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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그들이 하는 말은 듣되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마태복음23:1-12

제목: 그들이 하는 말은 듣되 행위는 본받지 말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마태복음23:2-7).

 

예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만 말하고 있을 뿐, 자신들은 전혀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씀대로 살 것을 강요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 보이고자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고 있다.

 

이런 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목사나 장로들이 교회에서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많은 말들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도 전혀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이때 저들이 성경을 통해서 하는 말은 들어야 하겠지만, 저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는 저들은 성경 말씀만 나열하고 있을 뿐, 전혀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말 만하고 행실이 따르지 않는 것을 두고 야고보는 죽음 믿음이라 말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 목사나 장로들이 교인들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지키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 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먼저 말씀대로 살아보고 나서 말씀대로 살 것을 가르치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 교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본인들이 말씀대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교인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교인들에게만 말씀대로 살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기독교가 행실은 보이지 않고 맨날 말만 앞세우다 보니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자꾸만 말씀의 무거운 짐을 교인들에게 지우는 이유는, 교인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겁박을 해서 꼼짝 못하기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자신들이 더 거룩해 보이기 때문이다.이는 사단이 인간을 고단수로 속이고 있는 방법이다. 어둠속에 사는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이것이 사단의 속임수라는 것을 발견할 수가 없다그러다 보니 악한 영은 마음 놓고 이런 짓을 인간들에게 저지르고 있다. 사단의 간교함은 인간으로서는 누구도 알아 차릴 수 없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않으면 인간은 사단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자들의 특징은 자신의 속을 감추기 위해서 항상 겉모습을 거룩함으로 위장을 하고 있다. 목사들이 사람들 앞에 설 때마다 정장을 하거나 까운을 걸치는 이유가 자신은 깨끗하고 거룩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진실을 말해줘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겉모습을 거룩하게 꾸미거나 고상한 지식을 전해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런 자들 밑에 있는 자들은 평생을 거짓 선생들에게 속아 살다가 인생을 망치고 말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이방인의 특징인데, 성경에 기록된 말만 하고 행실을 가르치지 않는 목사 장로들이 교인들 입장에서는 도리어 고맙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만약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게 되면,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다 버리고 쫓아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과연 교회에 나올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아마도 각 교회마다 손가락 숫자에도 못 미칠 교인들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기독교가 얼마나 속 빈 강정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예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고 말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 목사 장로들이 말만 하고 행실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말씀을 실천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율법 아래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은 후, 마지막에 성령을 받아야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데,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예수를 믿을 수 없다 보니 성령 또한 받을 수 없게 되어 말씀을 실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은 받았지만, 성령을 받았어도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죄악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보니, 기독교인들 또한 성경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속에서 죄악(죽은 영)이 자꾸만 방해를 하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는 것이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자로서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성경 말씀만 나열하고 있을 뿐 말씀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믿음이다

 

오늘날 저 밑바닥에서부터 인생을 출발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릴 줄 안다. 다시 말해 흙수저로 출발한 사람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시범을 보인 후 상대방이 따라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금수저로 인생을 출발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형편을 전혀 헤아릴 줄 모른다. 그런 자는 상대방의 형편 사정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자기 생각만 강요하기 때문에, 그 밑에 있는 자들은 상사의 눈치만 살피게 된다. 그런 자들은 소리만 요란할 뿐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말씀대로 살지 못하다 보니 속 빈 강정에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는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 같은데, 왜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욕심도 많고 편협하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과 비교해서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불신자들과 똑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죽은 영)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해결 받기 위해서, 매주마다 예배당이 나가서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런 행위로는 어림없다. 성찬식 때마다 빵과 포도주를 수십 년 동안 먹고 마셨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유대인들이 2천 년 동안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지만, 그것으로도 유대인들의 죄는 도말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2천 년 동안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런 행위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도말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가 소리만 요란할 뿐 속 사람이 전혀 변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자꾸만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예수께서 부활의 영으로 다시 오셨다.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동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며 죄를 짓게 하던 죽은 영을 쫓아주신다. 다시 말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속의 죄악을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제거해 주신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옛 주인(죽은 영)이 떠나고 나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주신다. 그때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성령의 뜻대로 살게 되고 성경 말씀대로 살게 된다. 이를 두고 바울은 양자의 영을 받아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양자의 영이란 성령이 아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영을 두고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바울이 갈라디아 2:20절에서 고백하던 말씀이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성취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보고, 성령을 받으면 자신도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이 거짓선생과 자신에게 완전히 속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곧 세상의 빛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기독교인들은 빛이 아니라 아직도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죄인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성령은 불로 인간의 머리 위에 임하지만, 그리스도는 빛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신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빛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성령만 받아서는 빛의 자녀가 될 수 없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과 행실이 항상 똑같기 때문에 세상의 악귀들도 꼼짝을 못하고 떠나게 된다. 이는 진실 앞에 거짓 영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령을 받고도 기독교인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겉 다르고 속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온전치 못하기 때문이다. 겉과 속이 다른데 아무리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말을 한들 악한 영이 꼼짝이나 하겠는가? 도리어 귀신들이 기독교인들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면, 그때는 이 세상 어떤 악한 영도 그리스도의 말씀(진리)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권세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지만, 교인들의 속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속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분이시다.

 

구약의 저자는 성령 하나님이시나, 신약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야 말씀대로 살게 되고 또한 권세 있는 말씀도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사는 기독교인들은 신약 성경의 저자이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셔야 비로소 성경 말씀대로 살게 되고 또한 권세 있는 말씀도 나타나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주인이 되어 주시면, 기독교인들 또한 그때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것처럼 희생도 할 수 있고, 아가페적인 무한한 사랑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법 아래서의 신앙생활은 아직도 자신의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보여주신 희생과 아가페적인 사랑을 나눠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자와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의 차이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보여주려면, 내가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이것이 진정한 희생이요 사랑이다. 그러나 내 자아가 죽지 않은 상태에서는 희생도 사랑도 모두가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정욕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희생과 사랑으로는 어떤 영혼도 살릴 수 없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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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07-09 22:51
조회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