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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마가복음9:14-29

제목: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보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이름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 하지만, 당시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던 것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로 귀신을 쫓아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시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주셨던 것은,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의 죄를 사해주셨던 것이고, 오늘날 성령의 은사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불신자들에게 표적을 보여줘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 이름을 부르도록 하여 성령을 받게 한 다음, 하나님 백성을 삼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사단의 백성에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하여, 그것으로 곧장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었지만, 유대인들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나 율법아래서의 신앙생활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나,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어야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달리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의 보호를 받고 태어난다. 율법의 보호를 받고 태어났다는 말은, 유대인들 마음속에 죄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을 보호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을 주신적이 없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죄악을 먹고 마시며 자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마음판이 다른 점이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어릴 때부터 율법의 보호를 받고 자라게 되지만, 그들도 육체를 입은 인간으로서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유대인들 모두가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 모두를 죄 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이다. 그래야 유대교 이천년 역사 마지막에 하나님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통해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 모두를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래야 기독교 이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성령(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죄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게 되면 죄가 유대인들 마음속에 하나 둘씩 들어가 쌓이게 된다. 그렇게 죄가 하나 둘씩 마음속에 쌓이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서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예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성경은 인과 신을 버렸다고 한다. 참고로 죄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영' 또는 '악한 영’ 이라 부르는데, 이들이 바로 인간의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는 귀신이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게 되면 귀신이 유대인들 마음속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병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 중에 유독 병든 자가 많았던 것이다. 로마의 어떤 장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러 왔다가, 병든 자가 너무도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아니!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인데 왜 이렇게 병든 자가 많은 것이냐며 의아해 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율법아래 갇힌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율법의 완성자로 예수께서 오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5:17). 이렇게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의 죄(율법을 거역한 죄)를 먼저 사해주시는 것이다. 그런 후 예수께서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게 되면 마지막에 성령을 받게 된다. 이때 성령은 아버지 영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머리)속에 오셔서, 예수를 통해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신다. 이렇게 하여 죄가 다시는 유대인들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성령께서 막아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구원과정이다. 


좋은 예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경우,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지만, 그들이 성령을 속이고 죄가 마음속에 들어오자 즉시 죽임을 당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죽임을 당한 이유는 성령을 받았던 자가 더 이상 죄를 지으면 안되기 때문에 육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바울이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나 영으로는 살게 하려 함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두고 여름실과라 부른다. 여름실과는 저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빨리 먹어야 하듯이, 유대인들 역시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 구원이 완성되었으면, 그들은 빨리 죽는 것이 복이다. 괜히 오래 살다가 죄를 지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때 로마의 핍박을 통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사자의 밥이 되었던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성경을 보면 문둥병자, 혈루증, 절름발이, 소경, 중풍병자 등등이 예수로부터 고침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이 예수를 통해 병을 고침 받았던 것은, 모두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은 것이다. 그 이유는 육체의 병은 모두 율법을 거역해서 생긴 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를 통해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았다고 하더라도 곧장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 그들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 발아래서 나와야 한다. 그런 후 마지막에 성령을 받아야 비로소 유대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두 가지 죄를 가지고 있는데,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본인이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와 인간의 조상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아야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해놓은 법칙이라 누구도 변개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또한 아담이 지은 '원죄'와 자신이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를 모두 해결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현제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만 해결 받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아직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죄를 자범죄라 부른다. 그리고 인간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지은 죄를 원죄라 부른다. 한마디로 자범죄는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죄를 말하는 것이고, ‘원죄는 우리 조상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지은 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 받는 방법도 각각 다르다. 내가 지은 자범죄는 반드시 예수 살을 먹어야 해결 될 수 있고, 아담이 지은 원죄는 반드시 예수 피를 통해서만 해결 받을 수 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이 두 가지 죄를 모두 해결 받아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따라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통해 먼저 마음속으로 지은 자범죄(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게 된다. 그런 후 마지막에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구원이 완성된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성령을 받지 못하게 되고, 성령을 받지 못하면 제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 했던 유대인이라도 구원에서 탈락되고 만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유대인과 정반대로 진행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악한 영과 거짓 예수로 둔갑한 이단들에게 번번이 속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이 자리 잡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죄악은 인간의 성장과 함께 자라게 된다. 이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사람이 어린아이 때는 비교적 순진하나,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이 악해지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죄를 지어도 담대해지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악이 그만큼 자랐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던 사람들이, 복음 전도자의 말을 듣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셨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의 공로 때문이다. 하나님 백성도 아닌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함 받고 이제 겨우 마귀 발아래서 나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사단의 백성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신분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단의 백성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곧장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다. 신분이 바뀌었어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마음속의 죄악을 해결 받아야 영생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신약성경에 기록된 내용만 보고, 유대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구원 받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도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 받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죄가 가득한데 구원으로 단정 짓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사단의 올무에 걸려 들고 말게 된다. 아직도 죄아래 살고 있는 자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니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기독교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속의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성령만 받아서는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할뿐,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율법이 유대인들을 의롭게 하지 못하듯이, 성령의 법 또한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성령이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한다는 근거는,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은 현제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 영적인 율법 아래 갇혀 있다. 이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예수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부활의 영으로 다시 오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런 말이 무척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4천년 전에 이삭과 야곱을 유대인과 기독교인들 앞에 보낼 그리스도의 예표로 세우시고,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아들을 보내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을 미리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고, 그리고 이방인들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영적인 아들)를 보내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을 미리 예표로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다. 이를 증거하는 말씀이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9:3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기록한 말씀을,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 이루어 가신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의 육체를 입고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마음속으로 지은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만약 기독교인 중에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경우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 했던 사람이라도 구원에서 탈락되고 만다. 이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열심히 신앙생활 했지만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믿지 않아 구원에서 탈락되는 것과 같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아래서 죽도록 신앙생활 하고도, 마지막에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믿지 못하여 구원에 탈락 되고 말았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아래서 죽도록 신앙생활 하고도, 마지막에 영적인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여 구원에서 탈락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부디 기독교인들은 바리새인들이 걸어갔던 길을 가지 않기를 바란다.  -귀 있는 자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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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1-02-28 20:3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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