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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마태복음15:1-20

제목: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유대인들은 율법아래서 이천년 동안 하나님 이름을 부르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사라지고 입술로만 하나님 이름을 부를 뿐, 마음은 전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에 대한 공경심이 사라지고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나아와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하고 예수께 시비를 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예수께 이런 말을 했던 것은, 자신들은 장로의 유전을 따라 음식을 먹을 때 반드시 손과 발을 씻고 먹는데,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은 왜 그것을 지키지 않느냐? 며 예수께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위 말씀을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아비나 어미에게는 대충해도 되고, 무조건 하나님께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느냐? 어찌하여 너희의 유전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곡해하여 가르치느냐?”, 도리어 예수께서 그들을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이사야가 했던 말을 인용하여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그러니까 예수가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쳤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계명을 가지고 유대 백성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것이 전통으로 굳어지다 보니, 예수가 하고 다니는 일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사건건 예수가 하는 일에 대해서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종교지도자들과 기독교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까? 누차 드리는 말씀이지만, 당시 종교지도자들이나 오늘날 종교지도자들이나 하나 다를 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당시만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 같은 자들이 교회 안에 똑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종교지도자들은 절대 자신은 바리새인 같은 자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끝까지 자신은 바리새인이 아니라고 부인 한다면,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하는 말씀이,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고,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만,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옷을 입을 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게 되면 그 아래 있는 단추들도 모두 잘못 끼워지게 되듯이,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잘못된 길을 걷게 되자, 그 밑에 있는 유대 백성들 모두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종교지도자들이 잘못된 길로 성도들을 인도하게 되자, 그 밑에 있는 성도들 또한 모두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세에는 주의 종들을 잘 만나야 된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곧장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도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무조건 구원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다시 말해 유대인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유대인들은 율법아래서 하나님 백성으로 이천년을 살다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마귀의 발아래서 수천년을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이제 겨우 사단의 백성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찌 유대인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이 똑같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절대 공평하신 분이시다. 가령,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 아래서 이천년을 살게 하셨다면,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율법을 주시고, 그 아래서 이천년을 살게 하시는 것이다. 다만,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육체에다 주셨기 때문에 율법을 육체로 지키며 살도록 하였으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마음속에다 주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율법(성령의 법)을 마음속으로 지켜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두 백성들 모두가 죄악을 이기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율법을 거역하고 죄 아래 갇히고 말았다.

 

두 백성 모두가 율법을 거역하고 죄 아래 갇혀 있던 것을, 하나님께서 두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 앞에 각각 당신의 아들(예수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을 보내서, 율법을 거역한 하나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도록 하였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만 받으면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섭리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앞에 하나님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이 오셔서 하나님의 섭리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제야 때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알려주고 계신 것이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모르고 있다가,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알려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알 수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과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기독교인들 중에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를 찾아볼 수가 없다. 만약 기독교인들 중에 성령으로 온전케 된 자가 한명이라도 있었더라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 그런 자가 한명도 없기 때문에, 부득불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신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바로소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 중에도 율법으로 온전케 된 자가 한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예수가 굳이 이스라엘 땅에 오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 중에 율법으로 온전케 된 자가 한명도 없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부득불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다. 예수가 오셔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유대인들도 비로소 온전한 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설마 기독교인 중에 성령으로 온전케 된 자가 한명도 없을라고...하고 반문 하겠지만, 단언컨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한명도 없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으로 예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악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마음이 모두 죄로 물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처음 성령을 받으면 눈이라도 빼줄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여, 나중에는 성령을 거스르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이유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이다.

 

어떤 교회 여집사 한분이 교회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교회 일에 열심을 내는 분이 있다. 그는 주일성수는 말할 것도 없고,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 어느 것도 빼놓지 않고 열심이다. 성경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여 누가 성경에 대해서 물어보면 즉시즉시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그 여집사는 하나님에 대한 일이라면 목숨이라도 내놓고 덤벼들었다. 그를 겉으로만 보면 어느 한군데 흠잡을 곳이 없는 분이다. 

 

그런데 그 여집사에게도 흠이 하나 있었다. 하나님 일은 그토록 열심히 하면서, 집안일은 등한시 하는 것이다. 그분에게도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데, 그 여집사는 무조건 하나님께만 잘하면 되지, 가족들은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람을 두고 성경은 고르반이라고 말한다. 과연 이런 여집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뭐가 다를까? 집안일과 가족들을 등한시 하는 자가 과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을까? 누가 이 사람을 이렇게 가르쳐 놓았나?

 

오늘날 한국교회에 좀 열심을 내는 자들 대부분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그리고 아직도 죄 아래 살고 있는 자들이, 성령으로 받아 구원 받았다며,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아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도 마음속에는 죄악이 가득한데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이라며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등한시 하는 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결국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다.

 

누차 드리는 말씀이지만,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할뿐,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해결 받지 못하면, 아무리 오랫동안 열심히 신앙생활 했어도 종교적 행위로는, 성령을 거역한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영생이 이르지 못한다. 유대인들이 율법아래서 종교적인 행위를 아무리 열심히 했더라도, 그런 행위로는 율법을 거역한 죄가 해결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이방인들 앞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자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서 죄악을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셔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시게 되면, 그때부터는 입술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가 하는 말을 즉시즉시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엄청난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아버지와 하나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도 하나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계셔야만이, 비로소 우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또한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있는 자를 당신의 아들이라 인정하시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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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1-05-16 00: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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