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비주얼01

주일 설교말씀

나는 먼데 하나님이 아니요 가까운데 하나님이라!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 인간들은 땅에서 사니까 하나님은 가까이 하실 수 없는 분이라는 인식을 누구나가 쉽게 가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갖다보면 하나님은 존엄하심 하나님으로만 비춰져서 인간들이 가까이 하기에는 도무지 함께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 인식되어진다. 또 하나님을 ‘사랑의 많으신 하나님’으로만 너무 쉽게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은 인간들이 잘 못을 저질러도 ‘사랑의 하나님이니까’ 용서해 주실 거라는 안일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런 사고를 갖게 되면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을 레야 잘 믿을 수가 없게 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다. 살아 계시다는 것은 뭔가 활동 하고 계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영으로 계셔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처럼 인격을 갖고 계신분이다. 인격을 가졌다는 것은 좋은 것과 싫은 것을 엄격히 구분 하신다는 뜻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인간 속에 오실수가 없어서 인간 몸 밖에서 신(神)에게 감동된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다스리고, 계셨지만 신약에 와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하시고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인간들에게 보내줌으로서 드디어 하나님이 인간의 영속에 오시게 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그야말로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요 내 안에 나와 함께 하신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신의 영속에 와서 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았다는 것은 입으로만 하나님을 시인했지, 행동은 따라 하지 안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았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무례한 행동인가? 

만약에 늙으신 자기 부모를 모셔다 놓고, 부모가 나이 많아 늙었다고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며 사람 취급도 안하며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고 살아갈 때, 그 부모는 얼마나 많은 소외감을 느끼겠는가? 무시를 당하고 있는 부모는 말은 안하지만 집을 뛰쳐나가고 싶거나 아니면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나이 많은 늙은 부모라 할지라도 그들과 자꾸 대화를 주고받으며 부모의 의견을 존중하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부모님들의 마음에 들도록 시중을 들어드린다면 그 부모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그럴 때 부모는 자신의 모습이 비록 늙어 초라할지라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될 것이며, 부모는 자신을 알아주고 존중해 주는 자식들을 위해 그가 가진 모든 것이라도 다 주고 싶어 할 것이다. 이렇게 인격을 가졌다는 것은 인격을 존중해주면 누구나 좋아하지만, 반대로 인격이 무시당하게 되면 어느 누구라도 언짢아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주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대우해드리고 나도 또한 그분의 뜻을 존중하여 그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우리는 얼마든지 주님으로부터 도우심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멀리 있는 분으로만 여기고 그분을 존중해드리지도 않고 그분의 뜻을 자꾸 무시하며 살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이 자꾸만 곤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느껴보려면 내가 직접 그분 뜻에 따라 행동에 옮겨보는 것이다. 행동에 옮기다 보면 어려움점도 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중간에 그만두면 아무런 느낌도 못 받는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분의 인격을 존중해서라도 그분의 뜻을 좇다 보면 반드시 언젠가는 그분을 마음 깊은 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분을 만나게 될 때 비로소 그분이 누군가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죄악에 대해서도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주님을 인격적으로 대우해드리지도 않고 그분 뜻도 존중해 드리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주님을 아무리 외쳐 불러도 그때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이 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표현할 때 대부분 최고의 존칭어를 써가며 세상의 아름다운 말들은 다 동원하여 듣는 자로 하여금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위장된 전술에 속아서 그들이 부르는 이름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 줄 알고 따라 가겠지만, 실제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며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현란한 입놀림에 속지 않는다. 
오늘 본문 시편에 나타나 있는 내용들은 실제로 다윗이 자기가 주님을 몸으로 체험하며 느낀 것을 그대로 글로 표현해 놓은 것들이다. 다윗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또 주님을 인격적으로 대우해드렸기 때문에 다윗은 주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최고의 수식어를 사용하여 인격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이런 시편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흉내를 내고 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보지도 않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 하면서 다윗의 이런 시편을 인용하여 자기도 아름다운 말들을 곁들어서 마치 자기 자신이 다윗 같은 믿음이 있는 것처럼 가장을 해 보지만, 사람은 속을지 몰라도 주님은 절대 속지 않는다. 
우리는 듣기 좋고 허울 좋은 무수한 말들의 장난에 속지 말아야 한다. 주님을 내가 직접 체험해 보기 전에는 내가 누구 말을 듣고 함부로 좇아서 따라가는 것은 절대 위험하다. 성령으로 내 속에 오신 주님을 내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으며 또한 그분이 어떤 분인지도 내가 알고자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분이다. 

내가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기를 원하거든 그분을 먼저 인격적으로 대우해 드려라! 그리고 그분의 뜻을 존중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도록 하라! 그분은 어떤 경우라도 악은 싫어하시고 선을 좋아하시는 분이다. 내게 당장 손해가 온다 할지라도 그분이 좋아하시는 것이라면 그분의 뜻을 좇아 행동하라! 그분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할 때 잠시 나에게 핍박이 온다 할지라도 그분을 전적으로 믿거든 인내하라! 그분이 살아 계신 분으로 믿어지거든 목숨까지라도 버릴 각오를 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도록 하라! 이렇게만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주님의 도움을 얻을 것이고 영생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예수 믿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절대 쉬운 일도 아니다. 자신을 예수에게 맞추어서 사는 자들에게는 예수 믿는 일이 천하 없이 쉬운 일이고, 주님을 모시고도 자기 뜻대로 살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예수 믿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당신은 예수 믿는 일이 어렵습니까? 아니면 예수 믿는 일이 아주 쉽게 느껴지십니까? 지금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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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bansuk

등록일
2002-06-20 18:52
조회
183