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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의 이야기

김한길 전 부인의 한많은 삶!


김한길 전 부인의 한많은 삶


이어령의 딸, 이민아의 ...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남자와 헤어졌다. 암(癌) 선고를 받는다.

다섯 살 아이는 특수자폐 판정을 받는다. 실명(失明) 위기가 닥친다.


가장 사랑했던 맏아들은 스물다섯 꽃 같은 나이에 돌연 사한다....


이토록 이민아(52)에게 시련은 일상이었다.

 첫 결혼 후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웃은 날보다


가슴 치며 운 날이 많았다. 그러나 이민아는 말한다.


“모든 시련과 고난이 내게는 축복이었다.”고.


  미국 LA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민아는

 '한국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이어령(李御寧)


초대 문화부 장관의 딸이다.


'저항의 문학' 이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

축소 지향의 일본인' 등 160권이 넘는 책을


펴내며 평생을 합리적 이성에 입각한 사유,


지적 작업에 매달려온 이어령 '교수'를 신(神)


앞에 무릎 꿇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무신론자, 이성주의자임을 자처하던 70대

노장이 2007년 개신교 목사에게 세례를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딸의 실명이었다.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이어령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 중에서).


자식의 고난 앞에서는 지성도, 과학도 힘을 잃는 걸까.

 기적은 과연 있는 걸까.


4년 전 버클리대학에 다니던 맏아들 유진을

 잃은 이민아는 2009년 목사안수를 받은 뒤 미국,


 아프리카, 남미, 중국 등지를 돌며 마약과


술에 빠진 청소년 구제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건강이 나빠져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는


그를 지난 4일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만났다.


검은색 투피스 차림의 그녀는 고(故) 하용조


 목사의 영결식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민아가 한 권의 책을 건넸다. '땅끝의 아이들'

(시냇가에 심은 나무). "고난의 시절에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사랑의 기적, 그 여정"이라고 말했다.


"내 안에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면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6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이민아 변호사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딸의 건강상태를 걱정한


어머니 강인숙 교수가 “제발 그만 끝내라”고 말리자


"난 괜찮아요. 하고 있던 말을 중간에 멈출


 순 없잖아요” 했다.


맏아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그녀의 모습은 평안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사랑해주세요.

그 사랑을 아이가 강렬히 느끼게


해주세요. 사랑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 만


있어도 아이들은 자살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기적


―왜 '땅끝의 아이들'인가.


" 술, 마약, 폭력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을 잃은 아이들,

그 아이들을 살려낼 방법을 몰라


절망에 빠진 부모들의 이야기다. 내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혼, 갑상선암, 아이의 자폐, 맏이의 죽음을


 겪으면서 절망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나 역시


땅끝의 아이였다. 그들이 참사랑, 새 생명을


 얻어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다."


  ―책 표지에 '간증집'이라고 적었다.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면 거부감이 생긴다.


 " 내가 변호사였다. 재판에선 증언을 한다.

증인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만 말할 수 있다.


'간증'이란 말은 나도 잘 모르겠고, 영어로


 테스티모니 (testimony),


그러니까 증언집이라고 하는 게 맞다.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수학공식, 혹은 약처방,


실용적인 지침 같은 것은 아니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건 사실이지만, 이 책을 읽고 절망에 빠져


 있는 단 한 사람, 한 가정만이라도 희망을


되찾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와의 인연이 깊다. 부친 이어령 교수도


하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내가 갑상선 암이 재발됐던 1996년,

하 목사님이 LA의 한 교회에 오셨다. 하나님 믿으면


복받는다고 해서 믿었는데 암이 재발되니 내가


좀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웃음) 그런데


설교 중에 하 목사님이 자기도 아프다고 하시더라.


 얼마나 아프면 강대상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설교를 하셨다.


그렇게 아픈 지 30년이라더라. ' 목사도 아픈가?'

 하면서 쳐다봤다.


그런데 그 얼굴에 평안과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자신이 갖고 있던 사랑의 에너지,


그 마지막 한 방울까지 세상에 쏟아 붓고 가신 분이다."


  ―장례식 때 많이 울었겠다.


"4 년 전 내 아들 유진이를 하늘나라에 보내던

 날 마지막으로 울었고, 그 이후로는 어떤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는다.


육신의 껍데기를 벗었을 뿐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신 건데 울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내 아들 유진이의 묘비명도


'Resting in His Father's house'


(아버지의 집에서 쉬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 어떻게 울지 않나.


"'나니아 연대기'를 쓴 영국 작가 C.S 루이스는

'바다의 파도 끝에 물이 잠깐 멈추는


 순간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맏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한 자기

 위안으로 들린다.


"지금도 내 아들이 죽은 원인을 모른다.

감기 걸린 것 같다더니 그대로 쓰러졌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1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1 년 동안 매일 울면서 신을 원망했다.

그렇게 원망 가득한 마음으로 유진이


또래의 비행청소년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가게 됐다.


떠밀리듯 그 아이들을 만났다. 신기한 것은


그 아이들을 유진이를 사랑했던 마음으로


돌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검사, 변호사로 일하면서 청소년

 문제 상담활동을 열심히 해왔지만 '내 아이'와


'다른 아이'를 가르는 벽이 내 마음에 있었다.


유진이가 죽은 뒤 그 벽이 사라진 거다.


아이들을 엄마의 사랑으로 품어주었더니


 변하기 시작하더라.


술과 마약을 끊고 부모에게 돌아가더라.

서른 명의 아이들이 나를 '마마미아'로 불렀다.


유진이가 그리워 내가 울면 아이들이


나를 안고 기도해줬다.


유진이의 죽음이 한 알의 밀알로 내 가슴에


 떨어져 이기적이었던 나를 세상의 어머니로


 거듭나게 했다."


  ―그렇다고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유진이는 죽지 않았다. 아이들을 통해 나는

매일 유진이를 만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의 비밀이 그 속에 있다."


  ◆ 이어령의 딸


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 이어령 교수,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의 1녀2남 중


맏이로 태어난 이민아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3년 만에 조기 졸업한 수재였다.


그런 그가 1981년 졸업하자마자 무명의

청년작가 김한길(전 문화부 장관


현 민주당 대표)과 미국으로 떠났다.


걱정하는 부모의 눈길도 뿌리친 채 정말


자신을 사랑해줄 남자와 새로운 삶을 꿈꿨다.


이 민아는 자신의 청소년기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오늘 눈을 감고 아침에 안 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삶은 어딘가 딴 곳에 있고, 완전히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에 맞춰가면서


가상의 인간으로 살고 있는 듯한 회의에 빠졌다….’

(‘땅끝의 아이들’ 중에서)


  ―‘이어령의 딸’로 사느라 진짜 이민아의

삶을 살지 못했다고 썼더라.


집안 망신 안 시키려고 공부했다고 썼다.

부모에게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버지


서재에 숨어들어가 술을 마셨던 얘기도 나온다.


이어령, 강인숙 교수로서는 꽤 당황스러울 것 같다.


“아버지가 이 책의 원고를 가장 먼저 봐주셨다

. ‘괜찮다’고 하시더라.


(웃음) 잘 읽어보면 부모님을 원망하는


 내용이 아니다.


10대의 굴절된 렌즈를 통해 부모를 바라봤던


나의 이야기이고, 동시에 그 시기 아이들의


눈에 어른들이 어떻게 보여지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나의 부모님은 한국 부모로서 거의 완벽한

분들이었다. 문제는 사랑에 대한 어른과 아이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작가, 교수, 논설위원 등 3개


이상의 직함을 가지고 살며 늘 바쁜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나는 그 팔에 매달려 사랑 받고


 싶은 딸이었는데,


배고프고 피곤한 아버지는‘밥 좀 먹자’ 하면서


 나를 밀쳐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복한 집안에서 밥 굶지 않고 자란 아이의

 배부른 푸념으로 들릴 수 있다.


  “사소한 어긋남에서 부모와 자녀의 단절이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다.


부모의 사랑 방식을 알지 못한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또한 부모와


엄청난 단절과 갈등을 겪는다.”


  ―‘아버지’ 이어령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아는 사람 중 자기 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아버지가


참 좋았다. 존경스러운 게 아니라 그냥 좋았다.


일에 대한 무한한 열정이 있었고, 돈을 많이


 벌려고 일을 하신 적이 없다.


창조, 새로운 지식을 알고 배우는 것,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하셨다.”


  ―아버지의 외모를 많이 닮았다.


  “둘 다 완벽주의자다. 아버지처럼 문학을 했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책도 엄청나게 읽는다. 토씨 하나 잘못된 문장을


 견뎌내지 못했다.(웃음)”


  ―어머니 강인숙 교수는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영인문학관 관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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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08-27 16:54
조회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