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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자들의 이야기

성령의 은사와 그리스도의 복음

성령의 은사와 그리스도의 복음

본문: 고린도전서13:1-13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천사를 심판하여 옥에 가두고 거기에 쓰임 받은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자, 당신의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를 입혀 보내 주실 것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예언해 주셨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당신의 백성을 만드시고 율법을 주시면서 따라 살도록 하신 것이다. 이는 하늘나라의 엄격한 위계질서로서 당신의 백성들을 법으로 통치하고 후에 법을 어긴 죄에서 건져내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인간들이 율법을 따라서 살지 못할 것을 미리 아시고 율법의 죄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이다. 죄 아래 가두어 놓는 다는 뜻은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은 죄인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야지 자신의 죽게 생긴 모습을 가지고 예수 앞으로 달려 나와서 해결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율법과 복음의 조화를 주신 것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해 줘야 하는데, 무엇이 죄악인지 기준을 잡아 마귀를 멸하고 귀신을 쫓아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율법으로 시작해서 복음으로 완성 시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합법이요 위계질서인 것이다. 따라서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육체에다 먼저 주시고 죄 아래 가둔 다음, 하나님아들 또한 육신을 입혀 율법을 범한 당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는 역할을 감당하신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백성들에게는 성령으로 법(영적인 율법)을 주시면서 마음으로 따라 살라고 하셨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역시 영적인 율법을 온전하게 따라서 살수가 없기에 성령을 거역한 죄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리스도의 영이 되셔서 영적인 백성들에게 도적같이 다시 오신 것이다. 따라서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도 먼저는 성령의 법아래 가둬놓고 죄를 깨닫게 하여 죄인을 만든 다음, 죄 아래서 신음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육체를 입은 예수는 육체에다가 율법을 받은 당신의 백성들을 구하러 오신 것이고,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영적인 백성들을 각각 구하러 오신 것이다.  이는 자기 백성을 자기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1) 하신 것처럼 말씀을 각각에 맞도록 이루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일에는 모든 이치와 질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성령의 법을 마음으로 따라서 살아야하는 영적인 백성들이 육체에다 율법을 받고 살아온 이스라엘의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마치 자신들이 마음속에서 짓는 영적인 죄까지도 사함 받으려 하고 있다또는 구원이라 여기고 확정을 짓는 것은 너무나 이치에 맞지 않는 어불성설이며 불법이 되는 것이다. 이는 영들의 세계에서 마귀와 귀신들까지도 더 잘 알기 때문에 이방 기독교인들이 부르는 예수의 이름으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있는 죽은 영’(귀신, 옛 자아)는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

 

율법을 육체에다 받은 이스라엘백성들은 율법을 어긴 즉시 모든 저주와 질병이 육체에 나타난다. 그래서 육체에 병이든 자들이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나 곤고하기 때문에 그 병에서 낫고자하여 예수 앞에 달려 나와서 병 고침을 받음과 동시에 율법을 범한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이방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백성들이기 때문에 성령의 법을 마음으로 따라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따라 살지 못한 연고로 인해 죄를 지을 때마다 악한 영들이 외부에서 들어와 정신적인 질병들을 갖다 주어 현재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영적인 질병들에 걸려있다. 정신적인 질병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없는 영적인 귀머거리와 죄에 대하여 감각 없이 화인 맞은 영적인 문둥병이나, 알고 있으면서도 움직이려고 하지 못하는 앉은뱅이 또는 우유부단과 이기심이 있고 또는 음란이나 자살충동 등이다.

 

율법 아래서 자신이 죄에 걸렸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방법은 자신이 병에 걸려 봐야 심각성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이런 방법을 쓰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 줬을 때 자신을 버리고 믿고 나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로 성령의 법을 주신 것은 성령을 인간들이 따라서 살수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죄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다. 그래야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을 때 자신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말로 살고 싶고 낫고 싶어 하는 자들을 하나님 아들 앞으로 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이다. 이로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도 성령 받은 것이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그것으로 먼저 영적인 율법이 되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 이방인 땅에 오시는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해결 받아 온전한 구원에 들어 갈수 있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을 때 우리가 영적인 죄와 병에 걸린 것을 낫기 위하여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처럼 자신들이 문제가 없다고 하는 자들은 믿지 않고 배척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은사와 이적과 표적을 주셔서 겉으로 드러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의 이름 안에는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가 있기 때문에 마귀를 멸하고 원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마귀가 떠난 자리에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영을 지배해 주시므로 하나님백성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 아래서는 아직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온전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타내 주시는 것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온전한 것 보다 우선적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표적이나 환상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사단이나 마귀를 표현할 때는 용이나 뱀 또는 큰 구렁이 같은 환상으로 보여준다. 천국과 지옥 또한 그래서 환상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래야지 법 아래서는 믿고 예언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면 물을 마시는 컵을 보여주면서 컵이라고 해야 컵인 줄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꼭 눈으로 컵을 보여주지 않고 말로만 하고 들어도 어느 용도에 어떻게 쓰이는 무슨 물건인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심중을 헤아릴 줄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만 들어도 진의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법 아래서 은사로 나타나는 표적과 이적과 기사와 환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 온전한 것이 아니다. 예언하는 것 또한 성령께서 알려 주는 대로 그때 그때 쓰임 받아 말을 전달할 뿐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그 사실을 직접 몸에 이루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교만하게 되면 은사는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이기 때문에 다시 회수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복음은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 자신(옛 자아)과 싸워 이겨서 자아가 죽고 없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만 남게 된다. 그러므로 말만하여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몸 안에 직접 이루게 되었으므로 모든 표적과 기사처럼 겉으로 화려하고 풍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즉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서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너희 마음 안에 있느니라(17:21)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앞에 오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한 것처럼, 그 사람의 눈과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그의 심정 알 수가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무의식속에서 툭! 하고 튀어 나오는 한마디가 그 사람의 본심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자신을 지키고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얻어내어 자기의 유익을 얻기 위한 포장일 뿐이다. 만약에 본심을 솔직하게 겉으로 드러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겸손과 미덕이라는 포장지로 포장하여 상대방을 속이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인간의 본심이 항상 자기중심적 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악한 영이 이용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이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상대방의 거짓과 진실을 찾아 낼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위장하는 악한 영을 몰아내고 그리스도께서 좌정하셔서 그를 지배하여 사람을 바꿔놓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이는 성령의 법 아래서는 성령이 아무리 충만해도 겉모양만 잠시 변화 시킬 뿐 보이지 않는 마음속까지는 완전하게 탈바꿈 시키지는 못한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어떤 영광보다도 한 영혼을 변화시켜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 다른 어떤 이적보다도 훨씬 더 큰 이적이 될 것이다.

 

따라서 본문 말씀처럼 법아래서 아무리 큰 능력이 나타나고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마음속에 그리스도가)이 없으면 소리만 요란한 울리는 괭가리만 될 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도 본문말씀을 인용하여 사랑을 표현 한답시고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밥을 퍼 주는 행위를 한다. 겉으로 보면 각박한 세상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이기적인 것 보다는 사랑을 표현한다. 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온전하게 거듭나기 전에 하는 행위는 온전한 사랑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육신의 소욕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상태에서 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작전과 칭찬과 댓가를 바라는 계산이 깔리지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온전한 사랑이 될 수가 없고 모두가 참고 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거듭난 온전한 사랑은 자신도 올챙이 적에 곤고하고 찌질하고 못난 자임을 인식하기 때문에 남을 비방하거나 없신여기지 못한다. 또한 죄로 인해 자신의 자아를 그리스도 앞에서 죽이고 없어 졌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아픈 심정을 헤아려서 나의 아픔으로 끌어안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문제처럼 기도하고 행동을 하기 때문에 어떤 댓가나 자랑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조차도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것들을 길이길이 참으시며 나 같은 죄인 만들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에게만 돌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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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사라

등록일
2023-12-01 07:26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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