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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누가복음15:11-32

제목: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15:13-19).

 

오늘 본문 말씀은 아버지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이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흉년이 들어 돼지들이나 먹던 쥐엄 열매마저도 마음껏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자, 아버지 곁을 떠난 것을 몹시 후회 한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하여 일꾼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지만, 아버지 집을 떠난 자신은 먹을 것이 없어 외지에서 굶어 죽게 생긴 것이다. 그러다 이대로 주저 앉아 굶어 죽을 것이 아니라 차라리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하고 잘못이라도 빌겠다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은 모두가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와 같은 신세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지만, 그러나 마음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악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없다.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도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 예수 이름만 부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음속의 죄가 도말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자가 아무리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신약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니까 기독교인들도 덩 달아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담이 지은 '원죄'와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모두 사함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이제 겨우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를 해결 받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이방인들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 앞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이 죄 아래 태어나게 되었지만,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반드시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어야 하고,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아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생각이 걸림돌이 되어 예수를 믿지 못하고 배척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이 걸림돌이 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이 걸림돌이 되어 예수를 믿지 못했던 이유는, 자칭 메시아라고 하는 자가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을 범하고 다니는 것이다. 당시 안식일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던 유대인들로서는 안식일을 범하고 다니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셨기 때문에,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예수는 응당 자신이 해야 될 일을 한 것이지만, 유대인들 눈에는 예수가 안식일이나 범하고 다니는 자로 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육신의 생각과 하나님 생각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이 걸림돌이 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이 걸림돌이 된다는 말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구원 받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할뿐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으려 하겠는가? 기독교인들로서는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영생에 들어가지 못한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나, 마귀의 꾐에 빠져 모두가 마귀 발아래 살고 있다. 마귀 발아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유대인과 이방인들 앞에 각각 보내주셨다. 그런데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예수)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하나님이 보내주신 영적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배척하다가 멸망으로 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모두가 하나님의 집을 떠난 탕자들이나 다름없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육적인 탕자들이라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탕자들이다. 육적인 탕자는 예수에게서 육적인 표적을 구하나, 그들에게 보여줄 것은 십자가에서 죽는 표적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영적인 표적을 구하나, 그들에게 보여줄 것은 영적으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표적밖에 없다. 그런데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영혼이 죽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영적으로 갈급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는 목마름의 한계를 느낄 때까지 말씀이 들려지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집 떠난 탕자를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혹독한 시련을 겪게 하신다. 성경에 등장하는 탕자를 보면 가진 재신을 모두 허비하게 만든 다음, 그가 머무는 곳에 흉년이 들게 하여 먹을 것조차도 배불리 먹을 수 없도록 만든다. 심지어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마저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자, 비로소 그가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게 된다. 결국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탕자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버지 앞에 납작 엎드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그를 문밖까지 쫓아 나와 따뜻하게 맞아 주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하루빨리 사단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버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까 자신은 아버지 집을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아버지가 보낸 아들(그리스도)을 믿는 않는 자들은 모두가 집나간 탕자들이다. 아버지가 보낸 아들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큰 교회를 담임하던 목사라도 영혼이 죄로 말미암아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 앞에만 하나님 아들을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앞에도 하나님의 영적인 아들을 보내주셨다.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영적인 아들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속에 남아 있던 죄악을 사함 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


만약 자신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끝까지 아들 앞으로 가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더욱더 혹독한 기근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고 영생에 이르기를 바라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 앞에만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앞에도 당신의 영적인 아들을 보내주셨다. 이에 따라 이방인들은 불신자건 믿는자건 모두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어야 죄사함을 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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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2-07-31 20:2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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