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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누가복음17:11-19

제목: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누가복음17:15-19).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통해 깨끗함을 받았다. 하지만, 아홉은 제사장을 찾아간다며 떠나갔고, 그중에 사마리아인 한 명만 돌아와서 예수께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것을 보신 예수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그 아홉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날 여기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자들은 그들도 문둥병을 고침 받은 자들이니까 구원받았다. 아니다! 그들은 예수께 영광 돌리려 오지 않았으니까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이 구원 받았는지 구원받지 못했는지 기독교인들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죄 아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구원에 관해서는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 다만, 기독교인들은 그 결과에 대해서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죄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현실이다. 사실 이런 문제 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에 대해서도 기독교인들은 어떤 말씀도 함부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결론을 내리는 순간! 그는 심판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죄인이 심판 자리에 앉게 되면, 그는 사단의 하수인이 되고 만다.

 

그럼 누가 판단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판단은 오직 예수만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오직 예수만 인간의 죄를 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예수만 그들이 죄 사함을 받았는지 또는 죄 사함을 받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천국의 주인만 알 수 있는 내용을 자신들이 나서서 왈가왈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교만한 자리에 앉아 있다는 증거다. 아직도 어둠속에 살고 있는 자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다.

 

오늘날 성경을 해석하는 일도 그렇다. 성경의 저자이신 예수만 알 수 있는 비밀을, 아직도 죄 아래 살고 있는 자들이 나서서 성경을 함부로 해석하게 되면, 십중팔구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 베드로도 이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6). 베드로 말대로 죄아래 살고 있는 자가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는 멸망으로 가게 된다. 성경을 억지로 푼다는 말은, 인간의 생각으로 성경을 풀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은 사망이라 성경을 억지로 풀게 되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는 모든 말씀들이 사실에 입각하여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인간이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말씀을 가르치다 보니, 사람의 생각이 가미 되어 하나님 뜻과는 정반대로 가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직접 성경 말씀대로 살아보고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자신이 말씀대로 살아보지도 않고 말씀을 가르치다 보니 거짓 것을 가르치게 된다. 이는 서울을 직접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마치, 서울을 가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예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고 말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렇다면 죄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성경 말씀도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아직도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죄 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으로 성경을 풀기 때문이다. 자신도 아직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럼 누가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을 제대로 해석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만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 줄 수 있다. 성경의 저자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이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을 바르게 가르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쳤던 것들은 다 무엇인가? 그것은 모두 육신에 관한 것들로서 영생에 관한 것은 단 1%도 없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사실이 믿기지 않겠지만, 기독교인들 중에 아무리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라도 자기 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만약 기독교인 중에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굳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필요가 없다. 이런 자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 아래서 2천 년 동안 말씀을 가르쳤지만, 육신에 관한 것만 가르쳤을 뿐 영생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도 바르게 가르칠 수가 없었다. 그들도 예수가 오시기 전까지는 모두가 죄 아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영생에 관한 말씀을 전할 수 있겠는가? 자신도 아직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가 성경을 해석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겠는가? 모두가 멸망으로 가는 길 뿐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았으니까 자신들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믿겠지만,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할뿐,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없이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실 뿐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뜻을 모르고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빚어진 일이다. 이는 당시 바리새인들도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을,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으로 바꾸어서 가르친다. 이렇게 가르치지 않으면 이방인들 중에 과연 교회에 나올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방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하는 것이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교회가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복도 받고 천국도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좋은 것을 사람들이 왜 이것을 마다하겠는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교회로 꾸역꾸역 모여드는 것이다. 이렇게 세워진 것이 오늘날 기독교 역사다.

 

오늘날 기독교 역사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만 뿐만 아니라, 천국도 갈 수 있다는 말에 속아서 급성장을 해왔다. 그리하여 지금은 전 세계 인구 중에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 뿐 영생 하고는 거리가 멀다.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굉장히 기분 나쁘겠지만, 그러나 유대인들의 구원과정을 알게 된다면 그렇게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다. 유대인들도 예수가 오시기 전까지는 하나의 종교적인 생활을 한 것일 뿐 영생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역시 현제는 종교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종교적인 생활을 벗어나기 어렵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더 이상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2천 년 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예수께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때가 이르자 부활의 영으로 다시 오셨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사람들과 말을 할 수 없으므로 부득불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다.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는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신다.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동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온갖 죄를 짓게 하며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게 방해하던 죽은 영(인간의 주인 )’을 쫓아주신다. 이는 마치, 컴컴한 방안에 바퀴벌레가 우글거리고 있는데, 방안에 불을 켜자 바퀴벌레가 줄행랑을 치는 것과 같다성령을 받아도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마음속에서 함께 자라온 죄(죽은 영)는 절대 떠나지 않기 때문에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죽은 영이 자기 주인이 되어 있다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셔서 죽은 영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는다. 성경은 이런 자를 두고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죽은 영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면, 그때부터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되니까 어느 것도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다.  다시말해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계시기 때문에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게 된다. 그리스도의 뜻대로 사는 자는 절대 세상과 짝하지 않을 뿐더러,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미혹 당하지 않게 된다. 이는 진리의 영인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계시기 때문에 거짓 영에게 미혹 당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자가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나 성령 아래서는 여전히 마음속에 죄악이 남아 있기 때문에, 세상 유혹을 누구도 이겨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세상 영에게 미혹 당해서 결국 세상과 짝하고 말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이단에 끌려가는 것도 진리의 영이 자기 마음속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거짓 영에게 미혹 당해서 끌려가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죄악이 남아 있다는 말은, 자신의 자아(自我)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말이다. ‘죽은 영은 인간의 자아를 움켜쥐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인간의 자아는 곧 자기 목숨하고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성령을 받고도 자기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는 죽은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의 자아가 강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목숨을 버리고 쫓으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곧 자신의 자아(自我)를 버리고 쫓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이제 오늘 본문을 다시 조명해 보자! 아홉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를 만나 육체의 병이 나았지만, 그들은 예수로부터 확실한 믿음을 보장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병이 다시 재발할 수도 있다. 문둥병자들은 율법을 거역하여 육체가 병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또다시 율법을 범하여 문둥병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좋은 예로 38년 된 병자가 물이 동할 때 연못에 들어가기를 원하지만, 자기 스스로는 거동조차 할 수 없던 그로서는 누군가 자기를 연못에 넣어줄 자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연못에 넣어줄 자는 없었다. 그러다 예수를 만나 연못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걷게 되었다. 그런데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5:14)고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의 의미는, 너를 낫게 해준 나를 끝까지 믿고 마지막에 성령까지 받으라고 하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죄를 범해서 병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장 유의해서 들어야 할 말씀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통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다. 죽을 병에 걸린 자가 낫기도 하고,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기도 하고, 망해가던 사업이 다시 번창하기도 하고, 그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살았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마지막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까지 믿어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인들의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문둥병자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지,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를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그 아홉 명의 문둥병자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어도,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오늘 말씀이 기독교인들에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구원 받는 일을 너무나 쉽게 생각 한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해서 교회로 모여들었지만, 이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누리고 살았던 모든 것들을 전부 버려야 한다. 부와 명예는 물론이요. 세상에서 얻은 학문과 지식도 모두 버려야 한다. 이것을 움켜쥐고서는 천국 문 앞에도 못 간다.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후 율법 아래서 취했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말하고 있다.그리고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26-27).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라고 하면, 과연 기독교인들 중에 몇 명이나 이를 실천하며 따를까? 단언컨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의 인원만 남고 모두 떠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너무 좁아서 찾는 이가 드물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입만 열면 구원 받았다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수 이름만 부르면 무조건 구원 받은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예수 이름만 부른다고 해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아니다. 각자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구원이 완성 된다. 만약 죄를 해결 받지 않으면 지금까지 고생했던 모든 것이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성령의 법 아래서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맛보고 살았다. 그렇다면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까지 믿어야 구원이 완성된다. 그렇지 않고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며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배척한다면, 기독교인들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그 아홉 명의 문둥병자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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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06-18 22:5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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