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요한복음7:14-24
제목: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마음중심을 보고 판단하라!
유대인의 3대 명절중 하나인 초막절에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고 수근 거리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글을 배우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말은,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히브리 글을 모른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가 가말리엘 신학교 같은데서 율법을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율법에 대해서 아느냐? 하고 묻는 말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말씀하시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그러시면서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그러자 모여 있던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하고 묻는 것이다.
당시 예수께서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으려 하느냐?”하고 말했을 때, 당시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로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아니! 언제 우리가 당신을 죽으려 했느냐? 당신 미쳤구나!”하고 항변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으려 하느냐?”라고 말했던 것은, 그들 마음속에 들어 있던 미움(살인)을 보고 말했던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라며 황당해 했던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해서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예수의 겉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오셨다. 예수의 겉모습을 잘 표현한 성경구절이 이사야53:2절에 나온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성경이 말하고 있듯이, 예수는 얼굴도 못생기고 체격도 크지 않아 사람들이 보기에도 흠모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당시는 겉모습을 중요시 여기는 시대라, 예수의 초라한 모습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가 “나를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고 다녔으니, 과연 유대인들이 예수의 말을 듣고 믿으려 하였겠는가?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이 보낸 아들이다.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은 그를 믿어야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영적인 백성이 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영적인 율법(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자신들의 의(義)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런 사람들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셨다. 그런데 그의 겉모습이 너무도 초라한 것이다. 그에게는 흠모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교회도 작고 성도들 숫자도 몇 명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에게 “내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자를 기독교인들이 믿는 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유대인들 앞에 어떤 모습으로 오셨던 가를 알면, 기독교인들은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볼 줄 알았는데,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비교해서 조금도 다르지 않게 그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인간의 마음속에 오신 그리스도를 보지 않고, 자꾸만 인간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게 되면, 십중팔구는 그리스도를 믿지 못해서 넘어지고 말게 될 것이다. 죄악에 찌든 자신의 마음속과 그리스도를 모신 자의 마음속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게 되면, 누구나 그리스도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속마음을 감춘 체 겉만 보고 판단하니까 도리어 실족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는 육체를 입고 오셨지만, 이방인들 앞에 오신 예수는 부활의 영으로 오시기 때문에, 부득불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비록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시지만, 인간의 입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다.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게 되면, 생명의 말씀이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악이 도말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싹트게 된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천국이 자기 마음속에도 임하게 된다. 이것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 때문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지 못하는 바람에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지 못해서 멸망으로 갔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성령(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지 못해서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다음 내용을 가지고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를 알아 볼 수 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자기 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자랑하게 되나, 보내심을 받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보내신 분을 자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자기 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자는 그것이 자기 생각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자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내심을 받고 말하는 자는,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니고 보내심을 받은 분의 말씀이기 때문에, 결국 보내심을 받은 분을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기독교인들이 돈을 모아 요즘 코로나로 고생하는 독거노인들을 돌보아 주었다면, 그것은 자신들이 사비를 털어 돌보아 준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자랑하게 된다. 똑같은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가 사비를 털어 독거노인들을 돌보아 주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시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자랑 할 수가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도 모두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결코 자신을 자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도,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이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자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설교를 듣고 교인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감사인사라도 하게 되면 뿌듯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 또한 자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자신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교인들이 은혜를 받았다며 감사인사를 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말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넣어주신 말씀을 전한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주님 앞에 감사를 하라고 말을 하게 된다. 이로서 누가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계신 자인가를 알 수 있다.
성령을 받은 자라도 무슨 일을 하고 나서 자신을 자랑하는 이유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귀신)’의 특성을 따라서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다. 마귀는 영계에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다가 이 세상으로 쫓겨난 자이다. 그리고 죽은 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악을 막고 사는 영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들어내고 싶은 욕망이 강한 존재다. 이런 영적인 존재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인간을 충동질 하여 자신을 자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가수나 탤런트들이 인기가 시들해지면 못 견디고 마약을 하거나 자살하는 이유가 바로 죽은 영(귀신)이 충동질하기 때문이다. 이런 악한 영들이 인간을 높이 올려놓았다가 떨어지고 나면 그때는 죽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 속을 알 수 없다고 하는 말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겉으로는 착한 척, 선한 척 하는데, 되돌아서서는 온갖 해괴망측한 짓을 다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불신자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것은,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인간들을 사랑하셨는데, 기독교인들은 인간들을 사랑하기는커녕,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범죄를 일삼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분란을 일으키고 죄를 짓게 하는 존재가 바로 ‘죽은 영(귀신)’이다. 이런 영적인 존재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기독교인들은 계속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과 손가락질을 당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서 죄를 해결하고, 죽은 영들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모두 쫓아내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인들도 온전케 되어 영생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온전한 마음을 원하신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마음이 모두 죄로 부패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의 기독교인들 마음 상태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적인 아들을 기독교인들 앞에 보내서, 아들을 믿는 자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직접 들어가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은 외모로 보지 말고, 마음중심을 보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천국의 주인인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귀 있는 자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