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너는 내게 부르 짖으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무엇이 부족하거나, 전혀 흠이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하여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지라도 그들을 그냥 버려두는 것이 아니고, 때가 차면 그들을 다시 포로생활에서 귀환 시킨다는 것이다. 귀환을 기다리는 포로들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 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그 일을 속히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때 이루어지는 귀환은 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것의 삶이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3절에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크고 비밀한 일이 무엇일까? 이것은 아직까지 한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맛보지 못했던 삶이 주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 해답이 오늘 본문1-26절까지의 말씀 속에 다 들어 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는 분명히 하나님은혜로 말미암아 신앙생활이 시작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자기들 생각대로 살다가 범죄 하여, 그 죄의 대가로 바벨론에 포로로 팔려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 포로생활을 하는 그들에게 이제 회복시켜 줄 테니 “네게 부르짖으라.” 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가 처음에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하면,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받아들이고, 그가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성령으로 확증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이 된 사람은 그날부터 자기 속에 계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자기들의 옛 구습을 좇아서 살게 된다. 이렇게 될 때,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범한 그 사람을,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자 바벨론에 포로로 보냈듯이’ 어느 일정기간동안 사단 손에 붙여서 그로 하여금 죄악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죄악을 감당하는 사람은 육신의 고통이 따른다. 그런 후에 그 사람도 사단 손에서 풀어놓아서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부르짖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응답 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그 사람도 회복 시켜주시는데, 예전의 그 모습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삶으로의 회복이라는 것이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시는가? 그것은 로마서11:32절에서 잘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사도 바울도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라고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은 모든 사람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때가 때인 만큼 나의 죄악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다시 한번 주님의 긍휼을 힘입어야 한다. 야고보서 5:7절에도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 고했듯이, 처음에 주님의 은혜로 시작한 신앙생활이 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범죄 하여 사단 손에 팔렸다가 이제 다시 회복시켜주시겠다는 주님의 은혜를 결코 헛되이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다시 한번 늦은 비를 내려 주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라는 말씀대로 부르짖어 주님에게 은혜를 구하자! 주님은 부르짖는 자에게는 반듯이 응답 하실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느 크리스천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이 사형수와 비교하여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깨닫도록 하자!

이 글은 어느 크리스천 변호사가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나는 공직에 있었을 때 사형 집행 장을 참관한 적이 있다.

그날 사형 집행을 당하는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강취한 살인 강도범이었다. 교도소장이 그 사형수에게 물었다. “귀하는 살인강도 죄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도 사형을 선고 받고 대법원에 상고 하였으나, 대 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 되었고, 오늘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의하여 형을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습니까?”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만약 사면권자가 저 사형수를 특별 사면하여 사형집행을 면제하고 살려준다면, 저 사형수는 평생 무엇을 위해 살겠는가? 자기를 살려준 사람에게 감사하며, 평생 그를 위해 살지 않겠는가? 사면권자가 아무리 궂은일을 시킨다 한들 그가 그 일을 마다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깨우치시는 것 같았다.

“동수야! 저 사형집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형수가 누구인지 아느냐?”

가만 보니 바로 내가 저 사형수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누구였나?” “죄로 말미암아 사형 선고를 받았던 자가 아니었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였으니 나는 죄 때문에 영원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안인가? 나도 사형의 집행만을 남겨둔 사람 안이던가? 내 영혼이 지옥으로 가는 날이 사형 집행을 당하는 날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사형 집행만을 남겨둔 나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그로부터 나를 사면해 주셨다. 그것도 말로써 사형집행을 면제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내가 받을 사형 집행을 대신 받게 하시고 나를 사면해 주신 것이 아닌가?”

이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감사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기도 했다. 주님, 나 같은 죄인을 사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평생을 나를 사면해 주신 주님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아무 일이나 시켜 주십시오. 마다하지 않고 감사하며 감당하겠습니다.” 나는 지옥으로 갈 인생이었는데, 내 대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어 주시고 그 대가로 나는 특별사면을 받은 자입니다. “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후로 이변호사는 신앙관이 크게 달라져서 변호사로서 뿐만 아니라 주님의 복음사업에도 크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되어 지금도 전 세계를 누비며 일하고 있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 하게 하려 함이니라”(엡2:8-9) 그렀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형에서 사면되었습니다. 이제 내가 누구를 위해서 살아 갈 것인가를 우리는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또 다시 ‘주 예수’의 은혜를 망각하게 된다면 그에게는 오직 심판만 있을 뿐이다.

공유하기
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2-04-09 10:07
조회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