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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성령은 기독교인들의 죄를 깨닫게 할뿐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고린도 전서 12:1-31

제목: 성령은 기독교인들의 죄를 깨닫게 할뿐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3-7).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하고 있다. 바울은 왜 성령을 받으면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고 유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바울이 구원이라는 말을 유익으로 잘못 바꿔서 말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구원(救援)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에 빠진 사람을 건져 준다는 말이고, 유익(有益)하다 의 사전적 의미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는 말이다. 따라서 두 단어의 어원은 전혀 다른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혹시 번역과정에서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고전13장을 보면 온전한 것이 올 때는 성령의 은사로 주신 것들을 모두 폐하겠다는 말씀에서 번역과정의 오류라고 볼 수도 없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은, 바울은 바리새인 출신으로 율법에 대한 지식이 상당했기 때문에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이다. 율법과 복음에 대하여 바울만큼 정확히 설명하는 자가 없는 것을 보면, 예수께서 바울을 왜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바울이 왜 성령 받은 것을 두고 유익(有益)이라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하나님 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아가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자,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되었다.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를 멸하게 되자,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오셔서 인간의 영()을 다시 지배하게 되었다. 이 과정이 바로 이방인들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는 과정이다. 이에 따라 이방인들은 본래 하나님 백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해 성령을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곧장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백성은 아직도 여전히 죄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며 경거망동 해서는 안되고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 줄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이에 따라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다 주신 법이 바로 영적인 율법이다. 영적인 율법이란? 신약성경에 기록한 말씀으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만약 말씀대로 살지 못할 경우 모두가 죄아래 갇히고 말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곧장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성령은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려고 주셨기 때문에,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아도 곧장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이방인들이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 말씀대로 살아봐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말씀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자신이 결국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방인들로 하여금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깨닫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을 두고, 바울이 유익(有益)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과 같은 원리로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주신 것은 유대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유대인들의 죄를 깨닫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를 모르고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죄를 깨닫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는데,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게 되면 어찌되겠는가? 도리어 마귀가 그들을 지배하게 되어 그들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유대인들과 똑같이 그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유대인들 모두를 율법아래 가두어 놓고, 유대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율법아래 갇혀 있던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 모두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다른 종교를 전파는 이단의 괴수라며 핍박하고 조롱하다가 끝내는 로마군의 손에 넘겨 죽게 만들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우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면,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도리어 예수가 보낸 자를 죽이고 마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 같은 자들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가 하시는 일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태클을 걸었다. 신약성경을 보면 자신을 의롭게 여기던 자들이 얼마나 예수를 괴롭히며 핍박하고 조롱했는가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죄를 깨닫기 위해서 율법을 보내주신 것인데, 유대인들이 이것을 잘못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바람에 이런 엄청난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죄아래 살고 있는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잘못을 범하지 않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들이 저런 정도의 잘못을 저질렀다면,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보다 몇 배나 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들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귀신)’이 기독교인들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어 하늘만큼 높아져 있다. 이대로 가면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로 말미암아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하려고 성령을 보내주신 것인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고 있으니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던 죄악(죽은 영)이 기회를 틈타 기독교인들을 교만하게 만들어 놓아서, 이제는 그리스도의 말씀도 듣지 못하도록 마음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 악한 영들이 유대인들을 율법으로 의롭게 만들어 놓고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더니,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제라도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지 못했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에 이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바울처럼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동안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며 온갖 죄를 짓게 하던 죽은 영(귀신)’들을 쫓아 내주신다. 이는 예수가 유대인들 마음속에서 귀신(죽은 영)을 쫓아내던 것과 같은 이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가서 죄를 사해주는 과정이 바로 나의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과정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죄를 해결하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주시면, 그때부터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시게 되므로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의 뜻대로 살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면, 그때부터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나서 내 의()나 내 자랑이 나올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어 이끌어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의 삶이다.

 

그러나 성령의 법 아래서의 신앙생활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슨 선한 일을 하고 나면 나의 자랑과 나의 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죄가 나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의 옛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고 나면 반드시 내 의()와 내 자랑이 나오는 것이다. 가령,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거나,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나누어 주더라도 반드시 자기 의(義)나 자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도 기독교인들이 죄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오늘날 제아무리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자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마는 이유는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귀신)’이 자신을 죄악 속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끝에 가서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지고 말게 된다. 이를 두고 바울은 시작했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며 이방인들을 책망하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성령은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성령의 법아래 가두어 놓은 다음 기독교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자 했던 것이다.그런데 기독교인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성령만 받으면 구원 받은 것으로 착각하여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제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때가 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셨다. 영은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부득불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다. 귀신도 사람속에 들어가야 자기 특성을 나타내듯이, 부활하신 예수도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야 자기 특성을 나타내신다. 귀신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죄를 짓게 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지만, 부활하신 예수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죄를 짓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인격적으로 오신 이유는, 기독교인들의 형편 사정을 헤아려서 불쌍히 여길 자는 불쌍히 여겨 주시고, 긍휼히 여길 자는 긍휼히 여겨 주시기 때문이다.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기독교인들의 죄 뿐만 아니라, 이단에 속한 자라도 그리고 타 종교에 몸담고 있는 자라도,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기만 하면,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이에 비해 오늘날 종교생활을 하는 자들은 자기 종교밖에 모른다. 기독교나 천주교 그리고 불교나 이슬람인들을 보면, 자기 밖에 모르는 대단히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두가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종교밖에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들 답게 세상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시며 가장 중요한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공중에 재림할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들은 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중에 재림할 예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자는 공중에 재림할 예수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이 땅에 도적같이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는 것이 급선무이다공중에 재림할 예수께서는 도적같이 이방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땅에서 알곡으로 인(印)친 자들만 공중으로 불러 올려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중에 재림할 예수보다, 먼저 이 땅에 그리스도가 도적같이 오실 것을 예고하는 말씀이 바로 고전13장 말씀이다. 바울이 고전12장에서는 성령의 은사 부분을 다루다가 고전13장에 가서는 온전한 것이 올 때는 성령의 은사로 주었던 것들을 모두 폐하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방인들이 성령으로 구원에 이를 것 같았으면 바울은 굳이 고전13장을 기록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바울은 고전12장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성령의 은사로 주신 것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것임이 더욱더 분명해진다. 그럼 성령의 은사로 주었던 것들을 왜 폐하게 되는가?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면, 그동안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은사(그리스도 모형)로 주었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까지는 모델하우스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새 아파트가 지어지고 나면 더 이상 모델하우는 필요 없게 되는 것처럼, 오늘날 성령의 은사로 신앙생활 하던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는 그리스도의 모형아래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였지만, 그런 종교적인 행위로는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하던 것을, 이제는 천국의 주인이 직접 오셔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하고 구원에 이르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붙잡고 있지 말고, 새 주인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에 이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 아파트가 완공 되었으니까 껍데기에 불과한 모델하우스 같은 곳에서 더 이상 살지 말고 새로운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를 두고 예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니까 고전12장에서 성령의 은사로 주었던 것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모형 아래서 신앙생활 하다 보니 불신자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자꾸만 기독교인들을 보고 욕하며 손가락질 했던 것이다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바울처럼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울은 성령과 더불어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이다. 다시 말해 바울은 원죄와 자범죄 모두를 해결 받은 자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성령만 받은 자들로서, 이제 겨우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만 해결 받은 자들이다. 다시 말해 이방인들은 아직도 해결 받아야 할 마음속의 죄(자범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은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그 의문이 풀렸다면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아담이 지은 원죄는 이미 성령을 받을 때 해결 받았으니까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자범죄)만 해결 받으면 기독교인들도 바울처럼 온전케 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그런 자들을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은 22장14절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는 말씀이다. 기독교인들이 청함을 받은 자들이라면,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자들이 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도적같이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6:15).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도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24:42-44). 하지만,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겠다는 많은 말씀 중에 바울이 가장 확실한 말씀을 하고 있다. 바울 역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고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을 받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끝까지 자신은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 어떤 자비도 베풀어주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그들에게는 오직 컴컴한 어둠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23:37). 말씀하시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역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말씀을 전하고 있다. 아직도 육에 속한 기독교인들로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영)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해서 똑같은 말씀을 반복해서 하시고 있는 것이다. 죄로 얼룩져 있는 인간의 마음속에 영(靈)의 말씀이 녹아들게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받았다는 생각에 빠져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있다. 이는 예수님 당시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너무도 닯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까지나 기독교인들에게 천국 문을 열고 두고 마냥 기다리고 있지는 않으실 것이다. 노아가 당시 사람들에게 방주에 탈 것을 그토록 권고하고 다녔지만 누구도 노아 말을 곧이 듣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그리스도의 말씀을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고 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노아의 방주 문이 닫히고 말듯이, 시간이 되면 천국 문 또한 굳게 닫히고 말 것이다. 한번 닫힌 천국 문은 밖에서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다. 노아의 방주 문이 닫히기 전에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모두가 방주에 올라타야 한다. 한번 문이 닫히고 난 뒤에는 아무리 눈물 흘리며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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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07-23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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