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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심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로마서7:1-25

제목: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심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로마서7:8-10).

 

율법아래 살던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고 보니, 자신이 가장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바울이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죄아래 살다가 지옥 불에 던져 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던 바울이 예수를 만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하는 유대인들이 꼭 자신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잘못된 유대인들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바리새파 출신으로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율법에 능통한 자였다. 율법을 연구하거나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은 당연히 예수를 믿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던 사람은 무조건 율법을 우선 순위에 놓고 보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바울 역시 자신은 틀림없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붙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까지 벌였다. 심지어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가편 투표를 통해 돌로 쳐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살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율법으로는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순전히 다메섹 도상으로 찾아오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난 후부터다. 부활하신 예수가 빛()으로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자 비로소 자신이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일념에서 율법과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도 바울이 율법에 능통한 자임을 알고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죄악이 가득하다. 이런 죄악을 깨닫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는 육체에 율법을 주었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셨다. 그런데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이 율법으로 자신의 죄를 깨달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려고 율법을 주신 것인데,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모르게 되면 인간은 누구나 교만해 질 수밖에 없다.


인간 스스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절대 깨달을 수 없다. 이것은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려고 성령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는데 도리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유대인 모두를 율법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이방인들이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 모두를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다. 그래야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라고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실 목적으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있다. 성령을 통해 자신의 죄악을 깨달아 가야 할 기독교인들이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말하게 되면 어찌되겠는가? 이는 자기 영혼을 사단에게 팔아 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행동하다가 도리어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사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계속해서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게 되면, 예수로 둔갑한 귀신이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장악하여 종처럼 부리게 된다. 지금도 죽은 영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을 종처럼 부리고 있다. 기독교가 성령으로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는 '죽은 영'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이간질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대적했던 것 또한 사단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주장하게 되면, 바리새인들처럼 사단이 기독교인들을 지배하여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고 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죄를 어떻게 깨달아 가야 할까?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었으면, 이방인들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지 못하면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성령의 법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주신 법이 바로 신약 성경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구약이 유대인들의 육체에 주신 '율법'이라면, 신약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다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신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만약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영적인 율법이란? 기독교인들이 신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마음으로 지키며 사는 것을 말한다.

 

가령, 예수께서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고 했으면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계속해서 미움이 올라오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인들로서는 남을 미워하지 않고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라고 했으면 탐내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계속해서 탐심이 올라오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탐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이다.

 

이런 죄악 외에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시기, 질투, 분노, 거짓, 음란, 탐욕, 도적질 같은 죄악들이 가득하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이런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살았으나, 성령을 받고 보니까 이런 죄악이 살아나서 나를 죄 아래로 잡아 이끌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다. 바울이 이를 두고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3,24).


이렇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을 깨닫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달아 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배척하더니, 이제는 기독교인들마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구원 받았기 때문에 천국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자신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기 때문에, 천국 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런 죄악 들을 아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기독교인들이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 죄인은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기독교인들은 이제라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거짓 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을 연구하던 신학자들의 잘못이 더 크다. 성경을 연구하거나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생각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런 자들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당연히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 놓은 아성이 모두 무너지고 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가 함부로 선생 되지 말라고 말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모두가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갇혀 있는 죄인들이다. 이렇게 죄 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셨다. 부활하신 예수는 영으로 오시기 때문에, 사람의 육체를 입어야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려면 사람의 육체를 입어야 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부득불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신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도 바울 같은 자가 다시 이방인들 앞에 오신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성경에는 이방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를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하고 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6:15). 그리고 또 다른 성경에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24:42-44). 이는 공중에 재림할 예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실 그리스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부활하신 예수가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시기 때문에, 기독교인들로서는 그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도적같이 오시는 이유는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해주지 아니하면 기독교인들은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시는 그리스도와 달리 공중에 재림하시는 예수는 세상 마지막 날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게 오신다. 공중에 오시는 예수는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가 땅에서 미리 알곡으로 인(印)친 자들을, 세상 마지막 날 공중으로 불러 올라가기 위해서 오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와 세상 마지막 날 공중에 재림하시는 예수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탕감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를 통해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탕감 받지 못하면 지금까지 죽도록 신앙생활 한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열심히 신앙생활 한 것은 모두가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인데, 마지막에 천국의 주인을 배척하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에 아니라 살아 생전에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죄를 해결 받지 못하고 죽게 되면 천국은 고사하고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누구를 통해서 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것이 가장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역시 가장 낮은 곳에 가장 천한 모습으로 오셨다. 그 이유는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자들과 높은 자리에 앉은 교만한 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가장 낮은 곳에 천한 모습으로 오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 역시 가장 천하고 가장 낮은 자를 통해서 오신다. 이는 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자들과 높은 자리에 앉은 교만한 자들을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일부러 가장 천하고 가장 낮은 자를 통해서 오신다. 이를 두고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성취하는 과정 중 하나 이기도 하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심지어 성경은 교만한 자들을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죄를 깨달아 돌이켜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13:11-15).

 

그러나 유대인들 중에도 예수를 믿고 나오는 자들이 있었다. 육체가 병든 자들과 세리와 창기들과 천국을 사모하는 자들은 모두 예수를 믿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자신이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한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들과 성령을 거역하여 마음이 병든 자들과 불신자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자들과 천국을 사모하는 자들은 모두가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6:65)고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아무리 율법 아래서 열심히 신앙생활 했더라도, 그런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는 천국에 갈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아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아래서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했어도, 그런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천국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신 영적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을 통해서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함 받아야 천국에 갈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께서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기독교인들에게 맞게 직역하면,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라도, 성령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앞으로 보내주지 아니하면 누구도 그리스도 앞으로 올 수 없다고 하는 말이다. 왜 성령께서는 기독교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주지 안았을까?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기망하고 자기 멋대로 살았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그를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런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예수가 오셨을 때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고 대적했던 것은, 자신의 교만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평소에 자신이 어떻게 신앙생활 했느냐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도 있고 또는 아들 앞으로 인도를 받을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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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4-02-25 12:4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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