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거듭난자들의 이야기

기독교인의 순종

요한복음 3:35-36

기독교인의 순종

 

위 구절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고 따르는 순종에 대해 순종하면 영생을 얻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머문다는 내용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종이라는 단어와 연상지어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삭이다. 이삭은 순종의 대표적인 예로써 성경에 언급되며, 자기 목숨을 바쳐 아버지에 뜻에 따르는 의인이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종의 미덕으로써 침묵과 아무런 불만 없이 시키시는 일에 따르는 것을 순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이삭은 마음에서부터 아브라함을 따랐기 때문에 온전히 순종 할 수 있었지만, 과연 기독교인들이 마음으로부터 성령을 따라, 혹은 자신이 다니는 목회자를 따라 순종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모든 사람들은 마음 생각을 동일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질문을 던져도 자신은 마음에서부터 순종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이다.

 

먼저 마음이라는 것은 그 뒤에 반드시 행동이 나타난다. 쉽게 말해서 배고파서 밥을 먹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식사준비가 번거롭더라도 배고픔이라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반드시 실행에 옮기고 그 욕망을 해결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생각은 좀 다르다. 생각은 내가 굳이 무언가 이루기 위해서 결단하고 실행하는 것이 아닌, 그저 머릿속에서 한번쯤 생각해보고 다짐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은 언제든지 할 수 있고, 언제든지 없었던 일로 칠 수 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우리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치자. 근데 그냥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다짐하면 그것은 생각에 불과하다. 그래서 언제든지 번복할 수 있고 없었던 일로 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혹은 어떠한 목적을 정해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면 그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해 결단을 할 것이고, 그 결단을 실행에 옮긴다. 그것이 바로 마음에서 하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과 마음이 다른 이유는 우리가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우리 이방인의 특성을 알기 전에 먼저 하나님 백성이었던 유대인들을 살펴봐야 한다.

 

유대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육체에 율법을 받고 태어났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모든 문화와 생활을 지배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그들은 오로지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알려주신 사고방식만 가지고 살았다. 그 결과 그들의 마음 판은 죄가 싹트지 못해 순수했으며, 생각과 마음이 따로 노는 우리 이방인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면서, 그들 문화와 생활에 이방문화가 들어오게 됐다. 그 결과 율법을 어겨 몸에 병이 생기고, 마음에도 죄가 싹텄다. 이러한 율법을 어긴 죄가 넘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땅에 당신의 아들 예수를 육체로 보내시고, 하나님의 모든 뜻을 예수에게 부여하셨다. 그리고 율법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인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러나 그중에 일부만이 자신이 율법을 어긴 죄를 느끼고 고통스러워했고, 예수께서는 그런 자들의 병과 함께 그들 마음속에 든 죄까지 해결하셨다. 그리고 후에 그들이 예수를 끝까지 믿고 성령을 받았을 때,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이방인들의 사고방식은 유대인들과 전혀 달랐다. 애초에 하나님의 율법이 없었고, 어떠한 제제도 이방인들에게는 없었기에 이방인의 사고방식은 오로지 살아남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결과 자신의 속내를 남에게 들켰다가는, 손해를 입기 때문에 점점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남기 위해 위장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결과 생각 마음이 따로 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자리 잡은 이방인들의 마음속에는 죽은 영(나의 자아)’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이삭과 같이 온전하게 순종할 수 없다. 우리 이방인들은 이삭이 아니라 야곱과 같은 족속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야곱은 약삭빠르고 이기적이며,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다른 의인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왜냐하면, 야곱이 바로 우리 이방인들의 예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순종하기 위해서는 야곱과 같이 싸워서 이겨야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과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걸까? 바로 우리 자신, 나의 자아(죽은 영)과의 싸움이다. 그런데,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 구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 속 자아(죽은 영)와의 싸움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결코 성령의 말씀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을 따라 살기 위해, 성령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먹고 실천을 해야 하는데, 모든 기독교인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령의 말씀을 마음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애쓰고, 성령의 말씀대로 따라 살아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결단하기는커녕, ‘생각에서 아 이러지 말아야겠다.”, “회개해야겠다.”, “회개했으니 주님께서 용서해 주실 거야 이러한 식으로 자신의 문제에 대해 늘 다짐하고 느끼고 끝나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성령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다고 하며 방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말씀에 방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이방인의 구원이 완전하지가 않아서이다. ‘성령은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완성역할을 했지만, 우리 이방인들에게는 이제야 하나님백성으로 살 수 있게끔 영적인 율법역할을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에 기준에 묻혀 악이 관영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적인 백성을 위해 또 한 번 당신의 아들을 내려 보내셨다. 바로 부활하여 영으로 말이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기위해서, 성령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내 자아(죽은 영)가 아닌 그리스도 영’(산 영)께서 나의 주인이 되셔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받아야한다.

 

내가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고, 반드시 침묵이 아닌 충돌이 나타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이미 나 자신이라는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주인이신 그리스도와 끝없이 충돌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맞는지, 그리고 왜 맞는지, 더 나아가 왜 이분이 나의 주인이 되셔야하는지를 끝없이 고민하고, 충돌하여, 자신의 목적에 왜 그리스도가 나에게 필요한지를 느껴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나아져야겠다.” “나의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욕망과 더불어 내 마음이 그리스도를 따라 온전히 순종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에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온전히 성령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인이 온전히 성령을 따라 순종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공유하기
등록자

요셉

등록일
2023-12-01 20:32
조회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