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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요한복음 2:23-25

제목: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요한복음2:23-25).

 

예수께서 유월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여러 가지 이적과 표적을 보이자, 그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람들이 알아봐 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을 익히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사람들의 어떠한 증거도 받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조그만 일에도 생색을 내고, 무슨 봉사라도 하게 되면 남들이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지 않던가? 기독교인들 중에 성령을 받은 자들이 성령의 은사로 병든 자라도 고치게 되면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높아지게 된다. 이런 일을 몇 번 거듭하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져서 하나님 자리에 앉아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게 된다. 오늘날 교회에서 높은 감투를 쓰고 있는 종교지도자들 대부분이 이런 부류에 속한 자들이다.

 

오늘날 교회가 부흥해야 된다는 미명하에 교회마다 사람들 숫자를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이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불쾌하게 들리겠지만, 죄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인간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 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다. 이는 마치, 연예인들이 사람들의 인기를 먹고 살 듯이, 오늘날 교회 또한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박수소리를 듣고 싶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본인들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라고 변명하겠지만, 죄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말씀이 오늘 예수께서 말씀하신 본문 내용이다.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예수께서 유대 땅에 오셔서 수많은 이적과 표적을 보여주셨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는 사람들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친히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예수의 특성을 따라 사람들에게 칭찬 받으러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세상에서 목에 힘을 주려면 교회도 커야 하고 성도들 숫자도 많아야 되는 것이 오늘날 교회들의 현실 아니던가?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속이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죄악이다. 죄악이 인간들 마음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무슨 일을 하고 나서 절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죄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영 또는 귀신이다. 이런 영적인 존재가 인간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들 마음을 부추겨서 자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죽은 영'이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서 인간들로 하여금 착함을 자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들이 무슨 일을 하고 나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모두 이런 영적인 존재의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이미 자신이 은혜를 입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절대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지 않는다. 좋은 예로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셨지만, 예수께서는 자신의 존재를 절대 드러내지 아니하셨다. 그리고 빵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보여준 표적을 보고 쫓으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라다니면 굶어죽는 일은 없겠다싶어 따르려고 하자, 도리어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며 제자들에게 주위를 환기시키고는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서 자신의 몸을 숨기셨다.  

 

이에 반해 오늘날 교회들이 사람들 숫자를 채우기에 급급한 것은, 인간의 영혼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다. 이렇게 말하면 기독교인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 들겠지만, 실제로 보면 목사 자신도 아직 죄에서 구원 받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켜야 된다는 욕망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이는 결국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에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싶은 것이다. 오늘날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치고 큰 교회를 갖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목사라면 누구나 이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고 말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소경이면, 그 밑에 있는 자들도 모두 소경이 되고 만다. 

 

인간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는 오직 율법아래 살던 자기 백성(유대인)들의 영혼만 죄에서 구원하시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영혼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셨던 예수께서 부활하여 영으로 다시 오셔서 기독교인들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해주셔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는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구세주이고,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구세주라는 사실이다. 율법아래 살던 육적인 백성(유대인)들에게는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게 되고,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영적인 백성(기독교인)들에게는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은 받았지만, 성령을 받아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고 인간의 영(靈)속에 오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성령이 인간의 영속에 오시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신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 지성소가 있고 성소가 있는데, 지성소에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와 만나를 담은 항이라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다. 그리고 성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떡상과 일곱촛대와 향로가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께서 이방인들의 영(靈)속에 오셔서, 하나님 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살아가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법(법궤)을 주시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갈 때 날마다 일용할 양식(만나)을 주시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갈 때 하나님의 능력(싹난 지팡이)을 맛보게 해주신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들이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방인들 마음속에는 아직 그리스도가 오시지 안했기 때문에 온전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며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이방인들 마음속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면, 그때는 그리스도를 통해 날마다 말씀(떡상)을 먹게 되고,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들 마음속을 비추게(일곱촛대) 되므로 어둠(죄악)이 찾아들지 않게 되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아버지) 앞에 날마다 기도(향로)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각각 다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세상 임금인 마귀가 심판을 받고 임금 자리에서 내려오자, 성령께서 인간의 영(靈)속에 오셔서 세상 임금인 마귀를 쫓아내고 인간의 영을 다시 지배하게 되었다. 하나님 백성도 아닌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와 같은 원리에 의해서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까지 해결 받은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해결 받을 수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셔서, 그동안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던 '죽은 영'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영(靈)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마귀 발아래서는 나왔지만,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죄악(죽은 영)이 여전히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이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던 '죽은 영'을 쫓아내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영으로 들어가서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를 모르고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 받았다고 하게 되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죽은 영'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좋아 하자, 유대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죽은 영'이 쾌재를 부르며 좋아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하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는 말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은, 아직도 기독교인들은 죄에게 종노릇하고 있다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대단히 불쾌하겠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으로, 성령을 받아도 그 죄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곧 '죽은 영(귀신)'을 뜻하는 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해결받을 수 없다.

 

이렇게 아직도 죄에게 종노릇하고 있는 자들이 어떻게 교인들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겠다는 것인가? 아직 자기 영혼도 죄에서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교인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코자함이 아니라,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박수소리를 듣고자 해서다. 이렇게 말을 해줘도 목사들은 곧 죽어도 자신은 교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교인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정당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명하는 이것이 자신을 더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신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 영이요 그리스도는 예수 영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죄가 없는 측면에서는 똑같은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시는 일에 있어서는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 가정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이때 아버지와 아들은 한 핏줄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하는 일과 아들이 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해야 되고, 아들은 아들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만약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아들이 하게 되고, 아들이 하는 일을 아버지가 하게 된다면, 그 가정의 위계질서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게 된다. 가정의 위계질서가 무너지면 그 가정은 오합지졸이 되고 만다. 오늘날 가장인 남자들의 권위가 무시되고 있다보니, 자녀들의 탈선을 막을 힘조차 잃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아들(예수) 역시 죄가 없는 측면에서 보면 모두 똑같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성령이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신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살지 못해서 모두가 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고 말았다. 이것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영적인 율법아래 갇혀 있던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 이렇게 성령과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이 엄연히 다른데,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하나로 보고 무조건 성령만 받으면 구원이라고 말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가 없게 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성령께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시고,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성령을 따라 살도록 말씀하신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해서,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 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고 말게 되었다. 그러던 것을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영적인 율법아래 갇혀 있던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과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이 각각 다른데, 이를 하나로 보고 구원 받았다고 말하게 되면, 기독교인들로서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가 없게 되니까 영원히 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를 모르고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 받았다고 좋아하고 있는데, 이는 사단에게 자기 영혼을 송두리째 팔아넘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어야, 그나마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오셨을 때 믿을 수 있을 텐데, 자신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으니, 어떻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계략 또한 사단이 장차 그리스도가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실 것을 미리 알고 계획해 놓은 것들이다.

 

사단의 끈질긴 방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게 되면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지 않게 된다. 그 이유는 그동안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죽은 영이 떠나고 없기 때문이다. 죽은 영의 특징은 끊임없이 인간들을 부추겨서 자신을 자랑하도록 만든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여전히 남들이 자기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이유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죽은 영'들의 특징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죽은 영이 떠나고 그 자리에 대신 그리스도가 계시게 되니 다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이단이나 일반 교회가 이단소리를 듣게 되면,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해명하느라 진땀을 뺀다. 이것은 그들이 아직 온전치 못하다는 증거다. 그들이 정말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라면 굳이 자신의 누명을 벗으려 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자신이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누명을 벗겨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로부터 그토록 많은 이단 소리를 들었지만 단, 한번도 그 누명을 벗으려 하지 않았다. 예수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누명을 벗겨주실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떤가? 조금만 이단 소라를 들어도 그 누명을 벗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그 누명을 벗기 위해 돈까지 주어가며 누명을 벗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자신이 하나님과 예수를 전혀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예수는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한다하여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로부터 이단의 괴수라며 엄청난 비난을 당했으나, 단 한 번도 그것을 변명하거나 해명하려 들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오셨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떠드는 바리새인들을 도리어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의 온전한 삶이다. 마귀가 인간을 통해 예수를 죽였지만, 예수는 죄가 없기 때문에 심일 만에 다시 살아나고 말았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이라며 자신들의 생각이 맞다며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은 지 삼일 만에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안했지만, 영적인 존재인 마귀와 귀신들은 예수의 부활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유대인들 말대로 예수가 이단의 괴수요 잘못된 구세주였다면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에게는 죄가 없었으므로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자도 이와 같이 육신은 죽임을 당해도 영으로는 다시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성령과 더불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절대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자신이 아무리 큰일을 했더라도 그것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들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은 곧 죽은 영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것과 같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것을 인정 받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원해주셔야만 그것인 진정성 있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과연 누구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있는가?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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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2-11-13 19:46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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