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갈라디아서5:16-26
제목: 기독교인들에게 요구하는 성령의 열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율법의 열매를 내 놓아야 한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흠 없는 유대인들의 육체다. 그런데 유대인들로서는 율법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모두가 율법을 거역한 죄인들이라서 흠 없는 육체를 내놓을 수가 없다. 결국 유대인들로서는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다. 하지만,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던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은 자신의 몸이 병들지 않았다고 하여, 예수 앞에 달려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그들이 아무리 오랫동안 열심히 신앙생활 했어도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받지 못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지 못하면 성령도 받지 못하게 되므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
하지만, 율법을 거역하여 육체가 병든 자들은 살기 위해서 예수 앞에 달려 나왔다. 그리하여 자신의 병든 몸을 치료 받게 된 것이다. 병든 몸을 치료 받으면 그것으로 그들은 율법을 거역한 죄까지 해결 받게 되는 것이다. 병든 몸을 치료 받은 자들이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게 되면, 예수께서 부활승천 하신 후,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유대인들은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된다.
성령을 받은 유대인들은, 예수를 통해 율법을 거역한 죄(마음속으로 지은 죄)를 이미 사함 받은 자들이다. 따라서 인간의 영(靈)속에 오신 성령께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죄에 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들이 결국 성령도 따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게 되면,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도 맺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구권과정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이방인들은 곧장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율법을 거역한 죄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율법을 거역한 죄란? 인간이 마음속으로 지은 죄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방인들도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사람을 통해 오셨을 때, 그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바울이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성령의 열매를 요구했던 것은,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를 가지고 태어나다보니 설사,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 해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마음속의 죄가 해결 되지 않으면 이방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성령을 따라 살 수가 없다.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면 성령의 열매 또한 맺지 못하는 것이다.
바울은 본래 예수를 믿지 않던 바리새인이었으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마음속의 죄(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은 후, 마지막에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게 된다.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바울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성령의 열매를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바울을 통해 성령을 받았을지라도 구원 받았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바울을 끝까지 마음으로 믿지 않았던 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 또한 맺을 수 없을 뿐더러 구원에서도 미끄러지고 말게 된다. 바울이 기록한 글을 보면 바울을 쫓다가 나중에는 바울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간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바로 그들이 성령만 받고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자들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바울을 통해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이 바울을 마음속으로 끝까지 믿게 되면, 바울 마음속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에 이방인들도 성령의 열매를 맺고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셨던 것은, 이방인들에게 온전한 복음을 전할 목적도 있었지만, 기독교 2천년 역사가 끝나고 나면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다시 가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해 주셔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던 바울이 AD65년경 목 베임을 당하고 죽게 되자, 바울을 통해 복음을 전하던 그리스도 사역도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다시 말해 바울이 죽은 후로도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을 수 있었으나, 예수 이름을 전하던자들 마음속에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보니,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가 해결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 숫자는 늘어나는데, 정작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보니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아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 기독교 2천년 역사가 끝나자 성령께서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성령의 열매를 요구하고 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다”(갈5:22-23). 성령의 법아래 살던 기독교인들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모두 성령의 열매를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날 하나님 심판대 서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을 내놓지 못하면 제아무리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고, 수많은 능력을 나타내며 큰 교회를 운명했던 자라도 천국은 고사하고 마지막 날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성령의 열매는 오직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야만 내놓을 수 있는 열매이다.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 스스로는 성령의 열매를 내놓을 수 없다. 결국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열매를 내놓지 못한다는 말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다시 오셨을 때, 기독교인들이 그를 배척하고 믿지 안했다는 증거이다. 그를 믿지 아니하면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더라도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로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고, 큰 교회를 운영했더라도 천국의 주인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너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은사를 통해 표적을 나타내게 했던 것은 불신자들을 전도해서 하나님 백성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 성령으로 이방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이라고 말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게 되자 그리스도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마7:21-23).
율법이 유대인들에게 흠 없는 인간의 육체를 요구하였다면, 성령이 기독교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흠 없는 인간의 마음이다. 이방인들에게는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흠 없는 마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다보니 어느 누구도 깨끗한 마음을 가진 자가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이 요구하시는 바를 내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것을 해결해 주시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의 요구를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 2천년 역사가 끝나자 사람을 통해 다시 오신 것이다.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예수께서, 2천년이 지나자 다시 바울 같은 자를 통해 오셔서 복음의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어 주시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된다면 그 말로가 어찌 되겠는가? 유대인들이 하나님 아들을 배척하고 죽이고 나자, 하나님께서 그 후손들을 미치광이(히틀러)손에 부치는 바람에 약600만명이 가스실에서 영문도 모르체 죽어가야 했다. 그 후로도 그들은 나라도 없이 2천년을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고통속에 살고 있다. 그동안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참상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거울이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셨던 것처럼,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도 영으로 들어가신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이 요구하시는 것(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을 모두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이는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그리스도께서 모두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이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각각 다른데, 기독교인들이 동일한 영으로 생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곧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여기면 어찌 되겠는가? 이는 귀신에게 자기 영혼을 맡기는 것과 다름 없다.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기 위해서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서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의 완성자로 다시 오신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배척하고 믿지 않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도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믿지 않을 자들이 부지기수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자들은 이미 멸망 받기로 작정된 자들이다.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벧후2:19). 기독교인들은 행여나 이런 자들을 따라 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