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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믿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로마서10:16-21

재목: 믿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성령의 뜻대로 사는 것이 곧 믿음이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성령이 주시는 감동대로 살아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이방인들이 성령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살다보니, 믿음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따라 신앙생활하고 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신념이라고 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자기 생각대로 살다보니 신념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 믿음이 좋다고 말한다. 여기다 주일 성수와 새벽기도와 십일조와 각종 헌금등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하게 되면, 최고의 믿음을 가진 자로 보는 것이다. 유대인들도 열심히 신앙생활 하던 것을 믿음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를 믿지 않고 배척하였던 것은 신념으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믿음이 아닌 신념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성령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지만, 신념은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살기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이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구원의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지만, 신념으로 신앙생활 하는 자는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에 구원의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가령, 나는 교회 열심히 다녔으니까 천국에 가게 될 거야!”하고 자기 생각을 믿어 보지만, 결국 나중에는 천국에 가게 될지 못가게 될지 모르니까 불안해 하는 것이다.

 

아랍의 무슬림들도 모두 신념으로 하는 신앙생활이다. 그들도 죽으면 모두 알라 품에 안긴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는 그들도 벌벌 떨고 있다. 말로는 죽으면 모두 알라 품에 안기다고 말하지만, 막상 죽음 앞에서는 그들도 두려운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자기 자신을 신에게 맡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라 품이 천국은 아니겠지만, 어쩌든 믿음은 자기 자신을 전부 신에게 맡기는 삶이라 죽음 앞에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신념은 자기 자신을 믿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불교나 힌두교를 믿는 자들도 모두 신념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입으로는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무슬림들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믿음이 아닌 신념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기독교인들이 성령까지 받고도 믿음으로 신앙생활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이다. 죄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영(귀신)이다. 똥과 똥파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듯이, 죄와 죽은 영(귀신)또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똥파리가 똥을 먹고 살듯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를 먹고 사는 영적인 존재가 바로 죽은 영(귀신)이다. 예수께서도 귀신을 더럽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곧 죄를 먹고 사는 귀신을 더럽다고 표현하신 것이다. 이런 더러운 죄악들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가득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자라도 처음 얼마동안은 성령의 뜻대로 사는 것 갖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씩 성령을 소멸하게 된다. 성령을 소멸하게 되면 즉시 육신의 소욕이 올라온다. 육신의 소욕이 올라온다는 것은 곧 죽은 영(귀신)이 자신을 다스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영적인 존재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기독교인 모두가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의 이런 사정을 아시고, 각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보내주셨다. 성령의 은사란? 천사들을 보내서 육신의 소욕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것이다. 고전12장을 보면 바울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마저도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신을 높이는 용도로 사용하다보니,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에게서 은사를 회수해 가신다. 은사를 회수 당하고 나면 악한 영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신비주의로 이끌게 된다. 한때 잘 나가던 목사들이 이단 소리를 듣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자기 생각대로 살다보니 모두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많은 기도를 해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기독교인들에게 더 이상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무조건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그것이 곧 믿음인 줄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서두에서 말했듯이 믿음은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삶인 반면, 신념은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삶이기 때문에, 하나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삶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바울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말하고 있는데, 왜 바울은 성령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자란다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자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바울은 아나니아를 통해 성령도 받고,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셨기 때문에, 성령이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정확히 알고 있어서 위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셨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영적인 율법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셨다면, 예수께서는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일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우쭐되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생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기독교인들이 그 올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간 곁을 떠나게 되었으나, 예수를 죽인 마귀가 심판을 받고 세상 임금 자리에서 내려오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인간의 영()을 지배하게 되었다. 인간의 영을 지배하신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다 감화 감동으로 말씀만 넣어주실 뿐, 인간의 마음속에 직접 오시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예수처럼 인간의 육체를 입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모르다 보니까 자꾸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성령은 인간의 영(靈)속에 오셔서, 인간의 영(靈)만 지배하신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 오셔서,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신다. 그래야 인간의 영(靈)과 혼(魂)이 죄에서 구원을 얻게 된다.  

 

이에 따라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때뿐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천년 동안 성령의 법아래서 살고 있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믿음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그리스도가 자라는 것을 두고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성령의 말씀을 많이 들어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믿음이 자라게 될까? 이는 바로 이스라엘 땅에 오셨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 하늘로 승천하셨던 예수께서 영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셔야 믿음의 씨앗이 마음 밭에 떨어져 자라게 된다.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 자라지 않지만,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면 자라게 된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경로를 통하여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게 되는가?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면,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죽은 영)를 해결하고 영으로 들어가게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을 두고 '양자의 영'이라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마지막에 반드시 '양자의 영'을 받아야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으로 기독교인들 앞에 오시는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 마음속에 빛()으로 들어가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빛()으로 그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시는 것이다. 당시 바울이 하는 말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었듯이,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가 하는 말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가 하시는 말씀을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게 된다. 지금까지 성령이 전부인 줄만 알고 살아온 기독교인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런 말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도 율법이 전부인 줄만 알고 살았는데, 전혀볼품 없게 생긴 나사렛 촌놈이 나타나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다" 라고 말했을 때, 그들도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작은 겨자씨로 오신 그리스도가 마음 밭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때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하시는 말씀이 아닌, 세상 사람들이 들려주는 말씀을 먹게 되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죽게 된다. 예를 들어 성경말씀을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자가 들려주게 되면, 그 말은 육신에 속한 자가 들려주는 말이라서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말라죽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원리다. 마태복음13장을 보면, 좋은 밭 세 개와 좋지 않은 밭 세 개가 나오는데, 어떤 밭에서 겨자씨가 잘 자라게 되는지 아주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오늘날 성령을 소멸하고 자기 생각을 따라 사는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성경말씀을 그럴듯하게 풀어 주어도, 그것은 육에 속한 자의 말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어서는 믿음이 자랄 수 없다.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라야 인간의 마음 밭에서 자라게 된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바울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아기가 엄마 젖을 먹어야 무럭무럭 자랄 수 있듯이, 인간의 영혼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자라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성화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성령의 법 아래서는 속사람이 절대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성화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이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분간하지 못하다보니,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크나큰 함정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라도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재대로 깨닫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보게 된 원인은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교리 때문이다. 그러나 어거스틴도 그리스도로 거듭 난자가 아니고, 육에 속한자라서 당연히 삼위일체에 대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그를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틀린 것을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이 죄가 없다는 측면에서는 똑같은 하나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모두 똑같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오류이다. 이런 잘못된 교리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우주만물과 이 세상 모든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마귀 발아래서 나온 인간의 영(靈)을 지배하신다. 마지막으로 성자 하나님(그리스도)은,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셔서 죄를 해결하시고, 죽은 영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제각각 다른데, 이것을 모두 하나로 보고 똑같은 일을 하신다고 생각하면 어찌 되는겠는가? 이럴 것 같으면 굳이 예수를 인간들 앞에 보낼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혼자 다 하시면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죽은 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을 쫓아내 주셔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인들도 비로소 성령과 더불어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있다. 만약 당시 어거스틴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셨더라면,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어거스틴 입장에서는 대단한 깨달음이라 생각하여 이런 주장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성경도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육신의 생각으로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반드시 이런 오류를 범하게 된다.


오늘날 성경을 자기 입맛에 맞게 풀어 해석하는 자들이 많은데, 이는 하나님 뜻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저들이 하는 말은 어느 것도 믿으면 안 된다.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는 도리어 자신이 사단의 꾐에 빠져 멸망에 이르고 만다. 따라서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풀어주는 말씀만이, 하나님 뜻을 제대로 알고 풀어주시는 진리의 말씀이다. 똑같은 성경 말씀이라도 그리스도가 들려주게 되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지만, 육에 속한자가 들려주게 되면 우리를 지옥으로 안내하게 된다.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말씀도 생명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어거스틴의 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은, 모두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 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간의 영()은 마귀가 지배하고 있었고, 인간의 마음은 죽은 영(귀신)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 흘려 죽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마귀를 심판하게 되었고, 또한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귀신마저 쫓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원리에 따라 마귀 발아래서 나온 인간의 영()은 성령께서 다시 오셔서 지배하게 되었고,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던 죽은 영(귀신)또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쫓아내 주시게 될 것이다. 이때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영()과 혼(), 마귀와 귀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현제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인간의 영()만 자유를 얻은 상태이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며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더러운 죽은 영이 주인노릇을 하며 온갖 죄를 짓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지금까지 주인 노릇을 하던 죽은 영을 쫓아내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죽은 영이 떠나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불신자나 타종교에 몸담고 있는 자라도 또는 이단에 속해있던 자라도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를 도말하여 주신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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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0-04-19 12:08
조회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