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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 오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디모데전서2:1-7

제목: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 오신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으나,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기에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법대로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길이 참으시는 중에, 이스라엘 2천년 역사가 끝나자 아브라함과 약속한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라(18:14)는 말씀대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주셨다.

 

하나님 법대로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법을 어긴 사람들이기 때문에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하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당신의 아들 예수를 믿고 나오는 자들에게는 율법을 거역한 죄(자범죄)를 사해주도록 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예수를 믿었던 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

 

성령이 인간에게 오실 수 있었던 근거는, 아담의 범죄로 에덴동산에서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인 마귀가 세상 임금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자, 성령으로 오셔서 각 사람의 영()을 다시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로서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은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먼저 사함 받은 후, 마지막에 아담이 지은 원죄까지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 이를 다르게 표현 하면, 유대인들은 예수 살을 먹고 율법을 거역한 죄(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게 되었으며, 마지막에 예수 피를 마시게 되자, 마귀 발아래 놓여 있던 인간의 영()이 해방되어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이로서 유대인들은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달해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속사정을 하나님께 아뢰어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도 한다. 심지어 하나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도 예수 앞으로 달려 나와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로마 백부장은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서 사실 구원하고는 거리가 먼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도 율법을 거역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된 자들이 많았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자라서 그대로 내버려 두게 되면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이다. 그러던 자가 예수를 만나 연못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걷게 되었다. 손 마른 자 역시 안식일에 회당에 나왔다가 예수를 만나 고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18년 동안이나 귀신에게 붙잡혀 허리를 펴지 못하던 여인도 예수를 만나 귀신이 떠나자 허리를 펴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그들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죽게 생긴 자들이나 예수께서 일방적으로 고쳐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보자가 오셔서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인간들 앞에 중보자로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보내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싶어도 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은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말씀이 곧 법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는 옳고 그름만 있을 뿐, 이에 지나치는 것은 모두 죄다. 다시 말해 하나님 법에는 용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어겼다면 무조건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면 죽어야 하는 것 때문에 여호와 이름만 나오면 벌벌 떨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보자로 오신 예수께서는 율법아래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목격도 하시고, 직접 체험도 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죄로만 심판하지 않으시고 긍휼이 여길 자는 긍휼이 여겨 주시고, 불쌍히 여길 자는 불쌍히 여겨 주셨던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사랑이라고 하는 말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예수라고 하여 무조건 사랑만 베 푸시는 분이 아니시다. 바리새인들처럼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자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이라며 화가 있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이런 자들은 끝까지 자기 자신을 악에서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누가 하나님 깊은 뜻을 기독교인들에게 전해주고, 누가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알아서 하나님께 앞에 중보를 해주시게 될까? 아직도 죄악 가운데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일을 감당할 자가 없다. 기독교인들은 성령께서 그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성령은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으신다.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인간들과 함께 생활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속사정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의 속사정 또한 하나님 앞에 아뢸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고, 또한 기독교인들의 속사정을 하나님 앞에 아뢰어줄 분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 한분뿐이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오셔서, 기독교인들과 함께 똑같이 생활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교인들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기독교인들의 고통을 잘 알고 계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속사정을 낱낱이 헤아려서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 앞에 오신 중보자가 하시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거역한 죄 때문에 한 사람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을 받고 성령의 법아래서 2천년을 살았다. 하지만, 죄 가운데 태어난 이방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자가 없다. 그리하여 모두가 성령을 거역하고 죄 아래 갇혀 있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 법으로만 따지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사람들이라서 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기독교인들 모두가 이대로 죽으면,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믿는 자가 죽어서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은 죄를 해결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살아생전에 죄를 해결 받지 못하고 죽은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거친 후 지옥불에 던져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들을 이렇게 죄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영적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을 이방인들 앞에 보내서 중보를 하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기독교인들에게 전해주도록 하여, 기독교인들이 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되는 가를 알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중보자로 오신 아들은 하나님 뜻만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속사정도 하나님께 아뢰어서, 불쌍히 여길 자는 불쌍히 여겨 주시고, 긍휼히 여길 자는 긍휼히 여겨주시게 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무덤 속에 들어 있는 자들도 죽어 말을 못해서 그렇지 그들에게도 핑계는 다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생각지 못한 일들이 갑자기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주일날 교회를 가야 하는데, 갑자기 가족 중 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급보를 받게 되면, 교회보다는 병원을 먼저 찾게 된다. 이럴 경우 하나님 법으로 따지게 되면, 그는 분명히 안식일 법을 거역한 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도 이럴 때는 봐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그냥 넘기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 목사들마저도 이럴 때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얼른 병원 먼저 가보라고 등까지 떠미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이것도 죄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것 까지 죄라고 한다면 갑갑하여 이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겠냐고 반문하겠지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것 까지 모두 지키며 살았던 것이다. 누가복음 10 30-37절에 나오는 강도 만난 이야기가 바로 율법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충을 말해주고 있다. 당시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올려드려야 하는 신분이고, 레위인은 성전에서 제물을 만지는 자라서, 강도를 만나 피 흘리고 있는 자를 만져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냥 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마리아 인은 거칠 것이 없으므로 강도만난 자를 거리낌 없이 도와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가를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 있지만, 사실 율법아래 사는 자들로서는 강도만난 자를 도와주고 싶어도 율법의 저촉을 받기 때문에 도와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제사장과 레위인은 악한 자라서 안 도와 준 것이고, 사마리아인은 선한자라서 도와 준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뜻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것은 죄가 되고, 어떤 것은 죄가 아니고 하는 것이 없다. 사단의 하수인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땅에서 하는 짓은 모두가 죄가 된다. 그런데 어느 누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지만, 어느 누가 성령의 뜻대로 살 수 있겠는가? 하나님 법으로만 따진다면 인간은 한 사람도 살아날 수가 없는 것이다. 아까 위에서 말한 주일날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먼저 갔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 앞에 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 법으로만 따진다면 살아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해결해 주시고자 하여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신 것이다.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기독교인들의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긍휼이 여길 자는 긍휼이 여겨주시고, 또한 불쌍히 여길 자는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것이다. 만약 기독교인들 앞에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는다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법으로만 죄를 따져 물을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돌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왜 우리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았거든 기독교인들은 이제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만약 기독교인들 중에서, 기독교인들의 속사정을 하나님 앞에 아뢸 자가 있다면 굳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필요가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죄악이 가득해서 하나님 아들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속사정을 하나님 앞에 아뢸 자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의 아들(그리스도)이 아뢰는 말씀만 듣고 응답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아들이 되려면, 우리 마음속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로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기준이 없다. 예를 들어 어떤 교단이 자신의 교단은 정통이고, 상대방 교단을 이단이라고 주장할 때, 상대방 교단 쪽에서 보면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그쪽이 도리어 이단이고, 자신의 교단이 정통이라고 주장을 하게 된다. 인간의 이런 싸움은 끝이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의 판단으로 정통 교단과 이단을 나누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 쪽에서 보면 둘 다 하나님 뜻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어느 쪽도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느 쪽이 내가 보낸 아들을 믿고 나오느냐에 따라 진짜와 가짜로 나누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뜻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는 것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오늘날 제아무리 큰 교단에 속해 있고, 제아무리 큰 교회를 운영하고 있더라도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교회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큰 능력을 나타내서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려는 능력을 가졌더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1-23).

 

하나님께서는 법대로 인간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아들을 인간들 앞에 보내서, 인간들의 고충을 들어보고 불쌍히 여길 자는 불쌍히 여겨 구원에 이르게 하고, 긍휼이 여길 자는 긍휼히 여겨 구원에 이르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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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19-12-29 16:4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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