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본문은 주님이 부활하시고난 후, 고기 잡으러 나간 베드로와 그에 제자들을 찾아 고기 잡는 현장에까지 찾아오셔서 아침 조반을 먹은 후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는 말씀으로 베드로에게 묻는다. 여기서 ‘이 사람들이란?’ 함께 있던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로 묻는 게 아니고, ‘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 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있느냐?’를 주님은 묻고 계신 것이다.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면 먼저 이 말씀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하고 주님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럼 주님은 왜 이렇게 질문 하셨을까? 그것은 베드로를 못 믿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로 하여금 결단을 요구하시는 말씀이다. 베드로는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면서 떠난다. 그러자 함께 있던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노라고 따라 나선다. 이 상황만 가지고 보면 베드로가 대단히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보여 진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보고도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지금 주님의 제자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것을 알아차린 베드로는 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나는 고기 잡으러 간다. 같이 갈 사람은 같이 가도 좋다.” 하는 뜻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고기 잡으러 간 것이다. 이것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가 바로 주님이 그들이 고기 잡는 현장에 까지 오셔서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하시면서 없다고 하자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 하시는 것까지 자상하게 알려 주시는 것을 보면 주님도 베드로가 얼마나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아시고 있는 것이다. 또 베드로가 그의 동료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는, 제자중 하나가 ‘주’시라 하자 베드로는 벌거벗고 있다가 겉옷을 걸치는 예의를 깍듯이 갖추고 단번에 바다로 뛰어 내리는 것만 보아도 베드로가 얼마나 주님을 따랐는지 헤아려 볼 수 있다. 만약 베드로가 그런 뜻이 아니고, 자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제자들을 데리고 고기를 잡으러 갔다고 한다면 주님은 베드로를 심하게 야단쳤을 것이다. 베드로의 그런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조반까지 준비해서 먹이시고는 베드로를 향해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묻는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서슴없이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면서 베드로는 자신의 행동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듯 자신 있게 대답한다. 이것을 아신 주님은“내 어린양을 먹이라” 는 말씀으로 베드로에게 사명을 부여 하신다. 우리는 주님이 베드로에게 첫 번째 하신 말씀을 통해서 어떠한 경우, 어떠한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주님이 언제 어느 때고 내게 이런 말씀을 묻더라도 나도 자신 있게 “그렀습니다. 주께서 아십니다.”하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 심정을 가지고 양 때들을 온전히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두 번째 하신 질문은 “너에 주변상황이 완전히 정리가 되었느냐?”하시는 말씀이다. 좀 다른 말로 하자면 “나를 따라오기 위해서 너 자신이 단단히 각오가 되어 있느냐?” 하시는 말씀이다. 왜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첫 번째 질문에서 베드로는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는 말로 답변했다. 이 말의 뜻은 주님을 위해서는 이 세상 친구와 동료들일지라도 언제든지 기꺼이 버릴 수 있다 는 말이다. 주님께서 두 번째 질문에서 다시 묻는 것은, 그렇다 할지라도 네 자신의 각오가 단단히 서있지 아니하면 양 때를 돌보다가 고통이 찾아오고 어려움이 닥치면 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혹시 포기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것 까지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두 번째 질문에도 자신 있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말하자 주님은 “내 양을 치라”는 말로 두 번째 사명을 부여 하신다. 
‘양을 치라’는 말은 ‘기르라’는 말씀이다. 어린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때는 아기가 엄마 젖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목욕시키고 귀저기 갈아주는 일 이외는 별로 할일이 많지 않다. 그리고 아직 어리서 세상물정을 모르기 때문에 엄마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한다. 그런데 아기가 자라면서 젖을 떼고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엄마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바빠지는 것이다. 아무튼 철이 다 들 때까지는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사는 것이 자식을 둔 부모 마음이다. 주님은 이것을 “내 양을 치라”로 말씀 하시는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째 질문을 하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런데 이제까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답변을 잘 하던 베드로가 세 번째 주님의 질문에는 별로 대답에 자신이 없다. 베드로는 근심에 찬 마음으로 겨우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왜 베드로는 주님의 세 번째 질문을 받고는 근심하였을까? 단어 상으로 보면 앞에 있는 말씀이나 똑 같은 말씀들이다. 그런데 무엇이 베드로로 하여금 그토록 자신 없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베드로에게 주님이 목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따라가야 한다. “살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게 되리라!(마16:25)”자신의 목숨 담보 없이 주님을 따르려고 했다가는 100% 실패한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가 근심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목숨 내놓는 것이 두려워서 근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악몽이 되살아나서 또 부인(否認)하게 될까봐 근심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마26:31-35절에서 주님께서 “오늘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시자 베드로는“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하면서 자신감을 보인다. 그러자 주님은 다시 베드로에게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자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否認)하지 않게 나이다” 하면서 아주 단호한 의지를 나타낸다.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베드로가 마26:75절에 보면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 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실수를 경험한 베드로 이었기에 베드로는 지금 주님께서 세 번째 질문하시는 의도를 알고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지금 죽는 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주님을 또 부인하게 될까봐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18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 다음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내용이 그것을 뒤받침 하고 있다. 
주님은 세 번째 말씀에서도 첫 번째와 같이 ‘먹이라’로 표현하고 있는데 세 번째 ‘먹이라’뜻은 첫 번째가 엄마 젖을 먹고 자란 아기라면 점점 성장하면서 많은 영양분을 필로로 하게 되고, 어미는 그 자식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진액을 다 쏟게 되므로 나중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될 때, 혹시라도 이리 때가 공격해 오면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신 이리 때의 밥이 되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이런 결단 없이 주님을 따르기 때문에 조금만 자신에게 해가 오면 서슴없이 주님을 배반 해버린다. 그래서 주님은 사명을 맡길 때 반드시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 사명 자를 배출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소명(부르심)받은 자는 많지만 사명(보내심)자는 적을 수밖에 없다. 여러분들이 지금은 소명(召命)자 입장에서 이 말씀들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과연 나에게도 베드로 같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좀 부족하고 실수를 한다 할지라도 내 중심에서 주님 앞에 당당하게 내어 놓을 수 있는 “주님께서 내 마음을 아십니다.” 하는 고백이다. 이런 고백이 내게 있을 때 우리는 좀더 자신 있게 주님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바로 주님으로부터 사명(使命)자로 크게 쓰임 받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주님께서 내 마음을 아십니다.”하는 고백들이 있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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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2-06-13 18:50
조회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