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 고린도 전서12:1-3

제목: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따라 신앙생활을 했다. 율법은 인간들이 온전히 지킬 수 없는 법이므로, 그 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낮아져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라는 뜻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만들어서 지켰다(장로유전). 그러고서도 그들은 율법을 다 지켰다고 오만 불손하다가 선지자의 말을 거역하고 주님 말씀도 거역하다가 멸망당하고 말았다.

그들에게 가장 크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우쭐될 줄만 알았지, 정작 본인들은 그들의 삶이나 믿음은 본받으려 하지 않았다. 요한복음856절에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했다고 했는데, 다시 요8:40에 보면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 하였느니라 고 말씀 하시면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의 행사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책망하신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행동인가? 차라리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 말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하던가? 라고 할 것이지 하나님을 안다고 해놓고 하나님 아들을 죽이는 우를 범하는 저들을 바라보면서 결코 남의 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살피는 자기 진단이 있어야 하겠다. 결국 육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사도바울도 고백하기를, 율법으로 하면 자신도 흠이 없는 자이지만, 율법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성경에서 수도 없이 고백하고 있다. 그가 하나님을 온전하게 좇았다면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집사를 죽게 하는데 가편(可便) 투표에 참여 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방인들은 예수를 통해서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된 현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서 세상과 구별되게 하셨다. 성령을 부어주신 목적은 성령을 의지해서 자신의 정욕을 이기고, 세상의 사악한 것들과 싸워 이겨서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방법과 똑같은 모습으로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듯이, 이방인들도 예수 이름은 한 없이 드높이고 있는데, 그들의 속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옛날 그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들의 모습은 입술로만 찾는 그런 자녀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겉과 속이 완전히 일치하는 그런 신앙인을 찾고 계신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모두 버리셨다.

성령을 의지해서 자신의 정욕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만이 예수를 온전히 알 수 있고, 아버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성령을 내안에 모시고 있더라도 자신의 정욕에게 저서, 자신의 생각 되로 이끌림을 당하는 사람은 결코 예수를 온전히 알 수도 없고, 온전히 좇을 수도 없다. 베드로 후서2:19에서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 이니라 성경에는 온전하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온전하다라는 뜻은 성령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온전케 된 자를 말하는 것이다. 고전2:6에도 보면 사도 바울이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하면서 성령으로만 알 수 있는 지혜를 말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를 안다고 했을 때, 성령으로 온전히 지배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예수를 온전히 알 수 없다. 또한 예수를 모르면 아버지는 더더욱 모르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온전한 지배를 받지 못하다보면 지배받지 못한 만큼 반드시 육신의 소욕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어 결국 성령으로 말하는 자를 대적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지금 또다시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나타나신다고 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예수를 알아보고 주님을 좇아가겠는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도 아들을 알아볼 수 없다. 아들의 겉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감춰져 있기 때문에 오직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들만 주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또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4:21)

여러분들은 지금 현제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이제 다시 한번 성령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실 테니까 말이다.

공유하기
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2-05-19 00:00
조회
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