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기독교인들의 이야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있지 않다.

질문자: 예수님의 눈물


 


지옥소리 중에서...율법에  빠진 신앙은 ..사망과 저주라고  하고, 많은 교회 목사님들이  율법주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율법에  빠졌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이예요?  율법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 것이예요?  자세히  쉽게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헷갈립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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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 박노아


 


닉네임을 enynai로 소개한 목사의 설교문 한편으로 답변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긴 설교문이지만, 집중하여 정독하시면, <예수님 눈물>님의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의 감화감동을 받은  enynai 목사께서 아주 이해하기 쉽게 잘 강론하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율법과 복음의 차이점을 발견하신다면 율법주의자와 복음주의자를 분별케 되실 것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설교문 스크랩]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신명기 30:15-20절을 보면,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에 대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이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그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우리가 보고 있는가? 하면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생명을 얻게하기 위해서 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세상에서 자기 육체의 복을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져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으로 인하여 복을 받기를 바랐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들을 통해서 더 많은 복을 받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잘 모르고 자기 신앙에 매여 쫒아가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그저 교회에 나오면 예수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행위로 안 믿은 것이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친 백성이라는 것을 늘 자랑하고 있었고, 또한 자부심도 대단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안 믿었습니다. 자기들은 믿었다고 주장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안 믿었다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들만 안 믿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 역시도 안 믿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안 믿었어도 자기들은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것을 모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소경 되어서 성경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소경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다 종교적으로 빠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동시에,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행위의 종교이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오직 믿음이라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다 보니까 이 세상의 종교적인 행위를 따라 행하고 있고 그것을 표적으로 삼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행위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믿음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종교인이지,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종교로 빠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성도로서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그랬듯이, 믿음이 있는 성도는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셨을 때도, 이스라엘은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부를 하면서 살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믿음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보고도 영접을 할 수 없었습니다. 역시,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스라엘과 같이 행위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고 자신들이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행위가 나빠서 들어가지를 못했습니까? 아니면,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하고 있는 십일조를 못 내고 또 주일을 잘 지키지 않아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십계명을 잘 지키지 못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 했습니까?


 


시편 78:21-22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연고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구원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은 연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시대 역시 다수의 사람이 교회라는 광야에 나와 있지만, 그 다수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출애굽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안 믿었습니까? 그 당시 최대의 강대국인 애굽에서 자기들을 인도해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또,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해서 광야로 나왔고, 하나님이 자기들을 인도하지 않는다면 자기 민족이 다른 민족에 의해서 몰살 당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분명하게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위였습니다.


 


믿는다고 했지만, 마음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 행위로 믿으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따라 그것들을 보면서 자기들이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키는 그것을 보면서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들의 행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일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했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사람들은 교회의 성장을 보면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교회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보면서도 오히려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보는 것으로 믿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을 명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행한 일을 보고 내가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내 행위를 보고 내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한 일을 보고 내가 마음으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행한 것을 보고 마음으로 믿으려 하고 있습니다. 엄격하게 말씀드리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른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런 종교적인 행위를 보면서 자기들이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되어 있는데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생명을 얻을 수 없는데도 이 시대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에 어떤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오직 믿음이라는 이 말씀을 흔들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 믿음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믿음과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의 상식으로 조금만 생각을 해도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이미 믿음이 무엇이라고 배운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믿음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태평하기만 합니다.


 


아니, 이스라엘은 지혜가 없어서 광야에서 죽었지만 자기들은 지혜가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너무도 태연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는가?를 생각하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신만만해 하면서, 그들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고 그들과 나는 똑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그들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지금 나 역시도 똑같은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광야에서 모두 죽게 됩니다. 성경은 진행형 입니다. 이스라엘이 했던 실수를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기독인만이 자기를 늘 살펴서 내가 믿음에 서 있는가?를 확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교회 안에 있는 그것으로 마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안 믿고 있다는 것을 가정 하에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안 믿었지만, 우리는 지금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그들은 육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인 교회시대는 영입니다. 구약의 그들이 육으로 실수한 것을 보면서 이 시대 내가 그것을 육으로 하지 않았다고 이스라엘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육으로 실수를 한 것은 이 시대 대부분의 교회가 영으로 실수를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왜 안 믿었는가?를 알면 내가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에게 차별없이, 값없이 생명(영생)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아주 적었습니다. 또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역시나 그들은 아주 쉽게 타락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들이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영적으로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자기를 지킬 수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율법을 반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게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제가 자주 말씀을 드리지만..성경은 우리의 육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약을 보면서 오해를 잘 합니다. 이스라엘의 육을 보면서, 마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육에 대한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 대부분의 기독인들이 구약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사실 불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이 시대 신약교회를 살펴 보십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가라는 말 빼놓고는 거의 불교나 비슷하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한국의 3대 종교가 있는데, 그 종교가 거의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믿는 대상이 다를 뿐이지, 말하는 것이나 기도를 하는 것이나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교를 한번 가 보시기 바랍니다. 또 이단들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이단이나 지금의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교회나.. 별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신학에서 배운 교리적인 것만 다르지, 사실은 거의 똑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정통이라는 간판을 내 걸면 마치 천국을 보장해 주는 것 같이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단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들이 이단들과 솔직히 무엇이 다르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단들은 특정한 인물을 내 세워서 우상화 하는 사이비단체인데 이러한 구조와는 확연하게 구분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단이라고 정죄받고 있는 거짓된 교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교회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기복주의를 주창합니다. 동시에, 대다수가 은사주의를 추구합니다. 어느 특정한 인물을 우상화 하는 이단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범주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영분별을 해야만 합니다.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가 율법주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또, 기복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고, 은사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다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이 말씀 때문에, 거의 많은 교회가 기복주의에 빠져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생명과 복! 마치 이 세상에서의 생명과 복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이 말씀으로 인하여 예수를 믿으면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지금 그런 말씀을 기록해 놓으신 것일까요. 이 세상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물론, 이스라엘에게는 그렇게 말씀을 했을 수 있지만 구약은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받은 복은 우리가 천국에서 받을 복을 예표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말씀은 이 세상의 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교회와 기독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들 합니까?


예수를 잘 믿으면서 율법을 잘 지키면 이 세상에서 많은 복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가 그렇다고 보면 맞습니다. 이 세상의 육적인 복과 연결을 시킴으로 해서, 정말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 것 같이 생각을 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행하지 않으면 화를 당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지 않으면 화를 당한다고 말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율법을 잘 못 지켜서 화를 당할 것 같으면 벌써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복과 화를 말씀하고 있으니까,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율법을 잘 지키지 않으면 화를 당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십일조를 내면 복을 받고, 십일조를 안 내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도 빼앗아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성경을 그렇게 보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십일조를 내면 복을 받고 십일조를 안 내면 화가 있어서 반드시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네 믿음대로 되는데 잘못 알고 믿고 있으니까 그 믿음대로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안 내면 화가 있다는 말은 율법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범하면 화가 있다는 말씀이고, 그것은 자기가 사망을 당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새번역입니다.  “보십시오! 내가 오늘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을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이 세상의 생명과 사망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서 생명과 죽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반포한 후, 이 율법으로 인하여 생명과 죽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생명은 가나안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는 천국을 예표하는 곳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모세를 통해 모든 율법과 규례를 반포하고 난 후에, 이스라엘 앞에 생명과 죽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어 살 수 있는 것과 그리고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이 세상의 복과 화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영생 천국 얻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죽음이 임하는 것은 지옥 형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말로,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입니까? 신명기에서 분명히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저 막연하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그저 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5:3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바로 요한일서에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거운 계명이 있고 무겁지 않은 계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계명이 무엇이고 무겁지 않는 계명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무거운 계명은 율법을 말씀하고 있고, 무겁지 않은 계명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믿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계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말씀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무거운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를 믿을 수 있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이미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아니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것이 무슨 말씀인 줄을 깨닫지 못했고, 이 시대 역시 신명기를 보면서 거의 대다수가 이스라엘과 같이 육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애매하고 막연한 것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성경을 잘못 보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그랬고 이 시대 역시 믿음을 모르다 보니까, 그저 육체에 빠져 성경을 보면서도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길로 행하라!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모든 길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말로는 예수를 외치고 있지만, 용두사미 식으로 말씀에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말하다가도, 뒤에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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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08-2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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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댓글 1

bansuk
2023-08-27 17:00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으로 말미암아야 합니다. 그외에 다른 이로는 구원이 없습니다. 따라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어야 구원이고,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사는 영적인 백성인, 기독교인들은 영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고 구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고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원죄를 사함 사함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통해서 원죄 한가지만 해결 받은 것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마지막에 영적으로 오시는 주님을 믿고,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아야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받은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또 다시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따라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살지 못하기 때문에, 또 다시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법아래 갇히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법아래 갇힌 기독교인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늘에 오르셨던 예수께서 사람을 통해서 영으로 다시 오시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영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비로소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란 영적인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통해 자복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영적으로 오신 주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혼자서 한 회개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으며 회개를 해도 주님 앞에서 회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영으로 사람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이방인들 앞에 직접 오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회개를 외쳐도 그들의 죄가 그대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유는, 주님만이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는 권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회개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아무리 회개를 외쳐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이제부터라도 영적으로 오신 주님앞에서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앞에서 회개하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던 간에 모든 죄를 사함받게 됩니다. 그리고 온전케 되어 영생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성령으로부터 쓰임받는 종들이 여기저기서 회개를 외치는 것은, 이제 영적인 주님이 더욱더 우리들 앞에 가까이 다고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마지막에 영적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는 것이 일생 일대에 최고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눈과 귀가 있어도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자들이 가장한 불행한 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