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교 대부, 여교역자 상습 성추행 의혹 | ||
요한동경교회 김규동 목사, 사역은 내려놓지만 혐의는 모두 부인 |
일본 유일의 메가 처치, 도쿄 신주쿠에 있는 요한동경기독교회(요한동경교회)는 매주 한국인 2000여 명, 일본인 1000여 명, 중국인 700여 명이 모인다. 일본 열도 50여 곳에 요한교회라는 이름의 지교회가 있다. 기독교인 비율이 0.4%밖에 되지 않는 척박한 땅, 한 교회에 교인이 40~50명만 되도 꽤 많은 축에 속하는 현지 상황에 비춰 볼 때, 요한동경교회는 한 일본 목회자의 말마따나 '괴물 같은 교회'다.
요한동경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규동 목사는 일본 교계에서는 전설 같은 존재다. 29년 동안 사역하며 열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회를 만들어서만은 아니다. 김 목사는 1998년 5월 일본 극좌 세력에게 테러를 당했다. 무차별한 폭행으로 양 다리와 팔이 모두 부러지고 광대뼈가 으스러졌다. 오른팔에는 칼을 맞았다. 죽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김 목사는 살아났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살아 있는 순교자'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사람들은 요한교회의 승승장구를 보며 '일본 선교의 가능성을 본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한교회의 공격적인 선교와,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이유로 3년 전 '요한동경교회 피해자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도 생겼다. 일본의 많은 교회들도 요한교회를 경계하고 있다. 김 목사가 테러를 당한 것도 무례한 선교 방법을 고수해 일본 극좌 세력들을 자극한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안마해 달라며 집·목양실로 불러…추행 거절하면 폭행
▲ 일본 최대 규모의 교회, 요한동경교회 김규동 목사가 여사역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요한동경교회 사역자 출신인 세 여성은, 김 목사가 집이나 목양실로 불러 마사지를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몸을 더듬었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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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말이 많지만 김규동 목사가 일본에서 일가를 이룬 것은 사실이다. 일본 사회에서 요한동경교회의 과격한 전도 방식과 절대 충성의 문화는 광신적 숭배를 뜻하는 '컬트(cult)'로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목사가 노방 전도를 중요시하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출신이라는 점과 요한교회 조직이 CCC의 '순' 체제를 적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식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일본 선교에 대한 열정은 뜨겁다'는 정도로 용인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요한동경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일본 선교에 헌신하는 청년들이 계속 나왔다.
그런데 올해 6월, 김규동 목사가 수년에 걸쳐 여러 차례 여교역자들을 성추행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직접 성추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은 사람이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2000년대에 요한동경교회에서 사역자로 헌신했고, 지금은 교회를 나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짧게는 8년에서 길게는 11년까지 요한동경교회에 다니면서 20대 청년 시절을 일본 선교에 바친 사람들이었다.
<뉴스앤조이>는 김규동 목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A, B, C를 직접 만났다. 이들은 김 목사가 전화로 자신의 집이나 목양실로 불러 마사지를 시켰다고 했다. 김 목사가 새벽에도 수차례 불러냈다고 말했다. 다음은 피해 여성들이 기자와 대화에서 토로한 내용이다.
A는 2002년 도쿄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요한동경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일본 선교에 헌신했다. 이후 A는 요한동경교회 자체 헌신자 프로그램인 JMTS(선교신학원) 과정을 이수하고, 간사를 거쳐 2012년까지 전도사로 사역했다.
김 목사가 A에게 마사지를 부탁한 건 2010년 여름부터였다. 김 목사는 A에게 전화해 집으로, 목양실로 와 달라고 했다. A는 김 목사가 누워 있는 상태에서 그의 어깨와 다리를 주물렀다. 3년에 걸쳐 10회 정도 안마를 했다. 처음에 얌전히 마사지만 받던 김 목사는 점점 A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2010년 일본 코스타를 며칠 앞둔 시점에는, A를 교회 옥상 자재 창고로 불러내 억지로 성관계를 시도하기도 했다.
B는 2002년 워킹 홀리데이로 일본에 갔다가 요한동경교회를 다니게 됐다. 역시 요한동경교회에서 뜨거운 신앙을 경험하고 일본 선교에 헌신하기로 했다. 2006년 JMTS에 입학해 2009년까지 간사로 사역했다.
김규동 목사는 2006년부터 B를 불러 마사지를 받았다. B는 2009년까지 10번 정도 김 목사를 안마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처음에 어깨와 팔다리에 기본적인 안마만 받다가, 점점 무리한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전립선 마사지가 필요하다며 속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안마해 달라고 했다. 김 목사는 거부하는 B를 폭행한 후, 우는 B를 달래면서도 "바지를 벗으라"고 말하기도 했다.
C는 2000년부터 요한동경교회에 출석했고, 2002년 일본 코스타에서 은혜를 받아 일본 선교에 헌신했다. JMTS 과정을 이수하고 간사로 2009년까지 사역했다.
C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김규동 목사를 안마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어깨와 다리만 주무르다가, 나중에는 배와 성기 쪽에도 마사지할 것을 요구받았다. 김 목사는 C의 귓불을 만지며 그에게 침대에 누웠다 가라고 몇 차례 말했다. 누워 있는 C에게 배를 만져 봐도 되느냐 물으며 배를 만지다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C는 김 목사의 손을 뿌리쳤다.
이들은 하나같이 김규동 목사가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때렸다고 말했다. 전립선 마사지나 성관계를 거절하면 김 목사가 주먹질과 발길질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요한동경교회 내 여성 사역자들의 리더 격인 이 아무개와 김 아무개 선교사에게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들도 김 목사의 손에서 피해자들을 지켜 주지 못했다.
부교역자들, "김 목사 타격 입으면 복음 전파 어려워진다"
세 여성들의 피해 소식을 들은 후, <뉴스앤조이>는 7월 21일부터 김규동 목사와 연락을 시도했다. 김 목사에게 공문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해명을 듣기 원한다고 했다. 몇 번의 연락 끝에 7월 28일 요한동경교회에서 김 목사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는 며칠 동안, 요한교회 부교역자들은 피해 여성들에게 접근했다. 위에서 언급한 이 아무개 선교사는 피해자에게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사를 피력했다. 김 아무개 선교사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서 사역하는 요한동경교회 출신 홍 아무개 목사와 함께 피해자의 남편이 사역하는 교회로 찾아가 언론 보도를 막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렇지 않으면 법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했다.
부교역자들은 김규동 목사가 벌인 일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용서하라"고 말했다. 그들은 '일본 선교'라는 대의를 내세웠다. 요한동경교회가 타격을 받으면 일본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주춤해진다는 논리를 폈다. 또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라며 "네가 받은 상처만큼 교회에 모든 이가 상처받고, 네가 실족한 만큼 그들도 낙심하면 흡족하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홍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김 목사가 진정으로 사과할 수 있도록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피해자들에게 연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 목사 스스로도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이번 일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면 연약한 교인들이 시험에 들까 봐, 자신은 목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피해자들을 찾아간 것이라고 했다. 회유하거나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했다.
김규동 목사, "책임은 지지만 성추행은 '오해'"
▲ <뉴스앤조이>는 7월 28일 요한동경교회에서 김규동 목사와 교회 관계자들을 만났다. 김 목사는 모든 책임을 지고 사역을 내려놓겠다고 했으나, 상습적인 성추행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오른쪽부터 김규동 목사, 아내 김 아무개 씨, 이 아무개 장로, 이 아무개 선교사.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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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약속대로 요한동경교회에서 김규동 목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김 목사와 아내 김아무개 씨, 이 아무개 선교사, 이 아무개 장로가 동석했다. 김 목사는 성추행 사실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미쳤었나 보다"며 입을 뗐다. 그는 책임을 지고 모든 사역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한동경교회에서 설교를 비롯한 일체의 사역을 그만두고, 8월 12일부터 시작되는 일본 코스타 준비위원장 자리에서도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미 교회 중직들에게도 말해 놨다고 했다.
하지만 김 목사는 피해자들이 진술한 상습적인 성추행은 인정하지 않았다. 단지 "그동안 사역자의 높은 윤리적 책임을 가르쳐 왔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나의 부덕의 소치임을 인정하고 사역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들의 말과는 달리, 김 목사는 먼저 여사역자들에게 전화해 마사지를 부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98년 테러를 당해 팔다리가 다 부러진 적이 있어서 꾸준히 마사지를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했다. 오해를 살까 봐 항상 남자들에게만 마사지를 받아 왔다고 했다. 오히려 여사역자들이 자신에게 먼저 전화해 마사지를 해 주겠다고 제안해 왔다는 것이다.
A는 10여 번에 걸쳐 김규동 목사에게 마사지를 해 주었다고 말했지만, 김 목사는 A에게 안마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A가 하도 말을 안 듣고 선배 사역자에게 대들어서 머리를 한 번 쥐어박은 후 위로해 준 게 전부라고 했다. 눈물을 흘리는 A의 어깨를 토닥이고 등을 쓸어내린 것을 A가 오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B의 경우는, B가 먼저 마사지를 해 주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은 그것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그러면 B가 먼저 전립선 안마까지 했다는 것이냐"고 묻자, 김 목사는 "그건 내가 먼저 해 달라고 한 게 맞다"고 인정했다. 그는 "만진 게 아니라 좀 스친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침대에 누워 보라"는 말은 C에게 안마를 받다가 C가 피곤해 보여 잠깐 쉬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여교역자에게 안마를 받는 게 아무래도 오해를 받을 만한 상황인 거 같아서 자신은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C가 자신을 덮치려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세 명 외에 다른 여교역자와의 부적절한 스킨십은 없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규동 목사는 "성적으로 오해할 만한 상황은 이 세 사람에게만, 딱 한 번씩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또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곧바로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며, 당시에는 그들도 다 이해하고 넘어갔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왜 다시 이런 일을 드러내고 언론에 제보했는지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의 마지막 마음의 짐, '일본 선교'
피해 여성들은 사실 김규동 목사에게 당한 성추행을 드러내는 걸 원하지 않았다. 이들은 요한동경교회를 뛰쳐나올 때까지, 이런 일은 자신만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로 가슴에서 삭이고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다 옛 동료들을 만나, 서로가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바뀐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 안에서 당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더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일본 선교'라는 대의는 피해자들에게도 마음의 짐이었다. 부교역자들의 말마따나 김규동 목사의 탈선이 드러나면 일본 선교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염려가 컸다. 사실 피해자들은 김 목사에게 당했다는 것 외에도, 자신이 일본 선교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죄책감에 힘들어했다. 청춘을 바쳐서 사랑한 일본이었다. 이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자신의 손으로 선교의 문까지 닫는다고 생각하니 견디기 어려웠다. 제보 후에도 몇 번이나 마음이 흔들렸다.
일본 선교는 요한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 또 요한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이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상처받겠지만, 그 책임은 진실을 알린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감춘 사람에게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피해 여성들은 김규동 목사와 그의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방관한 측근들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를 원했다.
김규동 목사가 기자들과 만나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다고 알리자, 피해자들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 목사뿐 아니라 김 목사의 아내나 이 아무개 선교사도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