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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는 말씀

구원에 이르는 과정(2)

구원에 이르는 과정(2)

 

그럼 지금부터 구원 받은 자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18:21-35절 까지를 보면 탕감 받은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어느 임금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빚을 모조리 탕감하여 줍니다. 그런데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을 받은 자는, 자신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자신의 빚을 갚지 않는다하여 관가에 고발하여 옥에 가두게 합니다. 임금이 그 소문을 듣고 괘씸하게 생각한 나머지 탕감 받은 자를 당장에 잡아다 옥에 가두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내가 과연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구원 받지 못한 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 나를 정확히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았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렇게 많은 빚을 하나님으로부터 탕감을 받았다면 나 역시, 내게 빚진 자들을 모두 탕감해주어야 옳은 일입니다.

 

나에게 빚진 자란 다름 아닌, 가깝게는 내 남편이나 내 마누라부터 시작하여 가족들은 물론, 이웃들까지 몽땅 내게 백데나리온의 빚을 진자들입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아 놓고도, 내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겨우 백 데나리온의 빚을 졌을 뿐인데 그걸 갚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을 모두 관가에 고발하여 모두 옥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아니! 내가 언제 누구에게 빚을 갚지 않는다고 주변 사람들을 관가에 고발했다는 것입니까?"하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이 진정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라면 여러분 주변사람들부터 모두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이란, 여러분들의 목숨이라도 이웃을 위해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숨을 내어주기는커녕 끼리끼리 당을 지어서 자신보다 못난 자를 힐난하거나, 이웃이 조금만 잘못해도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있는 자는 있는 자 끼리, 없는 자는 없는 자 끼리, 배운 자는 배운 자끼리, 못 배운 자는 못 배운 자 끼리 철저히 남을 무시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 이뿐입니까? 현제 한국교회에 교단이 몇 개나 됩니까?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장로교 하나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교파가 서로 자기네가 정통이라고 우기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한분이요 주님도 한분인데 왜 이렇게 많은 교단과 교파가 생겨나야 합니까? 이는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이 각기 자기 특색을 갖고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면 믿는 자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 땅에서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백성의 신분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라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난 자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더 잘 알기에 절대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을 먹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당을 짓거나 교단을 나누는 일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을 무시하거나 비방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더러운 죄인이라 날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자가 남을 함부로 비방하며 남을 힐난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그토록 율법아래서는 남을 정죄하고 비판했지만, 그도 예수를 만나 회심한 후에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그리스도로부터 자신의 죄악을 탕감 받은 자들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죄악을 탕감 받지 못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당을 짓고, 교단을 나뉘게 하며, 자신보다 못난 자를 멸시하며 손가락질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서 이런 행동을 저지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자신은 틀림없이 구원받았다고 믿는 분이 있거든, 자신도 예수님처럼 어느 누구에게나 어떤 편견도 갖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상대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이 당신 마음속에 내제돼 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구원 받은 사람일 것이나,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면 당신은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럼 다시 탕감 받은 자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왜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옥에 가둔 자가 구원 받지 못한 자에 속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구원 받은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자입니다. 여기서 일만 달란트는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약20조원쯤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데나리온은 당시 하루 품삯으로, 100데나리온을 오늘날 일당 10만원으로 계산하면 약천만원쯤 됩니다. 쉽게 말해서 일만 달란트와 데나리온은 비교할 수 없는 숫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평생을 일해도 갚을 수 없는 돈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달란트와 데나리온은 인간의 죄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이며, 인간과 인간끼리는 아무리 큰 죄를 짓더라도 그것이 고작 백데나리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20조 탕감)받았다는 사람이, 겨우 천만 원 빚진 자의 돈을 받으려고 고발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람이, 인간들을 편견을 갖고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가령, 불신자들을 보면 마귀새끼라고 정죄하고, 자신보다 못한 자를 보면 깔보고 업신여기고, 아무튼 자기하고 맞지 않으면 무조건 이단이요 마귀새끼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 모두가 실상은 자신의 죄악을 탕감 받지 못한 자들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악을 탕감 받았다면 당연히 그 사람도 상대방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지 그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탕감 받아 놓고 상대방의 잘못은 용서할 수 없다면 이런 사람은 결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설사, 구원(탕감)받았다할지라도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한 그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다시 그 사람에게 죗값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하나님 앞에는 그토록 열심이었으나 구원받지 못한 바리새인들의 삶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자신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구원 받은 백성)이라 해놓고, 세리와 창녀들을 죄인들이라 하여 멀리하고, 당시 문둥병자와 절름발이 그리고 소경과 육체에 병든 자들을 더러운 죄인들이라고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그런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자들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설사, 자신들이 탕감 받은 자들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다시 물었을 것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의 특징은 남의 눈의 티는 크게 보면서 정작 자신의 잘못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 믿고 성령까지 받아서 구원받았다고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삶은 과연 어떨까요? 유대인들의 삶에 비해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자신이 죄인(탕감)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도 절대 당을 짓거나 끼리끼리 편을 가르지 않습니다. 또한 교단을 나누거나 교파를 나누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주인으로 자리 잡고 계시는데 뭔 교단이 필요하며, 뭔 교리가 또다시 필요하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을 마음속에 모신 자는 불신자라고 하여 마귀새끼라고 정죄하지 않으며, 또한 타 종교에 몸담고 있는 자들을 무조건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편견을 갖고 보지 않습니다. 권력 앞에 비굴하게 아부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습니다. 성령이 아닌, 그리스도의 영을 마음속에 모신 자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찾아오는 자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압니다. 또는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며 나오는 자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자입니다. 그런 자가 남을 정죄하고 비방한다면 자신은 어디에 서겠습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비교해볼 때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 받은 자가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교단을 나누고 편당을 짓는 자라면 그는 거짓으로 구원받은 자입니다.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고 깨우치기 보다는, 사람들 비위나 맞추어가면서 교인들 숫자나 채우려는 자들 역시 말로는 영혼을 구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려는 수작에 불과합니다. 이런 자들 역시 아직은 구원 받지 못한 자입니다.

 

그리스도는 만인 앞에 공평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자라면, 성령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숨은 죄악을 살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불신자로 살던 자라도 평소 죄를 지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을 가지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장차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앞에 당신의 영적인 아들을 보내주실 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면, 그런 자들도 모두 아들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은 인간들처럼 교단이나, 교파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했냐? 못했나를 따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단이나 타종교에 몸담고 있던 자라도 종파를 따져가며 구원해주지 않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든지 자신의 죄악을 들고 나오는 자들을 그리스도께서는 긍휼히 여겨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어도 영적으로 오시는 주님을 믿지 않으면 그들은 영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아무리 큰 감투를 쓰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어도 영적으로 오시는 주님을 믿지 아니하면 그런 자도 영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율법사들이 교인들의 선생으로 죽도록 수고했지만,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지 못해서 그들은 죽어라고 일하고도 예수로부터 죄 사함을 받지 못해서 영생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오히려 이 지면이 부족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가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에서 빚어진 일들입니다. 이는 악한 영이 교묘하게 기독교인들을 속여서 성령을 그리스도 영이라 속이고 구원 받았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이처럼 타락으로 가게 된 것은 그리스도가 계셔야 할 그곳(마음)에 악한 영(죽은 영)이 자리를 잡고 앉아 인간을 속이고, 인간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악한 영에게서 벗어나는 길은, 하루빨리 영적인 그리스도가 오셔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죽은 영을 몰아내고 인간의 주인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아직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았다고 믿는 순간! 악한 영은 그것을 기회로 삼아 인간의 마음을 장악하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을 장악한 악한 영은 절대 인간을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모형을 실체로 믿었으니 당연히 악한 영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자꾸만 자신을 낮추라고 말씀합니다. 자신을 죄인이라 낮추는 자는 그만큼 악한 영의 지배를 덜 받게 됩니다. 악한 영의 지배를 덜 받는 자는 가 장차 오실 그리스도 또한 잘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관한 내용이 아직도 궁금하신 분들은 본 교회 홈페이지 올려져 있는 글들을 모두 자세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글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않고 글을 읽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못해서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글을 읽는 분들은 반드시 성령 하나님께서 깨우침을 주실 것입니다. 이글은 사람의 생각으로 쓴 글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을 붙잡고 쓰신 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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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1-02 21:09
조회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