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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마태복음25:31-46

제목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병 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마태복음25:35-37)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25:38-40).

 

예수께서는 의인(義人)을 오른편에 있는 양으로그리고 악인(惡人)을 왼편에 있는 염소로 표현하고 있다예수께서 의인과 악인을 양과 염소로 표현하신 이유는양은 주인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반면, 염소는 주인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되려 주인에게 대들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양은 주인의 말을 잘 듣고 따른다고 한다그러나 염소는 주인의 말을 잘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주인을 들이받기까지 한다고 한다.

 

본문에 나타난 의인(義人)들의 행동을 보면그들은 주를 위해서 온갖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그런데 양들은 그것이 주를 위해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양들이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지극히 작은 자란?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오신 예수를 믿고 따른 자들이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란?’ 당시 율법을 거역하여 육체가 병들거나 죄인으로 낙인 찍힌 자들이다그런 자들이 도리어 예수를 믿고 따랐기 때문에예수께서는 그런 자들을 두고 지극히 작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그리고 예수 역시 그런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예수께서는 그들을 두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왼편에 있는 염소들은 어떤 자들인가바리새인서기관 율법사들이 여기에 속하는 자들이다그들은 자신을 의롭게 여긴 나머지 육체가 병들거나 죄인으로 낙인 찍힌 자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그들은 병든 자들과 세리 창기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다그들은 모두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난 같은 형제임에도 불구하고죄인들과는 예배도 함께 드리지 않았고 심지어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그러다 보니 당연히 그들은 보잘 것 없는 자들을 깔보며 업신 여겼던 것이다이는 곧 예수를 깔보며 업신여긴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행동하고는 주님 앞에서는 언제 우리가 주를 돌아보지 않았고언제 우리가 주께서 병들었을 때 돌아보지 않았냐고 따지고 있는 것이다그러자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자그때야 비로소 얼굴을 붉히며 아무말도 못하고 자리를 뜨는 것이다그러나 그때는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죽은 후에는 육체가 없기에 때문에 회개할 기회마저 사라지고 만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니까 얼마나 주님을 잘 믿고 있을까기독교인들은 당연히 주님이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으며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으며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렇다면 과연 기독교인들이 정말로 주님께 그렇게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로 여기고 있는 자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그것부터 확인해 봐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이 주님께 잘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지극히 작은 자란?’ 아마도 헐벗고 굶주린 자를 두고 지극히 작은 자로 생각할 수 있다그리하여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한 것을 두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지극히 작은 자와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에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지극히 작은 자란무조건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지극히 작은 자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란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그나마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작은 자의 또 다른 표현은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여기는 자들이다. 

 

바울이 예수를 믿기 전에는 자신을 의롭게 여기고 있었으나부활하신 예수가 바울 마음속에 들어오자 바울이 만삭 되지 못하여 태어난 칠삭둥이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바울의 이 말은 자신이 가장 추하고 못난 자라는 말이다예수님 역시 하나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천하고 낮은 곳에 오셨다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은 자신을 가장 못난 자로 여기고 있다따라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란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무조건 헐벗고 굶주린 자를 지극히 작은 자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던 것을 가지고자신들도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했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이것은 자신들 생각으로 불쌍한 사람에게 동정을 베푼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예수께서 베푸신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사랑을 베푼 것이 아니라자신의 생각으로 동정을 베푼 것이라이런 동정은 도리어 자신의 의()만 쌓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어려운 자를 도와주거나 불쌍한 자에게 자비를 베푼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내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으로 그런 일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중에는 아직 지극히 작은 자로 여길만한 자가 한 명도 없다그 이유는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아직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들일 뿐, 아직은 구원 받은 자가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겠지만,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것은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위해서 성령을 주신 것이지성령으로 구원에 이르라고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이방인들을 성령의 법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 성령을 주신 것이다. 그래야 기독교인 2천 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자꾸만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을 교만에 빠지게 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 사실을 알아야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리스도를 믿어야 비로소 자신이 지극히 작은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보니까 당연히 마음이 높아져 있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인간의 생각으로 헐벗고 굶주린 자들에게 동정을 베푼 것을 가지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사랑을 베풀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정말로 지극히 작은 자를 찾아서 사랑을 베풀려거든바울처럼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여기고 있는 자를 찾아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만이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자를 지극히 작은 자라고 말할 수 있다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역시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라고 여기는 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다시 말해 그런 자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함께 하고 있다기독교인들은 바로 이런 자를 찾아서 사랑을 베풀어야 지극히 작은 자에 한 것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다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보면 작고 초라한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큰 교회 유명한 목사들을 찾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다시 말해 학벌 좋고 잘난 목사를 찾아가는 것이다그리고는 그곳 목사에게 온갖 충성과 봉사를 한 것을 두고 주님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병 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았다고 말하고 있다이때 주님은 그런 자들을 향해서 나를 너를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큰 교회 목사 마음속에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신 것일까그리스도가 계시면 다행이지만만약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신앙생활 하던 교인들은 순전히 인간에게 충성을 한 것이 되므로그곳에 있던 교인들은 결국 모두가 헛수고를 하고 말게 된다그들이 마음으로 믿었더라면 겉만 번지르르 한 자들에게 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작은 자의 마음속에 계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오늘날 큰 교회 유명한 목사가 과연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여기고 있을까예수께서는 나의 제자가 되려는 자들에게는 두 벌 옷도 갖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유명한 목사와 유명한 신학자들일수록 좋은 집에 좋은 차에 좋은 것만 먹고 마시고 다니고 있지 않던가? 이런 자들 마음속에 과연 그리스도가 계실까?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절대로 세상과 짝하며 살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살도록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큰 교회와 유명세가 자신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듯이예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들이 아니다그들은 예수보다도 더 높은 곳에 앉아 있다그렇다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자들은 누구인가바로 그를 믿고 따르던 교인들이다그러나 교인들에게도 책임은 있다그런 자들을 믿고 찾아갔던 것도 결국은 자신이 그런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크고 화려한 것들을 모두 벗어던지고 지극히 작은 자를 찾아서 믿어야 한다지극히 작은 자를 믿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 앞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지극히 작은 자를 통해서 오시기 때문에, 큰 교회와 유명한 목사들을 쫓아가는 자들에게는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잘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이를 두고 성경은 그리스도가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역시 흠모할 만한 것도 없고, 고운 모양도 없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더 멸시하고 천대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이방인들 앞에도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시기 때문에, 크고 화려한 것을 쫓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믿기가 더더욱 힘들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게 되면 천국의 주인을 눈앞에 두고도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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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3-12-10 14:38
조회
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