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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성령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사역!

주일 낮 말씀

본문: 사도행전2:1-47

제목: 성령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사역!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여 40일 동안을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하게 되자, 제자들이 관원들 눈을 피해 마가다락방에 숨어 있었다. 그러다 오순절 날이 되어 성령이 하늘로부터 임하게 되자,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가 하나님 아들임을 담대하게 선포하게 된다. 그러자 각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명절을 지내려 왔다가 자기나라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모두가 깜짝 놀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은 누구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법이라서, 열두제자들 역시 율법을 거역한 죄인들이다. 그런데 열두 제자들은 예수가 살아계실 때 이미 율법을 거역한 죄(자범죄)를 사해주셨다. 하지만, 예수를 통해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았다 해도, 아직 제자들의 영()이 마귀 발아래서 완전히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에 이른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마지막에 오시는 성령까지 받아야 비로소 유대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인간의 영()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서,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이유는 바로 인간에게만 하늘의 영()을 부여해서 생령(生靈)이 되게 하셨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자,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인간 곁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 세상 임금인 마귀가 하나님이 떠난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아 인간의 영혼(靈魂)을 합법적으로 지배하게 된 것이다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마귀 발아래 놓이게 된 인간의 영은 하나님도 해결하지 못한다.

 

인간의 영이 마귀 발아래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흠 없는 인간의 피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마귀 발아래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의 피로는 마귀를 멸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들 앞에 보내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는 마귀를 멸하는 능력이 있다. 예수를 통하여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았던 제자들이, 가장 먼저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그 증거로 성령을 받은 것이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반드시 예수를 통하여 율법을 거역한 죄(자범죄)를 사함 받은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하여 아담이 지은 원죄까지 해결 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마지막에 성령을 받아야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예수 살과 예수 피를 마시고 구원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이다. 예수 살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죄를 해결하게 되고, 예수 피는 인류의 조상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하는 능력이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꼭 알아야 할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는 유대인의 원죄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원죄까지도 해결하게 된다. 그 이유는 모든 인류의 조상이 아담 한 사람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방인이라도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누구에게나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잘 모르고 살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이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란?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받은 기독교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성령의 법이란? 예수께서 신약성경에 하신 말씀들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천국은 고사하고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난 이방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하게 따라 사는 자가 없다. 결국 이대로 죽으면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심판은 자신이 살아생전에 지은 죄악의 분량에 따라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이 꼭 이방인들에게 죄의 올무를 씌워 지옥에 보내려고 하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들에게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율법을 주시고,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을 모두 율법아래 가두셨다. 당시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율법을 주신 것이 꼭 자신들에게 죄의 올무를 씌워 지옥에 보내려고 하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바울은 이런 경우를 두고 율법이 오기 전에도 죄가 왕 노릇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울의 이 말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기 전에도 이미 죄가 세상에서 왕 노릇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이 오기 전에도 인간은 죄로 인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죄의 올무를 씌워 죽이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들을 살리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아들을 보내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토록 하셨고, 오늘날 영적인 백성인 기독교인들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성령(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토록 하신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날 불신자라도 전도를 받아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아무런 댓가 없이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엇다. 이는 모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의 효력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유대인들처럼 곧장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는 그 순간부터가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으로 첫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멀리하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세상적인 욕망 때문에 자꾸만 성령을 거역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마음속의 죄는 점점 더 자라게 되어 나중에는 천국에 대한 생각마저 희미해지고 마는 것이다. 마음속의 욕구를 떨쳐버리고 전심전력으로 기도를 해도 성령과 소통하기 힘든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살기 위해서 세상과 짝하다보니 성령과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면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어느 날 몹쓸 병에 걸려 죽게 생겨거나 또는 하던 사업이 망하게 되면, 그때서야 울고불고 난리 법석을 피우며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그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너무 멀어져 있어서 응답받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죽기 살기로 매달린 자는 응답을 받고 살 수 있는 길로 나가게 된다.

 

율법아래서 2천년 동안 살아오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그들의 구원이 완성 되지만, 이방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는 그 순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율법(마음속에 주신 법)’을 받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첫출발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유대인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율법으로는 유대인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육체를 입은 예수가 오셔서 그들을 율법을 거역한 죄에서 구원해 주셔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 또한 영적인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 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영적인 율법(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셔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 모두가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배척하더니,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 받은 것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말은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말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뿐 인간을 절대 의롭게 하지 못한다. 만약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육체를 입은 예수가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되었더라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히브리서는 이를 두고 그 첫 것을 패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10:9) 말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께서 신약성경에 하신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이다. 성령을 받았으면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죄이다. 그런데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이것을 자신의 죄악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더 참담하다.

 

기독교인들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그나마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를 믿을 수 있을 텐데,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해줄 구세주로 믿을 수 있겠는가?

 

기독교인들에게 오신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만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에게 이적과 기사를 베풀어 여러 가지 표적을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 이름을 부르도록 하여 성령을 받게 하신 뒤, 그들을 하나님 백성 만드는 역할을 하신다. 성령께서 기독교 역사 2천년 동안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영적인 율법)을 받아 하나님 백성으로 편입 된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약 삼분의 일정도 된다. 이런 말씀은 이미 구약 성경에 예언 되어 있다. 전세계 인구 중 삼분의 일은 믿고, 삼분의 이는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제 기독교의 부흥은 더 이상 없다. 다만 믿는 백성들 중에서 죽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그 숫자를 채우기 위하여 새로운 사람들이 하나님 백성으로 들어올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 백성 삼분의 일 가운데서 알곡들을 골라내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믿는 백성들 가운데서 알곡들을 골라내어 인()치는 작업을 하시는 것이다. ()친다는 말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영으로 직접 들어가신다는 말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세상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또한 타락으로도 가지 않을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아서는 모두가 세상 유혹에 넘어가 타락으로 가게 되지만,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게 되면 절대 세상과 타협하거나 세상 것을 탐하지 않기 때문에 타락으로 가지 않는다. 이렇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남은 자들이, 이 세상 마지막 날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게 되면, 공중으로 불러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성령아래서는 천하 없는 어떤 자라도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마음속에 들어 있는 욕심 때문에 세상 것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믿음에서 넘어져 타락으로 가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믿음 좋다는 목사들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비교해 보면 무엇을 옳고 그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예수님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성정이 우리 똑같은 사도 바울의 삶과만 비교해 보더라도, 오늘날 교회에서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 자들의 삶이 얼마나 성경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성령(영적인 율법)아래서의 삶은 저렇게 세상과 타협하며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 독불장군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영적인 율법)아래서는 온전한 삶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이걸 알고 계신다. 자신이 살아 있는 한 세상과 타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령아래서의 삶은 불완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기독교인들 앞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내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자신의 옛 사람이 죽고 없기 때문에 다시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나에 주인이 되어 세상 것들을 철저하게 막아주시기 때문이다. -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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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19-07-01 16:45
조회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