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거듭난자들의 이야기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겠느냐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3:1-14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꾀이는 것을 보고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아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율법아래 살았던 유대인들처럼 성령을 받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구원 받은 것으로 알고 믿음에서 떨어져버리는 것을 보고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하며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방인들은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서 율법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율법을 거역한 죄가 없어서 예수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구원이 되지 않는다. 예수는 율법을 거역한 자기 백성들의 죄만 사해주러 오셨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해결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역할을 했던 사도바울이 죽자 그리스도의 사역은 끝이 났다. 그래서 예수 이름만 전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 이름만 전해져도 예수가 십자가에 피 흘려 주신것 때문에 성령이 온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죽었으면 예수가 다른 사람들 속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계속해서 구원을 시켜야지 왜 그렇게 되느냐고 할 것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늘나라의 위계질서를 모르기 때문에 절대 이해가 되지 않고 깨달을 수도 없다.

 

그러면 그때 당시 왜 사도바울 속에 예수를 모시게 해서 구원시켰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 구원을 시키지 않았다면 정통성이 무너져버린다. 다시 말하면 사도바울 속에 예수가 없고 성령만 받아서 사역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이방인 사도의 예표로 온 사도바울의 사역이 처음과 끝이 안 맞아 버리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사역을 했던 초창기에는 구원을 받는다. 사도바울 속에 있는 예수가 죄를 사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방인 인 갈라디아 교인들이 유대인들처럼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기도원이나 자기가 다니던 교회가 아닌 곳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자기가 목사보다 성령의 은사가 더 나타날 경우, 자기 교회 목사를 무시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갈라디아 교인들이 성령을 받자 이방인 인 자기들도 유대인들처럼 구원받았다고 생각을 해버린 것이다. 그때 당시는 사도바울을 끝까지 믿고 따라야 구원이 되는데 우리도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이라고 생각을 해버린 것이다. 그때 당시 사도바울이 예수를 전하고 있었고 예수 이름에는 피의 효력이 있어서 마귀발아래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원죄만 사해졌기 때문에 마음이 끝까지 사도바울을 향해 달려가야 된다. 우리의 만 해결이 된 것인데 이제는 바울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을 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본문에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하는 것이다. ‘적인 부분인 마음의 죄 곧 자기가 지은 자범죄 까지 해결 받아야 구원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고린도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여기 저기 다닐 수밖에 없게 된 것도 예수를 빨리 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 때문이다. 어떤 자들이 구원이 되느냐하면 디모데처럼 바울을 끝까지 쫓은 자만 구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내가 너를 복음으로 낳았다고 말하는 것이며 사도바울 속에 있는 예수가 디모데의 죄를 사해줬던 것이다.

 

이에 대한 성경의 근거는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께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았지만 한 명만 돌아오고 아홉 명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같이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았더라도 예수 앞에 돌아와서 감사로 돌리지 못하고 끝까지 믿지 못하면 중간에 탈락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성령이 금방 오는 것이 아니고 성령은 예수가 십자가에 흘린 피로 마귀발아래서 나오고 그 증거로 성령이 오시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죽기까지 끝까지 믿어야 구원이 되는 것이다.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했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와서 예수께 감사하고 끝까지 믿었어야 되는 것이다.

 

이런 원리와 똑같이 사도바울이 죽어버리자 죄를 사해주는 것도 끝이나버렸다. 이방인들을 다 죄 아래 가두기 위해서 사도바울의 죽음으로 예수를 빼버린 것이다. 사도바울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유대인 예수가 이방인 예수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방 기독교인들은 그때 부활하신 예수가 다시 가서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나라 법칙이자 위계질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방인에게 죄를 사해주려면 법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법이 없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의 법을 따라 살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인간의 영혼에 초점을 맞춰서 지어진 것으로 지성소, 성소, 마당이 있는데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서 인간의 을 뜻하고, 성소는 예수가 계시는 곳으로서 인간의 마음인 을 뜻하고, 마당은 인간의 육체를 뜻하며 마당은 씻는 곳으로서 우리 육체가 죄를 씻는 역할을 한다. 유대인들은 육체에 율법을 줬기 때문에 육체가 율법의 보호를 받는다. 육체가 그 법을 못 지켰을 때 죄가 마음()으로 치고 들어가는데 예수가 율법의 완성자로 왔기 때문에 마음으로 치고 들어간 죄를 사해주는 것이다. 치고 들어간 죄이기 때문에 해결해주시기가 쉽다. 그래서 네 죄를 사한다고 하는 것이고 귀신이 병을 도지게 했지만 치료하기가 쉬운 것이다. 네 침상을 들고 가라, 귀신아 나오라 하는 말씀들은 다 똑 같은 뜻으로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해주는 말씀들이다.

 

어둠속에서 태어난 아담의 후손들은 전부 죄인이다. 하나님이 아무 이유 없이 죄를 사해주면 불법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 법을 어긴 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죄를 사해주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마귀발아래 있기 때문에 완전하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와서 마귀의 시험에서 이겨내야만 유대인들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권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사십일을 굶주리게 했지만 마귀 말을 듣지 않게 성령이 이기게 해준 것이고 성령이 아니면 예수도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귀가 잠시 동안 물러갔다 하는 것이고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나야 마귀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다. 예수가 살아났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증거이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상태인가? 귀신이 그냥 들어와서 네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율법의 보호도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마귀를 멸하고 먼저 성령을 주는 것이다. 우리 마음 판을 해결하려면 율법의 보호도 없이 내 주인으로 나를 점령하고 있는 터주 대감을 몰아내야만 한다. 예수도 우리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말씀을 주고 네 자신과 싸워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네 속에 겨자씨를 떨어뜨려 주고 싸워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못 견디면 죽는다. 여기서도 끝까지 견뎌내는 자만 사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방인은 따로 사도바울 같은 자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가 와서 사역을 하게 된다. 여기서 다른 사람 속에 들어가면 되지 하겠지만 유대인에서 이방인에게 못 건너온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속의 죄를 사하고 이방인들 얼마를 건지고 사도바울을 거두신 것이다. 그러면 죄를 사해주는 예수 사역도 끝이 나고 예수 이름만 나가게 된다. 그래야 이방인들을 율법아래 가둘 수 있기 때문이다. 율법아래 가둘 수 있다는 말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이름을 부르면 성령이 오시는데 성령은 구원의 영이 아니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지켜야할 법으로 오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은 마귀가 장악하고 (마음)’은 귀신이 장악하고 은 세상하고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성령을 보내준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에 있는 죄로 인하여 다 넘어졌다. 그래서 이것을 해결해 주시려고 그리스도가 왔다. 그리스도가 이제는 죄만 사해줘서는 안되고 우리 속에 들어와야만 된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자아) 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으려면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와야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태어나자마자 율법의 보호를 받고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나는 자만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자신의 자아가 완전히 죽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 이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오지 않으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사도바울은 자기 속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육체로 마치겠느냐하는 말씀은 너희가 성령을 받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나를 끝까지 믿어야 내 속에 있는 그리스도가 죄를 사해줘서 영생에 이른다는 말이다. 끝까지 사도바울을 쫓아다녀야 하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적으로 캄캄한 이 시대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다. 다시 이방인에게도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 사도바울 같은 자를 통해 그리스도가 와서 이방인들을 건지는 사역을 하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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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마르다

등록일
2023-12-01 19:55
조회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