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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요한복음12:20-36

제목: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한복음12:24-25).

 

예수께서 위와 같이 말씀하신 이유는, 죄 아래 태어난 인간들은 반드시 한번은 죄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되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도 자신이 죽어야 마귀를 멸하고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듯이, 죄 아래서 살고 있는 인간들 또한 한번은 반드시 자신의 죄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마음속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던 죽은 영(귀신)’들이 모두 떠나게 된다. 그런 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비로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면,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서, 성령만 받아서는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가 없다.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는 말은 옛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인데, 성령만 받은 것으로는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날 수가 없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증거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셔야 한다. 그래야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성령만 받아서는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아서는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것은 죽은 영(귀신)’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죽은 영(귀신)’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아무리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자라도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죽은 영의 지배를 받게 되면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어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 


만약 성령이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게 되면,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속의 죄악 때문에 그 자리에서 모두 즉사하고 말게 된다. 죄인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도 없고, 직접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온전한 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도 죽지 않았던 것은, 여호와로 현현한 천사들을 만났기 때문에 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들어다보고 모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 이유는 죄인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아들을 보내주셨고, 이방인들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영적이 아들)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속성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의 효력 때문이다.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는 마귀를 멸하고, 인간의 영()을 마귀 발아래서 구원해주신다. 그러나 예수 피를 마시고 인간의 영()이 마귀 발아래서 나왔다고 하여, 그것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는 혼()도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혼(魂)은 죽은 영(귀신)’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영(靈)과 혼(魂)이 마귀와 귀신의 발아래서 나와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달리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이방인들 마음은 죽은 영(귀신)’이 지배를 하고 있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죽은 영(귀신)’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 마음속에서 죽은 영(귀신)’을 쫓아주실 분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로는 하나님처럼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실 때는 부득불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시게 된다. 그래야 이방인들에게 진리의 말씀과 천국복음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해주기 위해서 사도 바울 육체를 입고 오셔서 진리의 말씀과 천국복음을 전해주셨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방인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 사람의 육체를 입고 다시 오시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육체를 입어야 기독교인들에게 진리의 말씀과 천국복음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만 받아 갖고 있는 자들이지만, 사도 바울은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이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 앞에 예수의 보내심을 받고 오는 자 역시 바울처럼 성령과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수께서 보내주신 그리스도의 사역자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죽은 영)’을 해결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이삭이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쓰임 받은 자라면, 바울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예표로 쓰임 받은 자이다. 열두제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은, 예수께서 바울 같은 자를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가겠다는 예표로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죽은 영)’을 해결 받기 위해서는, 성령 받은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이 해결된다.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성령이 아니라 예수의 영이다. 이런 예수의 영이 우리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던 죽은 영(귀신)’들이 모두 떠나게 된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죽은 영(귀신)’이 떠나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그때야 비로소 죄에서 온전케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천국은 바로 이런 자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과정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신 말씀도,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이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으면 자신과 똑같은 죄인을 양산하게 되나, 인간이 자신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면, 그때는 온전한 자를 많이 배출하게 된다. 그런 뜻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목숨이 하나뿐인 인간이 죄로 죽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만약 죽는 것이 쉬울 것 같았으면 예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예수께서도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7:13-14) 말씀하시겠는가?

 

율법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유대인이나,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하는 기독교인들은 좁은 문(영생)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아니다. 그 이유는 당시 유대인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나 모두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한다. 예수께서도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죄악속에 태어난 인간이 자기 목숨을 버리지 아니하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의 죄를 해결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 좁은 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를 믿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을 뿐, 하나님이나 예수를 진짜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진짜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기독교인들 또한 하나님이 보낸 영적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기독교인들로서는 우리가 왜 예수를 믿지 않느냐며 불같이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겠는가? 유대인들이 당시 하나님을 잘 믿은 것 같지만,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하나님이 보낸 영적인 아들(그리스도)을 믿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기독교인들 역시 예수를 믿지 않고 있음을 알 수있다.

 

기독교인들이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내가 새벽기도를 열심히 했으니까? 내가 주일성수를 열심히 했으니까? 내가 십일조를 빠짐없이 잘 드렸으니까? 내가 불쌍한 사람들을 열심히 돌보아 주었으니까?' 나는 틀림없이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자기 생각을 믿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믿는 것을 두고 '신념의 믿음'이라고 말한다. 무슬림들도 이와 같이 신념으로 알라를 믿고 있는 것이다. 신념이 믿음으로 둔갑하면 그보다 무서운 종교는 없다. 기독교초기에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던 것도 신념이 믿음으로 둔갑하다보니,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신념은 하나님도 자기 뜻대로 움직여 가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인간의 뜻을 들어주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렇게 신념은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어서 결국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사람이라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종교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목사들을 통해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어도 기독교인의 속사람이 절대 변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그 증거다. 왜 말씀을 들어도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말씀을 전하는 자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없이 전하는 말씀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것은 죽은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생명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로 전하는 말씀은 기독교인들의 죄는 깨닫게 할 수 있어도,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속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속사람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가 전해주시는 말씀만이 인간의 속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그리스도가 없는 자가 아무리 그럴듯한 말씀을 전해줘도,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되지 않기 때문에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의 속사람이 지금까지 변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장차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 모형 아래서 교회 문턱만 밟고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종교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종교적인 행위로는 천국에 들어 갈자가 없다.

 

유대인들도 이천년 동안 율법아래서 종교적인 행위로, 성전문턱만 밟고 왔다 갔다 했던 것이다. 그들이 성전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던 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일 뿐,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다고 하여, 그것으로 유대인의 원죄 자범죄가 도말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자범죄 원죄가 해결 되기 위해서는 육체를 입은 예수가 오셔서, 유대인들의 자범죄를 사해주신 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셔야만 아담이 지은 원죄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마시고 마귀 발아래서는 나왔다는 증거로 성령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로 말미암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죄는 아무리 예수 이름으로 많은 예배를 드려도, 그것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 되지 않는다. 성령을 거역한 죄는 오직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해결 받을 수 있다.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지 못하면,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하늘나라에도 들어갈 수 없다.

 

이제라도 기독교인들은 종교적인 행위를 버리고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께서 말씀하신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이 응하게 된다. 예수께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하신 말씀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결국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귀신)’을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죽을 것(지옥)이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미워하는 자는 자신의 주인인 죽은 영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런자는 그리스도께서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살리라!” 하신 말씀도,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이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이 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을 것(지옥)이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 하신 말씀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올 것이기 때문에 다시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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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21-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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