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 이니라!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 가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보고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들이 그 걷는 것을 보고 심히 놀라며 기이히 여기더라.(3:6-10)” 이것을 바라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크게 놀라나 두 사도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일을 왜 기이(奇異)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하면서 오히려 우리보다 당신들이 더 이상하다는 말로 그들을 사로잡는다. 베드로는 곧 이어서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너희가 그렇게도 멸시하고 천대했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능력으로 이렇게 된 것이니, 이제라도 회개하고 돌이켜서 예수를 영접하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는데 너희가 죽인 예수는 모세가 예언했던 바대로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滅亡)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오리라 말한 모든 선지자도 바로 이때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라” 베드로의 이 말을 듣고 그날 거기에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이 많이 있다. 첫째는 베드로와 요한의 겸손이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앉은뱅이를 일으켰으니 박수라도 받을 법하지만 이들은 전혀 칭찬을 들을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 것을 관중들에게 어필하며, 이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능력임을 말하고 있다. 과연 사도들다운 행동이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가 예언했던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수가 절대적인 구세주였음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육체의 법인 율법만을 중요시 여기고, 하나님 아들로 오신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은 것이 그들의 결정적인 실수다. 분명히 선지자들이 한결같이 예언 햇것만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개념을 인간의 수준으로 바꾸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그들의 결정적인 오점이다.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초래하고 있는가를 우리 이방인들은 절실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이방인들에게도 이런 실수는 얼마든지 일어날 소지를 않고 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아무런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하니까’ 무조건 죄를 고백하고 믿게 된 것이다. 뭘 알고 믿은 것이 아니라 믿으라고 해서 그냥 믿었더니 하나님은 ‘성령’까지 선물로 보내 주신 것이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죄를 깨닫게 하시고, 의에 대해서 깨닫게 하시고, 심판에 대해서 깨닫게 하신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들은 스스로 신앙생활 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서 신앙생활 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이라 아직 성령이 내주하신 상태가 아니라서, 대신 율법이라도 주어서 그것에 따라서 신앙생활 하도록 했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율법대신 성령을 보내주었으니 성령을 따라 살게 되면 율법으로는 할 수 없는 것까지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성령을 따라 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훨씬 더 경건한 삶에 이르게 될 것이며 천국에도 넉넉하게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런 연고로 성령을 보내 주었건만, 오늘날 이방인들은 이렇게 보내주신 성령을 거역하고 무시하며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것을 볼 때에, 예수의 피를 무효케 하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였으니 그들이 받을 형벌을 생각하니 끔찍할 뿐 이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상기 해보자!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2)”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 형제들 가운데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는데 그 때 너희들은 모두가 그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예수를 두고 말했다면, 주님도 이방인들을 향해서 성령으로 오시는 이를 말로라도 거역하게 되면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만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가 예수를 배척한 것이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만 부르고 있다가 성령으로 오시는 이를 거역하는 것이나 비슷한 이치다.
그래도 이방인들에게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다. 왜냐하면 아직 성령으로 오시는 이가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지 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조만간 반드시 사역을 시작하실 것이다. 그때는 주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자는 알곡으로 들어날 것이며, 마음이 완악하여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쭉정이로 들어나서 불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마지막 때에 쭉정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이상 언급은 하지 말자!

지금 이방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 받은 것이 구원으로 바로 연결 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각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가져온 오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은 율법을 잘 지켰으니까 틀림없이 구원에 이를 줄 알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수가 절대적 구세주인 것처럼, 현제의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을 따라 살아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성령을 따라 살지 않게 되면 자신 속에 들어있는 죄에 대해서 전혀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회개 또한 이루어 질 수없다. 이방인들 중에서 자신 속에 ‘미움이나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 자가 누가 있는가? 이것은 곧 그가 성령을 따라 살지 안했다고 하는 증거다. 이런 죄악이 자신 속에 아직도 분명하게 남아 있는데도 자신이 천국 갈 것처럼 말하고 있다면, 그는 천국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 죄는 천국에서 함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방인들 중에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해서 아직도 자신 속에 미움이나 분노, 시기, 질투, 거짓이 남아 있는 자들은 차라리 솔직하게 성령을 따라 살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성령으로 오시는 그이 앞에서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낳을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예수가 오셨을 때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 자들은 예수 앞에 무릎을 꿇지 않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갔다. 이방인들도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자신 속에 탐욕과 탐심이 가득 찼는데도 성령으로 오시는 그이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해서 자신 속에 죄악이 가득 차 있는 것을 아는 자들은 마지막 성령의 음성이 들려질 때 반드시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할 것이며, 그것을 보신 성령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를 긍휼히 여기게 될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주님이 일곱 교회를 향해서 특별히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에게만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러시면서 각 교회마다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하시며 마지막 때에는 성령으로 말씀 하시는 목소리를 들으라고 명령하신다.

우리가 알 것은 성령으로 오시는 이는 아무도 모르게 오실 것이다. 예수가 오실 때에도 오신다고 예언은 되어 있었지만, 한동네에서 같이 살았던 사람도 알지 못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령으로 오시는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던 자만이 알게 되어 따르게 될 것이다. 바울이 말했듯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깊다’고 했듯이 지금은 누구나가 자신의 속 모습을 바라보며 성령으로 오시는 그이 앞에 나를 낮추고 긍휼을 입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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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2-06-06 00:00
조회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