄에 대해 점점 무감각 해지고, 세상에 지배되어 불신자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이방인들에게도 이스라엘 땅에 예수가 육체로 오셨던 것처럼 부활하여 영으로써 그리스도 영으로 우리에게 오셨다.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성령의법을 어긴 죄인임을 시인하고, 자신이 성령을 따라 살고자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자들에게 오신다. 그리고 그들이 성령의 법을 어긴 죄(자범 죄)를 사해주시고 마음속에서 합법적으로 내 기준을 무너뜨리신다.

 

우리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달리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문화적으로나 여러 측면에서 우리가 선택하여 믿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마음은 우리의 목적에 따라 본능에 따라 바뀐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우리의 자아를 하나님을 위해 사는 목적으로 바꿔주시고 나의 본능을 통제하셔서 오직 그리스도만 보고 살수있게끔 해주신다. 다시 말해 성령을 따라 살 수 있게 마음 판을 바꿔주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이방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우리 주인으로 모셔야지만 변치 않는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모르고 기독교인들은 마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것이 자신이 주님을 쫒은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위 구절에 나오는 부자청년마냥 자신의 재산을 쌓고 스스로 의로워진 것에 불과하다.

 

부자청년이 정말 예수께 나와 구원을 받고자 했다면, 자신의 것을 버리고 쫒았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에초에 예수께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고자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로움을 인정받기위해 나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유를 보자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괴로워 할 것이나, 신앙생활로 의로워져있는 사람이라면 여태 자신이 바친 재물과 시간이 아까워서 그에 대한 고집과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의로워져있어 자신을 돌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노력이 그 사람에겐 신앙이고 하나님이고 믿고 지켜야할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노력으로 가진 것이 너무 많아 그리스도 자신들 앞에 왔음에도 그것이 버리기 아까워 떠나버릴 것이다.

 

정말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쫒으려는 자는 그리스도가 여러분들 앞에 나타났을 때 자신이 성령을 어긴 죄인임을 시인하고 자기문제를 해결받기위해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반납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가 원하는 삶을 살며 자기 같은 죄인들을 위하여 똑같은 사역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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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요셉

등록일
2023-12-01 07:14
조회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