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 가라!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이루어 가시려고 인간에게 특별히 개입하셔서 간섭하지 않는 한, 인간은 모두가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루시려는 계획 때문에 인간들 속에서도 ‘의인’ 이 나오는 것이지,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아니라면 인간들은 모두가 죄 때문에 쓰레기장으로 가야할 운명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먼저 지으신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구경하거나 감상하시려고 지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살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다. 또 인간들을 그 환경 가운데 살게 하신 것은 인간들이 대단한 존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서 인간들을 먼저 살게 하신 것이다. 이 우주는 인간들이 살기 이전에 이미 자연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고, 그 자연 환경이 조성되기 이전에 이미 영적인 세력인 사단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영적인 존재인 사단이 영적인 인간이 만들어져 지구에 들어오기 까지는 많은 시간차이가 있다. 영적인 인간이 들어오자 사단은 얼마나 군침을 흘리며 반겼겠는가?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자마자 사단은 한순간에 자기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모든 인간들은 죄의 올무를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준비된 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오직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가 오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자 마귀는 겁 없이 예수를 시험했지만 하나님 아들은 그 꾐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서 자기 하수인들을 사용하는데, 그 적임자로 가장 하나님을 잘 안다는 사람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육신(겉)으로만 알았지 영적으로는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자들이다. 마귀의 간계(奸計)과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에도 마귀는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하는 자들을 자기 하수인으로 사용하는데, 바로 그들은 다름 아닌 육신(겉)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바울이 주장하려하는 것도 바로 이부분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현제의 그리스도인들이나 특별히 하나님의 간섭함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가가 하나님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면 이는 교만한 자이거나, 겉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구원의 문제도 잘 모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육신으로 하는 자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구원의 문제를 해석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주님도 “너희가 영생을 얻으려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구원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뭔가 자기들 생각에서 나온 것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 믿고 성령 받았으면 무조건 천국에 갈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만약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믿고 성령 받았으면 구원인데, 뭣 하러 교회는 계속해서 다니고 있고, 뭣 때문에 신앙생활은 계속하고 있단 말인가? 구원이라는 말을 앞에 놓고 볼 때, 너무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사도바울도 분명히 말하기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하고 있고, 또 로마서 13:11절에서도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 왔음이니라” 하면서 구원을 완성시켜 갈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성령을 따라 살아서 구원을 완성시켜 나가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 믿을 때 누구에게나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시는 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 가운데서 특별한 선택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에도 세상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서 하나님 백성들을 일차로 뽑는다. 그리하여 그들을 세상과 구별되게 하신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구원이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한 구원의 여정 길은 성령을 받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된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때부터 자신과의 싸움에 돌입해야 한다. 벧후 2;19에 보면 “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 이니라” 누구든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자는 자신의 죄악에게 종노릇해야 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했듯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만이 진정한 구원에 들어 갈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단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누가 온전한 구원에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오직 천국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사람 속에든 죄악을 제거 해주셔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성령을 거역하지 말고 순종하라 하신 말씀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구원이 전적으로 주님 손에 달려 있는데도, 제 멋대로 신앙생활하고 구원에 이를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스스로 구원을 쟁취하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차라리 주님 앞에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훨씬 더 긍휼을 입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국의 문턱에서 떨어진 것을 보라!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현제의 그리스도인들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해서 그러했는가? 아니다. 그들의 열심은 주님도 칭찬 해줄 만큼 대단했다.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열심이 있었기에 자기 자신들이 완전한 구원에 이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열심은 오히려 자신들을 올가미 속에 넣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오늘날에도 구원받았다고 열심을 내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꼭 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은, 우리에게 대가없이 선물로 보내 주셨지만, 그 선물을 받은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꺾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만약 영생에 이를 수 있는 크나큰 선물을 받고도 그 선물을 주신 분을 소홀히 여긴다거나 성령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한다면 이는 큰 배신행위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대가없이 받았다 해서 그 선물이 결코 싸구려 취급을 당할 만큼 값없는 것이 아니다. 그 선물은 하나님 아들이 십자가상에서 죽고서야 얻어진 그야말로 값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값지게 얻어진 선물을 받고도 자기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또는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일말의 양심에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가 어떻게 해서 주님으로부터 긍휼함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고도 구원에 이를 것처럼 이야기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차라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주님 앞에 나아가 진실로 회개하자! 차라리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며 주님 앞에서 무릎 꿇어 엎드리자! 소경 바디매오가 자기의 눈을 뜨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하며 외쳤듯이 우리도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죄악을 제거해 달라고 주님께 부르짖고 외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진실로 회개해야 한다. 진실로 회개하는 자는 반드시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도 남은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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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2-04-18 20:07
조회
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