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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예수 이름만 불러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말씀

본문: 로마서10:1-15

제목: 예수 이름만 불러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로마서10:13-15).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말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라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반쪽짜리 구원에 머물고 만다.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구원과정이 다른 것은,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서 2천 년을 살다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성령의 법 아래 살고 있는 죄인들이라서,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위에서 말했듯이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구원을 받으려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지만,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할 뿐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자범죄)를 깨닫게 할 뿐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없이 해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은 것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도 성령을 거역한 죄(자범죄)를 해결 받고 온전케 되려면,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다.


바울이 본문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한 말은, 당시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을 두고 한 말로서,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믿게 되면, 유대인들은 율법을 거역한 죄(자범죄)를 먼저 사함 받게 된다. 그런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를 멸하게 되면 성령이 오셔서 인간의 영을 다시 지배하게 되는데, 이로써 유대인들은 물(예수 살)과 성령(예수 피)으로 거듭나게 되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인간의 영을 지배하던 마귀만 쫓겨났을 뿐,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죄(자범죄)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는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만 사해 주실 뿐, 이방인들은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아니라서,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까지 사해 주지 않는다. 이에 따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는 오직 기독교인들 앞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해결해 주시게 된다. 


따라서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는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구세주로 오신 것이고, 그리고 기독교인들 앞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구세주로 오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세상 임금인 마귀를 멸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인간의 영을 지배하던 마귀가 떠나고, 그 자리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인간의 영을 지배하게 된다.  

 

바울이 당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말했던 것은, 바울 자신이 율법 아래 살던 사람으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다 보니까 오로지 자기 입장에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바울의 이런 깊은 뜻을 모르고, 바울이 했던 말을 그대로 가져와서 자신들도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의 구원과 기독교인의 구원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말씀도 모두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있다. 성경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구원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자신들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을 철석같이 믿고 있겠지만,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던 것과 같은 이치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더라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하나님 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에 불과하다.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자는 남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성경 말씀은 모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인데,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시지 않게 되면 성경 말씀을 모두 육신의 생각으로 풀어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 땅에 기라성 같은 율법 학자들이 즐비하였지만, 그들 또한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만 가르쳤을 뿐,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만약 성경을 올바르게 가르쳤다면, 유대인들 모두가 예수를 믿었어야 했지만, 예수를 믿지 않은 것으로 봐서 그들 또한 성경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 선생들 역시 성경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 목사들 역시 모두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만 가르칠 뿐,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고 가르치는 자는 한 명도 없다. 목사들 조차도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데, 그 밑에 교인들에게 죄인이라고 가르치겠는가? 죄인이 되어 있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도리어 구원 받았다며 의기양양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과연 그리스도를 믿고 나올 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를 두고 예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 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고 말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성경 말씀의 저자는 누가 뭐라 해도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성경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셔야 한다.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 것을 말씀하시기 때문에, 성령만 받은 것으로는 결코 온전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성령께서 기독교인들에게 감화 감동으로 말씀을 넣어주셨더라도 기독교인들은 누구도 말씀 대로 살지 못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죽은 영)가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예수 영이 아니고 하나님 영이다. 따라서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고, 인간의 영()속에 오신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에게 말씀대로 살 것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죽은 영이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보니, 기독교인 누구도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기독교인 모두가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죄인들이다. 아직도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자가 성경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 역시 예수가 오시기 전에는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살았다. 그리하여 선지자들이 기록한 글을 보고 메시아가 오시면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 시켜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예수가 그런 일을 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자 얼굴을 붉히며 예수를 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세리와 창기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다니는 것을 보고는 죄인의 친구라며 상종도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시 유대 땅에 유명한 신학자들이 많았지만, 유대인 어느 누구도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어둠 속에 살고 있는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이다. 

 

유대인들도 구약 성경을 해석하는 기준이 없다 보니, 자신들 입맛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수많은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구약 성경 자체가 장차 오실 예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도리어 예수를 배척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른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보면서도 도무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더 어리석은 것이다.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육체로 계실 때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 없었으나, 부활하신 후로는 예수도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최초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갔던 때가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 마음속에 빛()으로 직접 들어갔던 사건이다. 그러나 당시 열두 제자의 마음속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계시지 않았다. 열두 제자들은 예수가 살아 계실 때 이미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자범죄)를 사해 주셨기 때문에, 마지막에 성령이 오셔서 열두 제자의 마음을 붙잡고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열두 제자들과 달리 부활하신 예수께서 직접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셨던 것이다. 빛(영)으로 예수가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시자, 그렇게 의기양양하던 바울이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며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빛 되신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그때는 모두가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며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는 자가 없는 것으로 봐서 아직 기독교인들 중에는 누구도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한 명도 없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핍박 하던 자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장차 이방인들 앞에 바울 같은 자를 통해 다시 가겠다는 것을 미리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서 이방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고, 자신을 믿는 자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했던 것은, 장차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셔서 바울과 같은 사역을 펼치겠다는 것을 미리 예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증거 하고 있는 말씀이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6:15).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재림 하실 예수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 공중재림에 앞서서 예수께서 이 땅에 먼저 도적같이 오신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를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들은 모두 구원 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공중에 재림할 예수만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예수께서 이대로 재림 하신다면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들도 들림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직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비롯하여 예수가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기독교인들 누구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직도 어둠 속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은 받았지만, 아직 바울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한 명도 없다. 다시 말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은 받았지만, 그리스도 영을 받은 자가 한 명도 없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아직까지 기독교인 누구에게도 들어가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곧 그 모습을 세상에 들어내실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선택한 제자(사역자)들을 불러 인간의 자아(죄)를 깨뜨리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 인간의 자아(옛사람)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비로소 바울처럼 온전한 사역자로 쓰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세상에 내보낼 당신의 제자(사역자)들만 은밀하게 훈련하고 계신다. 이제 곧 당신의 사역자들을 통해서 그 모습을 세상에 나타내실 것이다. 그때는 그리스도 모형에 불과한 세상 교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좋은 예로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오시자, 그동안 유대인들에게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예루살렘 성전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오늘날 세상 교회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는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했지만, 이제 천국의 주인이 오셨기 때문에 더 이상 세상 교회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열두 제자들과 달리 바울이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바울이 유일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던 것도 바울 마음속에 양자의 영인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바울이 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리스도가 속에서 알려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 서는 누구도 바울처럼 하나님 속성에 대하여 설명할 수가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바울처럼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이 회심하는 사건을 보면, 바울은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이라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음속의 죄(자범죄)를 먼저 사함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보고 눈이 멀게 되었지만, 예수의 지시에 따라 다메섹으로 내려가 아나니아를 찾아가 안수를 받자 성령을 받고 눈을 뜨게 되었다. 바울은 이렇게 그리스도와 더불어 성령을 받고 온전케 될 수 있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난 후 아나니아 제자를 통해 성령을 받는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여기서 물은 죄를 씻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반드시 예수 살을 먹어야 마음속으로 지은 자범죄가 해결된다. 그리고 예수 피는 마귀를 멸하고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예수 피를 마셔야 한다. 그래야 성령을 받을 수 있다. 예수 피는 인간의 영(靈)을 마귀 발아래서 구원하고, 예수 살은 인간의 혼(魂)을 귀신의 손아귀에서 구원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반대로 예수 피를 마시고 성령을 먼저 받게 된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곧 예수 피를 마시고 성령을 받게 되는 과정이다. 성령을 받아야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살아 계신 것과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그리스도 모형 아래서 2천 년을 살았지만, 종교적인 행위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고, 마지막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으로 지은 자범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예수 살을 먹는 과정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만 받은 상태라서, 마음속의 죄가 해결 되지 않아 바울과 같은 삶을 살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신 적이 없기 때문에 바울과 같은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신 것으로 착각하여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그리스도 대신 죽은 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죽은 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 자신의 생각으로 성경을 풀면 어찌 되겠는가? 당연히 잘못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계시지 않는 상태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곧 죽은 영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죽은 영이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주어지겠는가? 당연히 잘못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라고 했다. 왜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가? 인간의 생각은 곧 죽은 영이 넣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인간의 생각으로 성경을 풀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지만, 여전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죽은 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죽은 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경 말씀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도 바로 이런 상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기독교인들이 당연히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독교인들은 현재 죽은 영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다. 이제는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은 영에게 끌려가면 안된다. 가던 길에서 즉시 돌이켜서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있는 믿음도 알고 보면 얼마나 어설픈지 모른다. 가령, 성경에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고 하는 말이 나올 때, 이때 그것을 믿느냐고 물어봐서 믿는다고 하면,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믿느뇨? 하고 물었을 때, 믿는다고 하면 그것을 곧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고, 질문자의 강요에 의해서 말로 시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가령, 서울을 가보지도 않고 서울이라는 단어를 앞에 놓고, 그것을 믿으라고 하여 믿는다고 말하면 그것이 서울을 직접 가본 것이 되는가? 기독교인들은 너무도 상식에서 벗어난 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온전한 믿음이란 모름지기 내 안에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증거가 내 안에 있어야 하고,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증거가 내 안에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완벽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증거도 없이 성경에 써 있는 글만 보고 그것을 입술로 고백했다고 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면 너무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다시 말해 그런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변하기 마련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까지 받았다. 하지만, 처음 시작과 다르게 끝에 가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식어지고 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자기 마음속에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성령은 인간의 영()속에 오시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만 받아서는 반드시 끝에 가면 변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십자가에 죽었던 예수가 부활의 영으로 바울처럼 우리 마음속에 오시게 되면, 그때는 확실한 증거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절대 변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진짜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믿으면, 예수께서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유대인들의 자범죄를 먼저 사해 주신다. 그런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마시고 성령을 받으면, 성령께서 죄를 해결 받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100% 지배하게 되어 다시는 죄에 거하지 않게 되므로, 그것으로 유대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들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했다는 말은,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죽은 영)가 방해하는 바람에 신약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 노력으로는 어림없고, 반드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바울 마음속에 빛()으로 들어가셨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서, 그동안 기독교인들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하고 성령을 거역하게 만들었던 죽은 영을 쫓아내고 기독교인들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다시는 죄에 거하지 않게 되어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하나님 아들이 되는 과정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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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4-01-0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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