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주일 낮 말씀

본문: 마태복음11:25-30

제목: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오늘날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하여 삶의 무게가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말 못할 고민은 많다. 또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산다고 하여 그들도 삶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해 보이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심하게 곪아 있다. 그리고 종교(기독교, 불교, 이슬람, 유대교 등등...)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삶의 무게를 못 느끼며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도 문제는 많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의지하여 힘든 문제를 조금 더 참고 견디는 것뿐이다. 그러나 인간이 참고 견딘다고 하여 자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이런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해줄 사람이 없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여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아래서 2천년 동안 율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것이 자신들에게 무거운 짐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율법아래서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니 도리어 율법으로 의롭게(구원) 되었다며, 스스로를 구원 받은 하나님 백성으로 여겼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교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런 자들 앞에 율법의 완성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그들이 예수를 믿지 못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예수의 출신성분과 생김새를 보고 더더욱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사야가 기록한 글을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53:2). 그들이 이런 예수를 배척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것이 더 잘못된 일일 수도 있다.

 

아무리 택한 백성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믿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의미를 제대로 모르게 되면 어떠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 가를 우리는 위 내용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날마다 지키며 산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대단히 힘든 일이었을 텐데, 그들은 그것을 배제하고 도리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구원을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누가 넣어 주었을까? 그것은 인간의 몸 밖에서 역사하는 마귀와 더불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악한 영들이다. 마귀와 더불어 악한 영들이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틈타고 들어와 의롭게 되었다며 날뛰는 그들을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참고로 마귀는 인간의 몸 밖에서 죄를 짓도록 역사하지만, ‘악한 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를 짓도록 행동한다.

 

여기서 잠깐 유대인들에게 주신 율법과 복음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유대인들은 태어나자마자 율법의 보호를 받는다. 그 증거가 바로 팔일 만에 받는 할례이다. 할례의 의미는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이를 직역하면 악한 영이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이 점점 성장하면서 사물을 접하고 살다보면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내기란 절대 쉽지 않다. 그리하여 끝내는 유대인 누구나 다 율법을 범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이를 알고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유대인 모두를 율법아래 가두어 놓았다가,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바울은 이를 두고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5:20-21).


이를 정리하면, 유대인들이 율법을 범하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고, 죄가 점점 더 쌓이게 되면 그때 악한 영(귀신)’이 유대인들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다. 이것이 계속해서 반복되다보면 나중에는 악한 영(귀신)’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면 나중에는 미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악한 영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병들이 유대인들 육체에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께서 네 침상을 들고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노라!“ ”네 죄를 사하노라!” “귀신아 거기서 나오라!”라고 하신 말씀들은, 모두가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해주는 동시에 육체에 나타난 병들을 치료하는 과정들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율법을 거역한 죄만 해결되었다고 해서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몸 밖에서 활동하는 마귀까지 멸해줘야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마귀를 멸하는 과정은 이렇다. 마귀가 인간을 통해 예수를 죽였지만, 죄 없는 예수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로서 마귀는 세상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때까지 인간의 영()을 지배하던 마귀가 떠나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간의 영()을 다시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에덴동산에서는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이 인간 곁을 떠나셨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다시 인간의 영()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진 인간의 영()만 책임지고 지배하신다.

 

예수께서 오셔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를 해결해 주시고 하늘로 승천하시자,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죄를 해결 받은 유대인들 마음을 붙잡고 악한 영이 더 이상 유대인들 마음속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주시는 것이다. 이를 두고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예수를 통하여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은 유대인들은 성령의 지배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 가지 예로,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제자들은 예수가 이 땅에 살아 계실 때 이미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계속해서 예수 앞에서 믿음 없는 행동을 보였던 것은, 한 가지 죄만 사함 받아서는 결코 온전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나자, 자신들을 잡으러 다니는 관원들의 눈을 피해 마가다락방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순절이 되어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자, 그제야 비로소 방문을 박차고 나가서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외칠 수 있었다. 죄를 사함 받은 유대인들은 반드시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예수께서도 인자를 거역하는 것은 회개하고 돌이키면 살 수 있으나,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다시는 회개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아나니아 삽비라가 성령을 속이고 재산 얼마를 감추었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성령을 거역해도 당장은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령이 이방인들에게는 율법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방인들도 성령을 거역한 자를 유대인들처럼 당장 죽이기로 작정한다면,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도 살아 남을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율법을 거역했을 때 당장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율법을 거역한 자들을 당장 죽이기로 작정했다면, 한 사람도 살아 남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율법을 거역한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율법(성령)을 거역해도 당장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 것은, 장차 오실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율법(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 말씀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치부하고,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연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말씀이 전혀 상관없는 것일까?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이 말씀이 적용되고 있다. 단지, 기독교인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 어떻게 기독교인들에게 이 말씀이 적용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달리 태어날 때부터 죄악 가운데서 태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처럼 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태어나기 때문에, 마음속에 죄악의 씨를 품고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그 죄악의 씨도 함께 자라게 되어, 어른이 되어갈수록 이방인들은 점점 더 악해지는 것이다. 거기다 마귀의 지배까지 받다보니 이방인들로서는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시는 일을 되풀이 하게 된다. 이런 이방인들을 두고 유대인들은 개, 돼지로 취급하는데, 그 이유는 개는 자기가 토한 도로 주워 먹고, 돼지는 자기가 싼 똥 위에 가서 도로 눕게 되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개, 돼지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살아오던 이방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전도를 받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자,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방인들 모두가 깜짝 놀라며 자신들도 유대인들처럼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뛸 듯이 기뻐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아도 유대인들처럼 곧장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개, 돼지처럼 살던 이방인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영적인 율법)을 받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첫 출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을 두고 하나님 백성(기독교인)이라 부른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 가운데 태어나서 누구나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살다보니,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죄악의 씨앗 또한 점점 자라게 되고, 인간의 죄를 먹고 사는 악한 영(귀신)’들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성령의 뜻대로 살 수 없도록 날마다 방해를 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는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또는 전 재산이라도 다 받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그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돌아서고 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역할만 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으면 처음에는 구원 받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으로는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때는 자신이 성령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들때 이것이 바로 성령을 거역한 죄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된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자기 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신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는다. 위서도 말했듯이, 성령은 마귀 발아래서 나온 기독교인들의 영()만 책임질 뿐,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까지 책임지지 않는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책임지도록 하셨다. 기독교인들 앞에 오실 하나님 아들이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오셔서 기독교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죄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악한 영 또한 그대로 남아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죄를 짓게 하며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에게는 무거운 짐이다.

 

그런데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이것을 무거운 짐이라 여기지 않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무거운 짐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전혀 죄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어긴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며 살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는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처럼 율법(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외치고 있다.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처럼 율법(성령의 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외치게 되면 누가 가장 좋아할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악한 영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이단과 사이비 종교들이 왜 생겨나는가? 바로 율법(성령의 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단정 짓는 순간! 혹은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순간! 믿는 자들 마음속에 숨어 있던 악한 영들이 자신을 예수 영이나 성령으로 둔갑하여, 인간들을 속이고 영혼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하는 것이다. 특히 신비주의를 추종하는 자들일수록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져들기 쉽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율법을 왜 먼저 주셨는지를 그 이유를 모르고 신앙생활 할 때 엄청난 함정에 빠지게 되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왜 성령을 먼저 보내주셨는지, 그리고 성령이 기독교인들에게 무슨 역할을 하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모르고 신앙생활 하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엄청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하나님 백성이 거짓목사에게 속아 잘못된 것을 진리로 알고 받아들이게 되면, 거기서 빠져 나오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악한 영들이 믿는 자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몸에 배인 습관을 끊어내려면 힘이 들듯이, 신앙 또한 한번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되면, 거기서 돌아나오기가 절대 쉽지 않다.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었을 때, 악한 영들이 그들의 마음을 붙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아 결국 예수를 죽이는데 까지 내어주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교회에서 선생 노릇을 하던 자들이 악한 영에게 좀 더 많이 붙들려 있기 때문에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절대 쉽지 않다. 이단에 속한 자들이 이단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해야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듯이, 목사로 혹은 신학교수로 성도들을 가르쳤던 자들은, 그동안 자신이 가르쳤던 모든 것들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해야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자신과 싸워 이긴 자들만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 진 자는 사단의 하수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는 모두 다 똑같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믿는 자가 조금 더 자신의 짐을 무겁게 느끼고 있다는 차이 뿐이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자신의 짐이 무겁게 느껴져도 어느 누구도 이를 해결해줄 자가 없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짐이 무겁게 느껴져도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여 사는 것이다. 혹여 교회 문을 두드려 보아도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고작해야 목사를 통해 위로의 말을 듣는 것이 전부이다. 목사 자신도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할 사람인데, 그가 누구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카톨릭 신부나 불교의 스님들도 문제 해결의 근본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이방인들 앞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다시 오신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모두 해결해 주신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권세가 있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들 모두가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되어 있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자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지금 즉시,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와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으라! 그리하면 당신도 모든 문제를 해결 받고 살게 되리라! -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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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19-06-1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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