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골로새서3:1-11
제목: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
인간은 누구나 이중인격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이중인격이란? 겉 사람과 속사람이 서로 다른 것이다. 겉으로는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을 욕하고 있는 것이다. 남녀가 처음 만나 맞선을 볼 때 속으로는 배고파 죽겠는데, 체면 때문에 많이 먹지를 못하고 수저를 놓고 마는 것이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철석 같이 믿었던 자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대기업을 믿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대기업이 뒷통수 치는 바람에 전재산을 잃고 길거리에 내 앉는 일도 발생한다. 특히 인간들끼리 돈 거래에 있어서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돈이 욕심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 난다. 우리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 이런 악이 숨어 있는데도, 사람들이 겉으로는 착하고 순진한 모습으로 잘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느냐 하면, 가령, 속으로는 상대방이 미워 죽겠는데 겉으로는 전혀 미워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가 들어 있는데도, 겉으로는 순한 양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이중적인 모습인가? 그러나 이것은 어느 개인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악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이 밖으로 돌출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우리 속담에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평소에는 전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한번 화를 내면 무섭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특징은 지금까지 누가 자신을 비난해도 모든 것을 참으며 속으로 억누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자신이 손해 보고 만다.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착하다 선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도 인간인지라 마음속에는 악이 자라고 있다. 그가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하고 말할 수 없는 비난을 받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속에서 폭발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자가 화를 내면 더 무서운 것은 그동안 참고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폭발하기 때문이다.
그럼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져 주셨으니까 이런 것들이 내면에 숨어있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도리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불신자보다도 더 많은 악(죄)을 마음에 품고 있다. 그 이유는 불신자들이야 속에 있는 것들이 종종 밖으로 들어나기도 하지만,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한다는 것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참고, 누가 자신을 비난해도 예수님을 생각하며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번 폭발이라도 하는 날이면 그때는 눈에 뵈는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어떨까? 성령을 받았으니까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악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일까? 그래서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지 않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성령을 받았다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악을 마음속에 품고 살게 된다. 그 이유는 성령을 받고 보니 전에 모르던 악에 대해서 더 알게 된 것이다. 그러자 겉으로 들어나는 자신의 행동에 더욱더 조심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속에 있는 악이 겉으로 들어나지 않도록 자신의 행동을 최대한 절재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도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것 때문에 혹여 누가 자신을 핍박해도 기도하면서 버터내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예수님 십자가를 생각하며 속으로 삭히며 참는 것이다. 한 달, 두 달, 일 년을 속으로 꾹꾹 누르며 참고 견디다가 마침내 그도 결국은 폭발하고 마는 것이다. 화를 참았던 자가 한번 폭발하게 되면, 그 위력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가 사라졌다고 믿었는데, 왜 믿는 자에게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기독교인들로서는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성령 받은 것으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셨다고 하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이 말은 먼저는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태어나자마자 율법의 보호를 받고 살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율법을 보호를 받는다는 말은, 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율법이 보호를 해주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게 되자, 죄가 유대인들 마음속에 침투하여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자 유대인들 몸에 죄가 병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유독 병든 자가 많았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율법을 거역하여 유대인들 모두 죽게 생겼을 때, 예수께서 오셔서 유대인들의 병든 몸을 치료하게 되자, 병이 떠나 가면서 유대인들 마음속에 들어갔던 죄(자범죄)까지 모두 떠나게 된 것이다. 예수를 믿고 육신의 병과 마음속의 죄까지 해결 받은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하여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마지막에 ‘성령’을 받게 되는데, 유대인들은 그것으로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예수를 통해서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먼저 사함 받은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으면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는 마귀를 멸하고,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아야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간 곁을 떠났던 성령하나님께서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다시 인간 곁으로 돌아오시게 된 것이다. 이방인들이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아담이 지은 ‘원죄’는 오직 흠 없는 인간의 피로만 해결 될 수 있다. 그래서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의 피로는 마귀를 멸할 수 없기 때문에, 죄 없는 예수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주신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靈)속에 오셔서 인간의 머리를 지배하시게 된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율법을 거역한 죄(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게 되는데, 이때 성령께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다스려서 다시는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 주신다. 이런 원리에 따라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서,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가 해결 되지 않기 때문에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유대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거나 속이게 되면 즉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아니니아 삽비라가 성령을 속이고 재산 얼마를 감추었다가 즉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구원의 법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구원이 완성 되기 때문에, 전적으로 성령을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아니니아 삽비라가 마귀의 미혹을 받아 썩어질 세상 것에 욕심을 냈다가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성령을 거역해도 당장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령으로는 기독교인들의 구원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죽이기로 작정한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성령을 거역해도 당장 죽임을 당하지 않는 이유는,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던 구원의 법과 이방인들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법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도 심판의 날이 이르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심판의 날이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부활하신 예수께서 공중 재림에 앞서서 이방인들 앞에 사람을 통해 도적같이 다시 오시는데, 이방인들은 사람을 통해 다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그는 이 땅에서 버림(죽음)을 받게 된다.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16:15).
위 말씀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신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자들이라,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기도를 많이 해도 쭉정이에 불과한 자들이라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다. 쭉정이는 생명이 없는 자들이라서 미리 거두어 불사르게 된다.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마39:40).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이중인격을 가지고 사는 것은 모두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이다. 죄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영(귀신)’이다. 예수께서도 죄와 귀신을 더럽다는 말로 동급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죽은 영)’은 결코 떠나지 않는다. 이런 ‘악한 영’들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입으로는 여전히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들을 말씀하신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15:19-20). 바울도 인간의 부패한 마음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롬1:29). 이방인들은 누구도 이런 죄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죄악을 먹고 마시며 자라왔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한 순간에 이런 죄악들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죄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도말하여 주시는 것이다.
성령은 마귀 발아래서 나온 기독교인들 영(靈)을 보호 하실 뿐, 기독교인들 마음까지 다스려주지 않는다. 기독교인들 마음은 '죽은 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죽은 영'을 쫓아내고 지배하여 주셔야만 비로소 온전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비로소 인간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영원히 '죽은 영'의 하수인이 되어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인격자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은 인간들로 하여금 겉으로는 착하고 선한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종용 한다. ‘악한 영’들이 인간들로 하여금 선하고 착한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종용 하는 것은, 그렇게 위장을 해야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고 오랫동안 인간들 마음속에서 칩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한 영’의 조종을 받고 살아가던 인간들 앞에 빛 되신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지게 된다.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면 '악한 영'들이 인간보다 더 빨리 알아 차리고 비상 상태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던지 그리스도를 못 믿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방해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도 '악한 영'들은 믿는 자들을 통해서 방해를 하였다. 오늘날도 '악한 영'들은 믿는 자들을 통해서 방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은 ‘악한 영’에게 속아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실토하도록 말씀하신다. 인간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실토하게 되면, 그리스도께서는 실토한 죄를 가지고 인간의 마음속에서 합법적으로 ‘악한 영’을 쫓아내는 것이다. ‘악한 영’을 쫓아내신 뒤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직접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면 다시는 타락으로 가지 않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함께 쓰임 받게 된다. 사도 바울이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에게 이런 식으로 쓰임 받았던 것이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