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구원에 이르는 말씀

사랑의 힘

모두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 아들 예수 역시 사랑이 많은 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를 믿고 있는 사람들 또한 예수의 사랑을 먹고 자랐을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 많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믿는 자들을 보면, 예수께서 손수 십자가에서 본을 보여준 사랑이 나오지 않는다.

예수를 믿고 있는 자들이라면, 분명히 예수의 사랑을 먹고 자랐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도 그런 사랑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저들을 보면 말로는 모두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그런 사랑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것은 모두들 말로 하는 예수를 믿고 있다는 증거다.

기독교인 모두가 실상은 이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자신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만 해도 기독교 신자가 1200만이라는 숫자를 웃돌고 있지만, 진정으로 살아계시는 예수 믿는자는 없고 맨날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죽은 예수 믿는 자들만 우글 거리고 있다.

살아계신 예수는 몸으로 직접 실천을 하시는 분이라서 말보다도 행동이 먼저 앞선다. 그러나 죽은 예수를 믿는 자들은 몸으로는 전혀 실천할 수 없는 자들이라 맨날 입만 살아 있는 자들이다. 설사, 그들이 사랑을 실천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겨우 육신으로 하는 사랑을 펼치는 자들이다.

죽은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모두 도적질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모두 살아계신 예수께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쓰신 내용이다. 그런데 거짓 예수를 믿는 자들은, 그런 경험을 자신이 직접 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몸으로 쓰신 성경 말씀을 도적질해다가 자기 것인냥 주절주절 나발을 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인용해서 하는 말들은 모두 번지르르 하게 하는데, 행동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죽어 있는 자들이 성경말씀을 해석하게 되면 전부 육신의 것으로 풀어 해석할 수밖에 없다. 죽은 자들은 언제나 땅에다 소망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죽어 있는 예수를 믿는 자들은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자신이 거짓의 하수인임을 감추기 위해서, 아주 그럴 듯한 말로 꾸며서 설교를 한다. 그래야 그 말을 듣는 자들이 그가 거짓의 하수임임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디서 영적인 성경말씀 하나를 얻어 듣게 되면 그것이 마치, 자기 것인냥 상대방을 아주 얇잡아 보면서 선생 노릇을 하려고 한다. 이것이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예수를 믿는 자들은 언제나 자신을 희생시켜서 상대방을 얻으려 한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라도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도 주님의 은혜를 입고 죄악속에서 나온 죄인이란 사실을 본인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오만 불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예수를 믿는 자들은 항상 말이 많고 오만 불손하다. 그 이유는, 아직 자신이 정말로 죄인이 되어보지 않았을 뿐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를 아직 한번도 만나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예수는 모든 죄악을 자기 것으로 떠 않는다. 남편의 잘못도 자기 것으로 떠 않고, 자식의 잘못도 자기것으로 떠 않고, 친구의 죄악까지도 자기 것으로 떠 않고 자신이 죽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상대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얻으려면 힘으로 믿어붙이거나, 아니면 권력으로, 그것도 시원찮으면 폭력으로 밀어 붙여서 상대를 얻으려고 하겠지만, 살아계신 예수는 오직 자신을 희생시켜서 사랑의 힘으로 상대방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폭력이나, 권력의 힘으로 믿어붙이면 잠시 잠깐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게 얻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죄악의 본질이 그대로 들어 있는 상태에서 폭력에 못이겨 잠시 억눌러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언제고 마음이 변하게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나 나를 희생시켜서 얻는 사랑의 힘은,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므로,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모두가 다 죄악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 악을 제압하는 방법은 폭력이 아니고, 결국 나를 희생시키는 진실한 사랑뿐이다.

상대방을 폭력으로 또는 막강한 힘으로 믿어붙이게 되면, 순간은 상대방을 얻는 것처럼 보여도 악은 절대로 폭력이나 힘앞에 무릎꿇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방의 악을 무릎꿇리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나를 희생시키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남편을 얻고 싶거든 먼저 자기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먼저 상대방에게 희생시킬 수 없다. 어느 멍청한 사람이 한번 죽으면 다시 산다는 보장이 없는데, 자기 자신을 먼저 희생시켜려 하겠는가? 자신이 죽지 않은 가운데 자신을 먼저 남편앞에 희생시키려 하면 억지로 얼마동안은 참겠는데, 계속해서 남편이 뭐라고 하면 그때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속으로라도 미워하고 말지 않던가? 이것은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주님앞으로 먼저 달려 나오라는 것이다. 주님 앞에 달려 나와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주님으로부터 먼저 영생을 보장받고 가족들앞에 달려가서 그들앞에 자신을 희생시키라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영생을 보장받고 나면 아무리 남편이 뭐라고 해도 전혀 미움이나 분노가 올라오지 않는다. 욕을 해도 전혀 분을 내지 않는 아내를 보고, 그럴 때 남편은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으로 말미암는 생명을 소유한 자만이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그보다 더한 것도 자신을 희생시켜서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생명을 소유한자는 자신을 백번이고, 천번이라도 희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시키는 만큼 상대방을 얻게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 요한복음 12장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세상적인 방법은 육신으로 사는 것이 먼저이고 영혼은 나중에 죽는 것인데 비해서, 하늘나라 방법은 먼저 육신으로 있는 자기 자신이 죽어야 나중에 자기안에 있는 영혼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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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0-30 20:48
조회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