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겉 다르고 속 다른 기독교인들의 모습!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고린도후서4:16-18

제목: 겉 다르고 속 다른 기독교인들의 모습!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6-18).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은,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음흉한 짓을 다하고 있는 것을 두고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말한다. 좋은 예로 결혼을 앞둔 처녀 총각이 첫선을 보는 날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서 각자가 아침밥도 굶고 만나게 되었다. 점심때가 되어 맛있는 음식이 나왔지만 서로가 체면 차리느냐 먹지를 못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배고파 죽겠는데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내숭 떤다고 하는데 전형적인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이다. 

 

부부간에도 속으로는 서로가 미워 죽겠는데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며 살아 가는 것이다. 만약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표출하고 살다가는 하루도 못살고 헤어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 결혼해서 살다가 헤어지는 사람들의 이혼사유를 들어보면 서로가 성격이 맞지 않아서 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실상은 속으로 상대방을 서로 미워하기 때문에 헤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 말로는 성격이 맞지 않아서 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을 털어놓지 않는 이유는, 나쁜 사람 되기 싫어서 자기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시어른들 앞에서는 벙어리 삼년, 귀먹어리 삼년, 소경으로 삼년을 살아야 된다고 가르쳤다. 이는 할 말이 있어도 말하지 말아야 하고, 들은 것이 있어도 못 들은 척해야 하며, 눈으로 본 것이 있어도 못 본 척하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참고 살다 보니 마음속에 화가 쌓이게 되고, 그것이 나중에는 병으로 발전되어 죽을 고생을 하게 된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한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속으로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암 같은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 이유는 자기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이라는 죄악이 쌓이기 때문에 속에서 병이 생기는 것이다. 똥과 똥파리가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듯이, 죄와 귀신의 관계 또한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똥파리가 똥을 먹고 살듯이, 귀신은 인간의 죄악을 먹고 산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네 죄를 사하노라!' '귀신아 거기서 나오너라' 하는 말은 모두 동격으로 같은 말이다. 


인간이 속으로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게 되면, 그것이 죄가 되기 때문에 즉시 인간의 마음속에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들어와서 죄를 행동으로 옮기도록 부추긴다. 오늘날 날이 갈수록 흉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이유는 더러운 귀신이 악한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범죄를 저지르도록 종용하기 때문이다. 악이 관영하던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께서 불로 태워 버렸듯이, 오늘날에도 악이 관영해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불로 태워버릴 것이다. 처음에 인간이 악할 때는 홍수로 쓸어버렸지만, 이제는 인간이 너무도 악하기 때문에 불로 태워버리는 것이다    


예수께서 형제를 미워만 해도 살인이라고 말씀하셨던 이유는, 인간이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게 되면 귀신이 들어와서 살인을 종용하기 때문에, 미워만 해도 살인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귀신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온갖 죄를 짓게 하는 영적인 존재로서 악한 마음을 품게 되면 공중을 떠도는 귀신을 불러 들이게 된다. 좋은 예로 음란물을 보게 되면 음란 귀신이 들어가서 성욕을 발동시킨다. 이때 그것을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면 성범죄를 일으키게 된다. 이런 악한 영들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온갖 죄를 짓도록 종용하기 때문에, 오늘날 흉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두고 우리는 이중 인격 자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겉모습이 흰색이라면 인간의 속마음은 완전히 검은색이다. 그래서 인간이 겉으로는 착한 척하지만, 속에는 온갖 죄를 짓게 하는 더러운 귀신이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자신의 악한 모습이 밖으로 들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은 누구나 겉으로 착한 척하며 사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이런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받았어도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죽은 영)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런 더러운 귀신들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는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바울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냐?'며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마지막은 육치로 마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두고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소경 된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23:25-26). 당시 바리새인들 역시 겉만 깨끗이 하면 의롭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 속에는 탐욕과 음탕함이 가득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믿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23:27-28). 예수께서 바리새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을 지적해주는데도,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가 하는 말을 자신들을 야단치는 소리로만 들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이 악한 자들은 자신을 깨닫게 해주는 말씀을 자신을 야단치는 소리로 듣는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는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어도 깨닫지 못한다.  

 

예수는 죄인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악마(죄악)의 모습을 발견했더라면, 그들도 예수를 쉽게 믿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회칠한 무덤처럼 겉만 깨끗이 하면 의롭게 되는 줄 알고 자꾸만 겉만 치장하고 단장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기보다 못한 자들 즉 육체가 병들거나 세리와 창기 같은 자들을 더럽다며 상종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육체가 병든 자들과 자기 동족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던 세리와 창기들이 예수를 믿고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 갔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성령으로 구원을 받았다며 우쭐되고 있다그렇다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또한 모두 사라지고 없어야 한다. 인간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말은, 인간의 영(靈)은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인간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인간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지배를 받게 되면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모두 해결 되기 때문에, 그때야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면, 기독교인들은 겉과 속이 똑같아야 한다. 다시 말해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그 이유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말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던 가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말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겉과 속이 달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인들은 겉과 속이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겉만 조금 달라졌을 뿐, 속 사람은 여전히 옛날 그대로이다. 다시 말해 성령을 받아 겉만 번지르르 할 뿐 속 사람은 예전 모습 그대로 있다.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는데 왜 속 사람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인간의 육체를 입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가 없다. 따라서 성령은 인간의 머리 위에 머물며 인간의 영()만 지배하신다. 예수도 '요한의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셨다'(마3:16)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성령이 예수 마음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예수 머리 위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말이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이 받은 성령 또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머리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것으로는 기독교인들의 속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속 사람이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말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곧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이 처음 지음 받았을 때는 죄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으나,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자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죄인과 함께 할 수 없으므로 인간 곁을 떠나게 되었다. 하나님이 떠난 그 자리를 마귀가 꿰차고 들어와 인간의 영()을 지배하게 되었다. 마귀가 인간의 영을 지배하게 되자, 인간의 혼() 또한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다. 그러자 귀신(죽은 영)이 인간의 마음을 장악하고 주인 노릇을 하게 되었다.

 

마귀와 귀신의 지배를 받고 살던 인간이 예수를 믿게 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세상 임금인 마귀를 멸하게 된다. 죄 없는 예수를 죽인 마귀가 세상 임금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자 더 이상 마귀도 인간의 영()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마귀가 떠난 그 자리를 성령이 오셔서 인간의 영()을 다시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나 모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똑같이 성령을 받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어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귀신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유대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던 귀신을 쫓아내야 온전케 될 수 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귀신은 부활하신 예수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셔서 쫓아주셔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온전케 되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은 누구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있는 분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 한 분 뿐이다. 예수가 육체로 계실 때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에는 예수도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맨 처음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신 사건이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신 일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울을 택하였던 것은,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해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차 기독교인들 앞에 바울 같은 자를 통해 다시 가겠다는 것을 미리 예고에 주시고 있는 것이다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부활하신 예수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고 나자 180도로 달라져 천국 복음을 전하고 다녔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비로소 바울처럼 180도로 달라져 천국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이 전하는 복음은 천국 복음이 아니다.

 

이에 따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은 천국 복음이 아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전하는 복음은 불신자들에게 예수 이름을 전해서 성령을 받게 한 다음, 하나님 백성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천국 복음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권세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전하는 자의 마음속에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해 줄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은 천국 복음이 아니라는 말에 기독교인들이 동의할 수 없다며 얼굴을 붉히겠지만,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역할을 할 뿐,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 중에 성령을 받아서 속 사람까지 변화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내가 주장하는 말이 틀릴 수 있다. 그러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성령으로 속  사람까지 변화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오늘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의 겉과 속이 다른 이유가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분열을 거듭하며 나누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만 하더라도 약 200개의 교단이 난립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다 보니 각자가 자기 생각(죽은 영)을 따라 각각의 교단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 역시 예수가 오시기 전에는 여러 계파로 나뉘어서  하나님 앞에 예배(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유대인들 앞에 오신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앞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역시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겉만 깨끗이 하면 의롭게 되는 줄 알고 예수를 배척하다가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겉만 번지르르 할 뿐, 속은 죄로 말미암아 썩어 냄새가 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자꾸만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며 겉만 포장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할 것이 분명 하므로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겉과 속이 똑같아지려면,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한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귀신)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한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비로소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죄에서 자유케 되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죄에서 자유케 되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바리새인들처럼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다가 필경은 멸망으로 가고 말게 된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공유하기
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4-03-24 13:37
조회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